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대선불출마 선언 전문
2007-06-12 매일일보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평화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이루는 작은 밀알이 되겠다는 결심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시간 이후,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중단하고, 평화개혁세력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온몸을 던질 것입니다. 저에게 가진 기득권이 있다면 전부 던지겠습니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성찰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 6월 앞에 다시 섭니다. 6월항쟁 20년! 기념행사와 계승사업이 진행되는 자리마다 저는 그 날의 감동과 항쟁정신을 간직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6월항쟁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최고봉이며 민주주의의 분수령이었습니다. 그 날 우리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가 들불처럼 번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우리는 항쟁의 거리에서 온 국민의 의로운 몸짓을 보았고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국민을 만났습니다. 그 후로 10년, 군사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사회로부터 우리는 역사적인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했으며, 기적과 같은 정권재창출을 통해 민주사회로 이행했습니다. 지난 20년의 세월은 한 마디로 온 국민이 단결해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행진에서 승리해온 역사였습니다. ❚ 대통합으로 희망의 새 불을 지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맞은 6월, 20년이 된 이 6월에 평화개혁세력이 세 갈래, 네 갈래로 찢어져 대통령선거에 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상황은 절박합니다. 6월 한 달 동안 대통합의 기적을 이루지 못하면 평화개혁세력이 상처입고 분열된 채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수구냉전세력에게 자진해서 권력을 헌납하는 일이고, 수구냉전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배신행위입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20년 전, 민주세력의 분열 때문에 6월 항쟁이 군부독재정권의 연장으로 귀결되는 기막힌 상황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언제나 단결할 때 승리했고, 분열할 때 패배했습니다. 저는 한평생 민주주의자의 길을 걸어왔고, 대연합과 대단결을 통해 승리하는 길을 열어왔다는 것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민주개혁세력이 직면한 엄중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얻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부터 제 온 몸을 던져서 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막고, 실패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한나라당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습니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닙니다. 거짓희망입니다. 절망한 마음에는 나중에라도 희망의 불씨를 피울 수 있지만, 거짓희망을 품으면 다시는 희망의 불씨를 피울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제시하는 희망은 거짓희망입니다. 한나라당이 꿈꾸는 나라는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사회가 더욱 공고해지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자유주의의 방해물, 경쟁을 방해하는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승자독식의 천국입니다.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나라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공공적 안전장치가 가장 심각하게 파괴된 나라입니다. 한발만 더 내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입니다. 한나라당은 그 천 길 낭떠러지로 가자고 합니다. 이런 한나라당이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제시하는 미래와 대비되는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내걸고 한나라당과 치열한 불꽃공방을 벌여야 합니다. 특별한 경쟁과 검증도 없이 우리 사회가 승자독식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지대한 발전을 이룩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확고한 기반위에서 우리는 평화의 길을 닦고 통일로 가는 문을 열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우리 민족이 번영과 중흥으로 나아가는 생명과 같이 소중한 길입니다. 민주주의로 인해 모든 국민은 개개인의 개성과 창의를 꽃피웠고 우리는 사회적 다양성을 추구하며 더 풍요롭고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수백만이 애독하며 천만이 넘는 국민이 관람하는 문학과 영화의 예술성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소통의 광장인 인터넷도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통제와 지배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개혁도 이루었습니다. 돈 정치를 추방하고 깨끗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고 있으며, 권위주의 보스정치를 청산하고 상향식 공천, 국민참여 후보선출 등 바람직한 정치문화, 정당문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제 지역주의만 청산하면 우리 정치의 선진화도 먼 미래만의 일은 아닙니다. 이러한 민주정치의 발전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관치경제를 청산하고 투명하고 자율적이며 동시에 공정한 시장경제의 발전의 토대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위기, 역사적 반동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극우적 보수화, 냉전적 수구화, 양극화 신자유주의의 범람, 특정 지역 패권의 부활 등 그 동안 우리 국민의 피와 땀, 열사들의 숭고한 죽음과 희생으로 일구어 온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우리의 앞길을 다시 가로막고 있습니다. 2007년 대선은 한마디로 지난 20년간 우리가 밀고 온 모든 것을 걸고 이를 거꾸로 되돌리고자 혈안이 된 한나라당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격돌, 대회전의 시간입니다. ❚ 백의종군 하겠습니다. 