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 탈당 석달째…‘融和同進 정치’ 실체는?
독자창당 공식 선언 약 한달 째, 범여권 접촉에서 범여권 연대로 이어지나 관측…범여권에 언제 발 담글까
또다시 시작된 ‘같기도’식 손학규 정치, 줄타기는 언제 끝날까
17일 선진평화연대 출범 ‘세력 확산’ 분수령 될 듯
[147호 정치] 지난 4월30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자신의 지지모임인 ‘선진평화포럼’ 창립대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기존의 정치권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급급해 좌우로 갈라지고 있다’고 쓴소리를 던진 뒤 “동서로 나누고, 상하로 찢는 ‘분열의 정치’는 역사의 뒤편으로 떠나보내자”며 ‘융화동진(融和同進)의 정치’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융화동진(모두 화합해 함께 전진함) 정치란, 손 전 지사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중간을 가거나 중립을 지키는 기회주의 정치가 아니’라 ‘국익과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이자, 시류에 흔들거리는 포퓰리즘이 아니고 원칙을 지키는 정치’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출마 포기 직후, 범여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이후 자신이 구상하는 ‘융화동진’ 정치만이 ‘새 정치’의 큰 그림인 것처럼 이 말을 자꾸 끄집어내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을 맞아 지난 5월18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도, 같은 달 24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을 마친 뒤에도 손 전 지사는 ‘융화동진’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5.18 민주묘지에서는 “5.18 정신은 융화동진의 길”이라고 언급했고, 조계사에선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 화해상생의 뜻을 담아 융화동진의 뜻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가 최근 들어 ‘융화동진’이라는 말을 통해 자신의 정치구상을 설명하고 궁금한 부분에 대해 질의응답을 마련함으로써 지지자들의 이해와 공감대를 넓히는데 초점을 맞추는 행보에 주력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융화동진’에 공감하는 세력과 조직을 굳건히 세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19일 산사칩거를 마친 손 전 지사가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한나라당 탈당을 공식적으로 밝힌 뒤 약 석달 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손 전 지사의 정치적 행보는 탈당 초반의 느슨함과 달리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물론 ‘융화동진’의 정신을 역설하면서다. 정치권은 그가 ‘융화동진’을 통해 독자세력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탈당 석달 째에 접어든 손 전 지사는 각 대선 예비주자들의 ‘결단’이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서 범여권 대선주자들과의 접촉보다는 범여권 내 초ㆍ재선 의원들과 접촉을 강화하면서 ‘손학규發 대통합’ 과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손 전 지사는 열린우리당 내 수도권 의원들을 비롯해 비수도권 지역 의원들과도 회동을 수시로 마련하며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5월 한달 동안 그가 만난 우리당 의원들만 30명에 이른 것으로 일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수도권을 발판으로 호남, 충청을 잇는 범여권 대선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는 사분오열된 범여권의 현 모습 때문이라는 데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은 이미 경선 일정을 정하고 대선 정책 토론회까지 열면서 일찌감치 ‘대세론 굳히기’에 나섰지만 범여권은 지지부진한 대통합 논의 과정 속에서 본선 경쟁상대인 한나라당을 따라잡을만한 유력한 대선후보조차 여전히 구축해놓지 못한 상태다.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는 손학규?
결국 범여권 내에서는 “범여권의 분열이 장기화될 경우 대선에서 완벽히 패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실제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대선 잠룡들은 잇따라 중도 포기를 선언했고 정동영, 한명숙, 이해찬, 김근태, 유시민, 김혁규, 문국현, 천정배 등이 꾸준하게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단순히 대선 후보가 아닌 ‘범여권 후보’로 나서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이 내놓는 일반적 시각이다.
그래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후보를 중심으로 범여권 세력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범여권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꾸준히 포인트가 상승 중인 손학규 전 지사가 범여권 인사와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어 그가 본격적인 연대 또는 세규합 수순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역시나 ‘관찰 포인트’는 손 전 지사가 누구와 만나고 있느냐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손 전 지사와 우리당 의원들과의 접촉엔 손 전 지사에게 우호적인 김부겸 안영근 신학용 등이 적극 나서고 있는데, 지난 달 29일 인천대 강연에 앞서 손 전 지사는 안영근 신학용 한광원 의원 등 우리당 인천 지역 의원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수도권 외 지역 의원들 중에는 충북 충주의 이시종, 광주의 김동철 의원 등이 손 전 지사와 만남을 가졌고, 386의원들인 우상호 오영식(열린우리당) 의원과 김효석(민주당) 의원도 손 전 지사와 만남을 가졌는데 여전히 손 전 지사는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구상하는 융화동진 정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됐든 손학규 전 지사의 최근 행보는 크게 두 가지 궁금증을 낳게 하는데, 그 첫 번째는 그가 늘상 강조해왔던대로 ‘정말 독자 세력화(독자창당)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부다. 캠프측은 “기존의 정치세력간의 통합 논의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계속 밝히고 있다.
아리송한 손 전 지사의 최근 행보
하지만 최근 손 전 지사의 움직임을 보면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존의 정치세력간 통합 논의에 직접 뛰어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낳게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한 측근은 “손 전 지사가 범여권에 발을 담궜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관측을 낳게 하는 데는 손 전 지사의 지난 달 20일 동교동 방문이 결정적 역할을 제공했다. 범여권 인사들이 동교동을 방문할 때 “성지순례”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동교동’은 ‘범여권’의 ‘고향’과도 다름없다. 묘하게도 손 전 지사는 동교동 방문 이후 각종 강연에서 DJ가 주창하고 있는 ‘대통합, 단일정당’에 동조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선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후 선진평화연대를 통한 독자세력을 구축하려했던 기존의 전략을 대폭 수정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손 전 지사의 최근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그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기 전에 범여권에서 러브콜을 받는 상황을 즐기며 최대한 상품 가치를 높이는 전술, 이른바 ‘손학규식 줄타기’가 재연됐다는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그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꾸준하게 범여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서 ‘독자세력화’와 ‘범여권 진입’의 중간에서 머물며 자신의 주가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역량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손학규식 독자창당은 이미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5월께 손 전 지사는 전진코리아 범국민 토론회에 참석해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으나,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선 “새로운 정당을 바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라며 독자창당성을 부인하는 등 오락가락한 행보를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도 캠프측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손 전 지사가 ‘독자창당하겠다’거나 ‘독자세력으로 끝까지 가겠다’고 한 적은 없다는 점을 밝혔다.
독자창당 물거품되나…진짜 꿍꿍이 속은?
외견상 손 전 지사 캠프측은 오는 17일 선진평화연대 출범 전까지는 독자세력화를 이어간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선진평화연대 출범 이후에는 범여권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손학규 전 지사가 ‘융화동진’을 만날 외치는 걸로 봐서 뭔가 믿는 배경이 있고, 대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 같은데, 탈당 석달 째, 독자신당 창당 한달 째를 맞이했지만 그의 꿍꿍이 속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