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살’ 오양수산, “이대로 몰락하나…”

오양수산 유족, 아버지 장례 막고 재산 다툼 왜 벌어졌을까?

2007-06-08     최봉석 기자

재산권 분쟁 타협점 끝내 못찾아…계약무효 VS 고인의 유지
사조, 오양수산 인수 초반부터 난항…M&A 성사 물건너가나?

“창업주의 장례식마저 파행으로 몰고 간 오양수산의 비극이 도대체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맛살의 대표기업 (주)오양수산의 오너인 故 김성수 회장의 유족간 ‘재산권’ 분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한채 장남인 김명환 부회장과 김 부회장의 어머니(김성수 회장 부인)인 최옥전씨 등 유족간의 집안다툼으로 번지자 내부 직원들로부터 터져나오는 얘기다.

‘재산권’을 두고 발생한 모자간의 신경전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어머니 최옥전씨 등 다른 가족들이 재산과 경영권을 탐내왔다” (장남 김명환 부회장측)
“아들 김명환 부회장이 탐욕으로 부친의 발인을 막는 패륜을 저지르고 있다”(부인 최옥전씨측)

그래서 김명환 부회장은 “사조산업과의 지분매각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고, 최옥전씨 등 유가족 일부는 “고인의 뜻”이라며 모자지간은 현재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결국 김 부회장측은 ‘지분 매각 무효 소송까지 검토하겠다’며 지난 8일을 기준으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내 고인의 장례식장까지 점거했고, 이에 따라 고 김 회장의 장례식은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까지 한때 치닫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김 부회장측은 “위약금을 물어주더라도 사조산업에 넘긴 주식 매매계약을 파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회장 타계 ‘하루 전’ 회사 매각, ‘우연’인가?

오양수산 가족간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 이유는 김 회장이 타계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 1일 최씨 등 유족측이 김 회장이 보유 중인 회사 주직 35.4%(101만 2천848주, 127억원)를 경쟁사인 사조산업측(계열사 사조씨에스)에 매각한 사실이 공시를 통해 뒤늦게 알려진 뒤, 이에 반발한 김 부회장측이 장례식장을 점거했기 때문이다.김 부회장측 주장에 따르면, 어머니 최옥전씨 등 다른 가족들은 재산과 경영권을 탐내왔던터라 부친이 사망하기 전날인 1일에 서둘러 사조산업측과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 부회장측은 “이번 계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이에 대해 어머니인 최씨측과 다른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전날 계약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라며 김 부회장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이다. 최씨측 유족들은 지난 6일 각 언론사에 보낸 ‘유족의 입장’이란 글을 통해 “고인이 지난 3월 법무법인 충정을 법정대리인으로 지정하고 지분매각을 포괄적으로 위임했다”고 밝히며 ‘우연설’을 뒷받침했다.이들은 또 “고 김성수 회장이 회사의 지속 발전과 직원들의 고용안정, 관련 업체의 안정적 거래관계를 위해 심사숙고를 거쳐 직접 법정 대리인을 통해 매각한 것”이라며 “주식 매각 수익으로 생긴 유족들의 수익은 상속절차가 종료되는 대로 전액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밖에 “오양수산이 다른 기업으로 인수, 합병되는 경우 오양수산 직원 고용승계 등 생존권이 확실히 보장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도 덧붙였다.최씨측의 이 같은 움직임은 “어머니 등 다른 가족들이 재산과 경영권을 줄곧 탐내왔다”는 아들 김명환 부회장의 주장과는 거리가 다소 멀다. 어머니 최씨는 “경영권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아들 “어머니가 경영권 탐내왔다”
어머니 “경영권 전혀 관심없다”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어머니 최씨측의 주장에 따르면 둘째 아들과 딸들, 사위들은 경영권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고 만약 재산을 원했다면 차라리 부인과 자녀들이 각각 1.5대 1의 비율로 지분을 물려받는 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씨 등 다른 유족들이 재산과 경영권에 탐을 내 김 회장이 사망하기 전날인 1일에 부랴부랴 사조산업과 계약을 맺은 것은 절대 아니라는 주장이다. 고 김 회장은 부인 최씨와의 사이에 2남 4녀를 두고 있는데, 오양수산의 경영은 장남인 김 부회장이 줄곧 맡아왔고 네 명의 딸은 각각 검사, 변호사, 의사 등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인이 당초 ‘사회 환원’에 큰 뜻이 있었다는 증언도 최씨 등 유가족들이 재산과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최씨는 “최근까지도 서울대에 10억원을 기부하는 등 사회 환원에 큰 뜻이 있었고 (가족들은) 이를 받들려 한다”고 말했다.그렇다면 오양수산의 ‘비극’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단순히 지난 1일 사조산업에 대한 대주주의 지분매각과 이에 반발한 장남의 ‘충동적’ 장례식장 점거농성 때문일까.가족들의 증언과 언론보도 등에 의하면, 가족간의 분쟁은 김 회장이 지난 2000년 11월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김 회장이 공식적으로 활동을 못하면서 김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시작됐다.김 회장은 지난 1953년 출판사인 법문사로 출발한 뒤 1969년 오양수산을 설립했다. 이후 이 회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으나 지난 2000년 병으로 김 회장이 쓰러진 직후부터 ‘평소 아버지의 뜻과 어긋나게 행동했다’고 알려진 장남과 본격적으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경영수업을 받던 1986년 미국에 설립한 자회사 ‘아스틱스톰’이 모(母)기업의 생존을 위협하자 김 회장의 눈 밖에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 회장의 눈 밖에 난 아들
결국 경영에서 퇴진시켜려 했으나…