지금 국민들의 마음은 한마디로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렸으니, 합당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에 특별한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집권은 우리가 이루어온 모든 것에 대한 전면적 부정입니다. 민주화운동세력과 참여정부의 일부 실패가 우리 국민과 민족이 밀고 온 모든 것에 대한 부정으로 치부되는 오도된 가치관을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작은 분노에 앞을 가려 우리의 미래와 민족과 국민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위기를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의 분노와 배신감은 정당한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렵다고 국민을 탓하거나 국민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죄가 사죄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잘못을 아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잘못을 고치는 일입니다. 저는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제가 그 짐을 지겠습니다. 김근태가 책임을 지고 제 몸을 던지겠습니다. 김근태가 십자가를 지고 무덤 속으로 걸어가겠습니다. ❚ 모두 광장으로 나서야 합니다. 평화개혁세력 내부에는 새로운 사회의 희망에 대해 몇 가지 청사진이 있습니다. 이제 그 청사진을 설계도로, 조감도로 바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치열한 내부경쟁을 통해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분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장이 바로 완전한 국민참여경선, 오픈 프라이머리입니다. 빠른 시일 안에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한나라당과 다른 미래 비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부족했던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실행계획을 제시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 간곡히 요청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정부의 성공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성공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 시선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을 요청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참여정부의 임기가 반년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안정적인 국정 마무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울러 그만큼 중요한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희망찬 미래를 만드는 일입니다. 현재를 잘 운영하는 것과 미래를 잘 준비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평생을 노무현 대통령과 뜻을 함께 해온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 미래에 대한 준비는 그분들에게 맡겨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은 미래를 담당할 사람들의 몫입니다. 미래를 담당할 분들에게도 결단을 촉구합니다. 수차례의 옥고와 간난의 끝에서 진실을 만난 위대한 여성 지도자 한명숙 전 총리! 정풍운동을 이끌고 몽골기병의 패기를 보여주었던 정동영 전 의장! 독재 치하에서 일신의 영광을 버린 진실하고 바른 정치인 천정배 전 장관! 지역주의에 맞서 일신의 안락함을 포기한 성공한 CEO 김혁규 전 지사! 청춘을 저와 함께 보냈고 결단의 리더십을 가진 이해찬 전 총리! 다섯 분에게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조건 없는 국민경선 참여를 선언해 주십시오. 오랜 벗 손학규 전 지사! 저는 한나라당을 뛰쳐나올 때 가졌던 도전과 정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형 기업의 최고 모델 문국현 사장! 창조적 국가건설을 꿈꾸는 당신의 비전을 존중합니다. 두 분 모두 조건 없이 열린 광장에서, 두 분의 꿈과 진실을 알려 주십시오. 국민경선의 장에서 경쟁해 주십시오. 한국사회를 이끌어 주신 재야 원로, 선배님들, 시민사회의 지도자들께도 혼신의 힘을 다해 요청합니다. 참여정부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할일이 남아 있습니다. 앞장서 나서 주십시오. 대선승리를 바라는 우리당의 동료의원 여러분, 통합민주당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의원여러분, 그리고 중도통합신당의 의원여러분, 결단해 주십시오. 소통합을 반대하고, 국민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대통합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십시오. 국민들과 함께하는 국민경선 축제를 준비하고, 대선승리와 대통합의 시나리오를 함께 준비해 주십시오. ❚ 김근태는 문지기라도 하겠습니다. 모두 작은 욕심과 기득권을 버려야 합칠 수 있습니다. 서로 가진 것을 지키려 한다면 통합은 불가능합니다. 저부터 버리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열린우리당의 당적을 벗고 대통합의 광장을 만들기 위해 벌판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벌판에 서겠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묵묵히 통합의 징검다리를 만드는 일만 하겠습니다. 대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 역시 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2007년 대선이 대한민국의 10년 미래를 가르는 분수령이기에,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그리고 또, 버릴 것이 있다면 버리겠습니다. 국민들에게 돌려드릴 것이 있다면 다 돌려 드리겠습니다.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너무 작은 힘이어서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약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먼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준 많은 선배, 동료, 후배 여러분들께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결단하는 것이 지난 10여 년 동안 김근태에게 보내준 국민들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결론을 내린 만큼 이해해 주시고 지지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모두가 결단하면 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6월까지 결단하면, 시간의 장애물을 함께 넘을 수 있습니다. 평화와 번영, 민주주의와 개혁의 정권창출을 위해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6월 12일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