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지난 몇 십년간 우리는 많은 집을 지었다. 그런데 자기 집 없는 사람이 오히려 늘었다. 물론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주택 수요가 늘어난 것을 생각하면 이만큼 지어 주택보급률 100%를 넘긴 것만 해도 세계적으로는 상당한 성취를 보인 것도 맞다.그러나 왜 아직도 집 문제로 겪는 고통은 줄어드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복지국가라 하는 나라들을 보자. 자가거주율은 우리와 같은 55% 언저리다. 자기 집에서 사는 사람이 많아서 복지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관건은 40%가 넘는 세입자들의 처지다. 집은 원래 무척 비싼 물건이다. 투기나 거품이란 게 없어도 마찬가지다. 꼬박 저축해도 20년이 걸리는 집이라면 반값이 된다 한들 아직도 10년이 걸린다. 그 동안에는 빌려서 살아야 한다. 빚을 내서 사는 방법도 있지만 대출도 아무나 받을 수는 없다보니 많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무작정 대출을 권하는 것도 사실은 위험하다. 소화 못할 떡을 잘못 떠안겨주었다가 모두가 탈이 난 것이 십년 전의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누군가 위험을 감수하며 돈을 융통하고 고생해서 땅을 구해 건물을 지어야 한다. 또 누군가는 이 집들을 사줘야 한다. 다주택자들이 있어야 현재 집을 살 목돈이 없는 이들도 전세나 월세로 당장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 은행과 건설회사와 다주택자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사람이 밥 대신 건물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으니, 집주인들도 세입자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런데 서로가 고마워하는 정도가 좀 다를 수 있는 것이 수요와 공급이 엇갈리는 시장의 생리인지라, 민간임대주택에서는 고마움이나 칭송뿐만 아니라 섭섭함이나 원성도 커져갔다. 국가가 짓고 빌려주는 공공임대주택이 등장한 배경이다. 다주택자들의 민간임대나 정부의 공공임대 이외의 방법도 있다. 지역의 사정과 입주자의 형편을 잘 아는 당사자들이나 사회적 경제주체, 예컨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이 나서는 방식이다. 이윤과 사회적 가치의 균형을 추구하는 비영리, 혹은 제한 영리조직들이 공공의 지원을 받아 토지와 자금을 조달하고 입주자들은 부담가능한 비용으로 오랜 기간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주택을 외국에서는 ‘소셜 하우징’이라 한다. 우리말로 하면 ‘사회주택’이다. 나라에 따라서는 사회주택이 공공주택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고 두 부문이 병존하는 경우도 있다. 2015년 조례 제정 이래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주택 사업을 진행하는 서울시에서는 공공주택을 공급하고 있는 SH공사와의 협력을 통해 현재 15개 사회적 경제주체가 약 700여 세대의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부담가능한 임대료, 안정적인 계약 조건(서울시의 경우 시세 80%로 최장 10년 거주), 그리고 공동체 공간을 가진 사회주택이 먼 유럽의 사례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앙정부 역시 사회주택을 추진할 것을 주거복지로드맵에서 밝혔고 시범사업 1, 2호가 현재 진행 중이다. 사회주택협회에 가입한 회원조직들은 50여개에 이른다. 출생신고를 마친 사회주택이 이제 걸음마를 내딛으려 한다. 물론 사회주택이라 해서 우리나라 부동산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아니겠다. 어쩌면 아직은 사회적 경제주체라는 ‘난장이’들이 모여서 ‘작은 공’ 몇 개 쏘아올린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출금 상환에 허덕이거나 치솟는 전월세 값 때문에 원치 않는 이사를 다니기 보다는 우리의 고통을 아는 우리 곁의 난장이들과 힘을 합쳐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