일산백병원 간단한 수술이라더니...4시간동안 당직의사 소식 두절 '환자 끝내 사망'

보상금 타협 ‘없던 일’, 병원 “법대로 하자”…유족들, 국과수 부검 결과 기다려

2008-05-25     류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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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백병원 뿐만 아니라  의료 피해를 받은 가족이 있으시면 매일일보로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매일일보이 한국 의료계의 사고에 대해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발생되서는 안된다는 측면에서 '종합병원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테마로 기획 고발기사를 연재 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제보 이메일

<매일일보=류세나기자> 지난 달 말께 경기도 고양 소재의 일산 백병원에서 코골이 방지수술을 받은 40대 남성이 병원측 의료진의 과실로 추정되는 수술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외견상 의료진의 과실 치사 혐의가 짙었기 때문. 일산 백병원으로부터 발생한 당시 의료사고가 세간의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중견 탤런트 한영숙씨 역시 이 병원에서 지난해 6월 수술을 받은 뒤 느닷없이 사망, 유족들이 의료사고라고 주장하며 의료사고 논란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산 백병원에선 그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의료사고가 발생했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가족들은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은 상태”라며 하소연이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여전히 병원측과 유족들 사이에선 서로 ‘억울하다’는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유족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며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코골이 방지수술을 받다가 갑자기 사망한 권오천(44)씨의 아버지인 권영민(74)씨와 동생 오석(42)씨는 지난 22일 일산 백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로 1인 시위 20일째다. 아버지인 권영민씨는 후문에서, 동생인 오석씨는 정문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처럼 시위를 벌인다. 병원측의 항의가 빗발쳐 시위장소를 인도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측 관계자들은 “병원 사유지에서 왜 시위를 하느냐”고 철수를 요구했다.
시위 현장엔 고 권오천씨의 매제인 전상혁씨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전씨는 “형님은 평소 운동을 즐기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병원에선 간단한 수술이라며 코골이 수술을 권하더니 어떻게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느냐”면서 “병원 측은 정확한 사인을 모르기 때문에 사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1인 시위 20일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권오천씨 유족 등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 심한 코골이를 앓던 권씨는 이를 치료하기 위해 지난 4월17일 입원해 수술을 받고 21일 퇴원했다. 그러나 수술 부위에서 출혈이 계속돼 23일 재입원했고 28일 퇴원할 예정이었다.
두 번째 퇴원을 하루 앞둔 이날 권씨는 그러나 0시쯤부터 5시간 가량 계속해서 피를 흘렸고, 새벽 1시에 다녀갔다던 당직의는 그 후 연락이 두절됐다는 게 유족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결국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구른 채 속수무책으로 의사를 기다려야만 했고, 권씨는 그렇게 의사의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고 끝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병원 측은 유가족에게 병원 측의 ‘과실’을 인정하며 보상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문서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 문서엔 ‘직인’이 찍히지 않았다. 한마디로 법적으론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무용지물에 가까운 문서였던 셈이다.

법적효과 없는 1억원 지급 문서
 
유가족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는 이유는 병원측의 태도 변화 때문이었다. 유가족들은 “병원 측이 사건을 조용히 무마하자는 조건으로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병원 측은 ‘왜 언론에 공개했느냐’고 오히려 큰소리 쳤다”며 “병원 측은 돈으로 사건을 덮으려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유족들은 권씨의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1인 시위에 돌입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지난 1일 국과수로부터 “공정하게 수사를 하겠지만 병원과 싸워서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청천날벼락 같은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수사의 부검결과가 의사협의회로 전달되기 때문에 환자 측이 구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한 것 같다는 매제 전씨의 설명이다.
이에 대한 일산 백병원측의 입장은 지금까지 상황 추이로 보면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애매모호한 백병원측 입장

백병원 업무팀장인 황씨와 매제 전씨의 대화를 녹음했다며 유가족 측이 기자에게 제공한 녹취록에 따르면, ‘그동안 (일인시위 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대화를 하자’는 병원측 입장과 ‘더 이상 병원에 발 들여놓기 싫다. 대화를 하려거든 밖으로 나오라고 해라’는 유족측의 주장이 담겨있다. 즉, 병원 측에서 대화를 시도하긴 했으나 대화요구의 목적이 ‘사과’인지, ‘합의’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유가족측에선 전혀 알 수 없는 상황.
이와 관련 최정환 백병원 사무국장은 “병원 측에서 사과를 하려했지만 유족들이 병원 내로 들어오기 싫어했던 것 뿐”이라고 말했다.
보상금 논란과 관련해선 병원측은 이미 소송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병원측 관계자는 “국과수의 부검결과에 따라 법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병원 측이 의료과실을 인정하며 1억 원을 제시하기로 했던 최초의 태도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왜 병원측은 이렇게 달라졌을까.

백병원, “사망 원인은 고인에게…”

백병원측에 따르면 사건의 시발점이 된 수술부위 출혈의 원인은 고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최정환 사무국장은 “기록에 의하면 고인은 처음 퇴원하기 전날인 4월20일 외출을 했다. 또 퇴원 후에는 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망의 주 책임을 고 권오천씨에게 돌렸다.
그러나 유가족측의 주장은 다르다. 유가족측은 “퇴원 전 날 외출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운전이나 기타 무리가 갈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퇴원 후 운동을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또 “병원에 있던 약 일주일 간 물과 미음만 먹던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 운동을 했겠냐”며 병원측 입장에 반박했다.
아버지 권영민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4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는 당직의를 기다리다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못해보고 아들을 떠나보낸 것이 너무 억울하다”며 “시민들에게 탄원서를 받을 계획이다. 시청에 호소해도 안 되면 국회까지 찾아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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