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한국은 괜찮은 먹잇감”

산업기술유출 ‘테러’ 위험수위, 대부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주요 대기업들 기술유출방지 경계령

2007-05-25     송문영 기자

최근 산업기술 유출 범죄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얼마 전 현대ㆍ기아차의 자동차 제조 핵심기술과 IT업체 포스데이타의 와이브로(휴대인터넷) 원천기술이 산업스파이에 의해 해외로 유출될 뻔하면서 재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태.

이 사건 외에도 국내 첨단산업의 기술 유출시도 사건은 지난 2002년 5건에서 2004년 26건, 지난해 31건으로 4년 새 6배나 급증했다. 특히 국내 산업기술이 해외에 그대로 유출됐을 경우 예상피해액은 관련업체 산정액 기준으로 무려 1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돼 국내 핵심기술 보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최근 각 기업과 정부는 산업기술 유출을 사전 예방할 수 있는 보안책을 마련하고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구멍 뚫린 국내 첨단기술 보안…대책마련 시급해

지난 20일 국내 정보기술 업체인 포스데이타가 개발한 와이브로 원천기술을 미국으로 유출시키려한 혐의로 정모(39)씨 등 이 회사 전ㆍ현직 연구원 4명이 구속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와이브로 단말기와 기지국 관련 기술자료 등을 하드디스크나 e메일을 통해 빼낸 혐의다.이들은 또 미국에 같은 업종의 I사를 설립,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 등을 제안하며 포스데이타 핵심 연구인력 30여명을 스카우트한 뒤 와이브로 기술을 완성해 미국 통신업체에 약 1천800억원에 매각할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와이브로(Wibro: wireless broadband)는 시간ㆍ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이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로,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삼성전자와 포스데이타에서 각각 5천억원과 900억원을 투자해 개발했으며, 와이브로가 상용화되면 향후 6년간 24조7천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12조원대의 부가가치 창출효과, 27만 명에 이르는 고용 창출효과를 낼 것으로 해당업체는 추정했다.앞서 10일에는 현대ㆍ기아차의 쏘렌토 승용차와 신차 ‘HM’의 차체 용접ㆍ조립기술 및 영업비밀 등을 중국에 넘긴 산업스파이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기아자동차 측에 따르면 이 기술이 해외에 유출됐을 경우 예상 피해액은 회사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투입한 연구비와 향후 3~5년간의 매출 손실액 등을 포함해 무려 22조3천억원 가량.이밖에도 국내 조선ㆍ휴대폰ㆍ반도체 산업 등에서 끊임없이 기술유출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올해 5월 현재까지 적발된 해외 기술유출 사건은 총 102건으로, 그중 전기전자(51건) 및 정보통신(23건)업종이 전체의 73%를 차지했으며 정밀기계(9건), 생명공학(6건), 정밀화학(5건) 분야에서도 기술이 새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ㆍ정부차원 보안 강화, 새는 국력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처럼 끊임없이 발생하는 기술유출에도 불구하고 보안책 마련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있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지난 20일 국정브리핑에 따르면 첨단기술 유출시도가 급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들이 산업보안에 대한 인식과 예산 부족 등으로 여전히 보안체제 구축에 소홀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결과 국내 기업의 보안비용 규모는 연간 예산의 1.8%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구 인력에 대한 관리 소홀도 주요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기술유출은 대부분 전ㆍ현직 직원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국정원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이달까지 발생한 102건의 기술유출 중 전직 직원에 의한 유출이 60건, 현직 직원에 의한 유출이 27건이었다.이들 대부분은 경제적 유혹(73건) 때문에 기술유출을 시도했으며 처우ㆍ인사 불만도 20건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중국 조선업체들이 국내에서 퇴직한 조선업계 기술자들을 고액연봉으로 스카우트, 국내 핵심 조선기술 및 경영 노하우를 빼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상황이 이렇자 현재 많은 기업들은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보안역량 강화를 위해 최근 경찰 출신의 보안전문가를 고용하는 한편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을 자동 제어하는 첨단 보안 솔루션을 개발했다. LG전자도 정보저장장치의 반출입을 관리하기 위해 보안검색 장비와 X선 투시기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정보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PC보안용 소프트웨어를 설치, PC에서 생성ㆍ저장되는 전자파일의 무단 복사나 전송을 방지하고 있다.

보안 사각지대 중소 벤처도 대책마련 부심

이미 기술유출 사건을 경험한 현대ㆍ기아차는 유사사건 재발방지를 위해 자료들을 전자적으로 암호화함으로써 문서를 내려받거나 저장할 수 없게 만드는 문서 보안솔루션(E-DRM)을 전 사업장에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와이브로와 IPTV 등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기술을 주도하게 된 KTㆍSK텔레콤 등은 외부인의 기업비밀 유출을 예방하기 위해 ‘외부인 출입자 예약방문시스템’을 정착시키고 USB 등 외부 저장장치 사용을 엄격 제한하는 등 다양한 보안책을 마련했다.보안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중소 벤처기업을 위한 대책도 마련됐다. 산업자원부는 내년 예산 편성시 중소 벤처기업의 보안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연구원 등이 금전적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인센티브 등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밖에 정부는 최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법은 산업기술 유출을 해당 기업의 문제뿐 아니라 국내 산업 및 국가의 안전과도 관련된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 산업기술 불법 유출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국가핵심기술에 대해서는 합법적 수출일지라도 통제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산자부 산업기술정책팀 임형진 사무관은 “보호대상이 되는 중요 산업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되, 기업의 산업기술 제휴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 국가핵심기술의 범위를 필요 최소한으로 검토ㆍ지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