설상가상으로 ‘적자경영’이 지속되자 급기야 양측은 법적 공방까지 벌였다. 김 회장은 결국 장남인 김 부회장을 경영에서 퇴진시키려 했다. 그러나 주주총회에서 이는 무산됐다. 김 회장이 ‘경영능력 부족’을 이유로 지난 2003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 재선임을 저지했으나, 김 부회장이 ‘물리력’을 동원, 이사로 등재해 회사를 장악한 것이다.그러나 김 회장은 같은 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에 실패해 회사를 상대로 주총결의 무효 소송을 제기, 3심까지 승소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이사 선임 등의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주총 결의 무효 소송을 내기도 했다. 아버지로부터 퇴진압박에 시달려왔던 김 부회장도 이에 질세라 지난해 어머니인 최씨를 상대로 39억원 상당의 산업금융채권 56장에 대해 채권반환 청구 소송을 내는 등 가족간의 갈등은 파국으로 끊임없이 치달으면서 오양수산이라는 썩 괜찮은 기업을 벼랑 끝 위기로 내몰았다.이런 가운데 김 회장은 지난 1월 “공과 사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회사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장남에게 회사를 맡겨서는 안된다”며 “옛날처럼 창업주의 자식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회사를 승계할 순 없다”고 법원에 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어쨌든 이런저런 현 상황을 요약하면,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 김 회장이 생전 오양수산의 경영상황을 개탄해왔고, 그래서 ‘앞으로 사조산업이 경영을 맡아 회사를 살려달라’고 부탁한 것쯤으로 정리될 수 있다.현재 오양수산 임직원들은 사조산업의 오양수산 인수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직원 100여명은 지난 7일 사조측과 유족의 지분거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영안실을 점령해 조문을 막기도 했고, 30여 명은 같은 날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가 사조산업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임직원, 노조 “원천 무효”
“사조산업은 파렴치한 기업” 주장

이 회사 임직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비상대책본부도 구성, “며칠째 의식도 없던 환자를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한 사조산업은 기업윤리도 없는 파렴치한 기업”이라고 주장하며 “가족들의 배신으로 경영권을 잃어버리는 일은 용납할 수 없어 경영권을 끝까지 사수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들은 특히 “김명환 대표이사가 지난 2000년부터 법적 경영인으로써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사재를 털어 직원들의 월급을 한 번도 밀리지 않는 등 성실한 경영을 해 왔다”며 “김 대표이사도 계약내용을 모르는 밀실계약”이라고 지적했다.사조산업의 계열사인 사조씨에스는 지난 3월부터 오양수산 주식 11.1%를 사들인 데다 이번 창업주 주식 인수로 회사지분 46.5%를 보유하게 돼 사실상 경영권을 갖게 됐다. 결국 오양수산 직원들의 반발은 ‘고용불안감’과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일단 풀이된다. 오양수산 임직원들은 ‘임직원 일동’이라는 명의의 성명을 통해 “왜 오양수산을 사조산업에 팔아넘겼느냐, 사조산업이 어떤 회사인지 알고는 있느냐”고 되묻고 있다.업계에 따르면 사조산업은 지난해 17억5천8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상태다. 오양수산도 지난해 3월부터 올 4월까지 무려 119억4천500만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오양수산의 대규모 적자가 사조산업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면, 인수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사조산업측도 난감한 표정이다. 고 김성수 회장의 지분매각 계약 사실이 공시로 알려진 후 김 회장이 사망하고 가족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M&A 절차가 자연스럽게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증권업계에서는 매각계약이 비록 이뤄졌더라도 추후 합의사항에서 절충점을 찾지 못할 경우 틀어지는 경우가 많은 점을 강조하며, 매각하는 측(사조산업)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을 경우 M&A 성사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임직원들의 반발이 향후 매각과정에서 일정부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한편 식품과 수산, 레저 부문의 수직 계열화를 통한 지주사로의 몸만들기 작업이 한창인 사조산업측은 오양수산 오너 유족간의 재산권 분쟁에 대해 “조만간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한 뒤 현 경영진인 김 부회장측과 긴밀히 협력해 경영권을 행사해 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오양수산의 현 경영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공식적인 입장 또한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