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나쁜 언론 사태’ 더 두고볼 수 없다
매일일보비즈 음해한 기업, 응분의 대가 치르게 될 것
[매일일보=특별취재팀] 죽은 화두였던 ‘나쁜 언론’이 수면 위로 재등장한지 열흘이 지났다.
1990년대 후반 정치적인(?) 이유로 시작된 ‘안티조선운동’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과정에 자연스럽게 태동했던 ‘안티 조중동’ 운동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흐지부지된 것을 생각하면 이번 논란의 수명도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토론이 다시 시작됐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인 일이다. 토론을 하기 위한 멍석이 깔렸고 상대편이 처음부터 완전히 발가벗고 덤벼든 만큼, 우리 쪽도 한 꺼풀 윗옷을 벗고 토론의 장에 나서볼까 한다.
‘함량 미달’ 보도자료의 의의
한국광고주협회가 5월17일 발표한 ‘광고주가 뽑은 나쁜 언론’ 보도자료는 ‘기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팩트와 주장에 대한 구분 및 연결과정이 흐릿해 알아보기 어렵고, 핵심 팩트에 대한 검증․검토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함량미달’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해야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함량미달의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나쳤거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덮어두었던 치부를 광장 한복판으로 끌어내 함께 해결책을 고민할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도자료 자체의 법적 도덕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 시도 자체에 대해서는 평가해줄만 하다고 본다.
언론계의 공공연한 비밀
광고주협회가 언급한 ‘나쁜 언론’의 갖가지 행태들은 언론계 종사자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접해지는 대한민국 언론기업들의 고질적 병폐를 담고 있다.
각 회사별 광고영업 담당자들의 개인 품성 차이에 따라 접근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언론매체의 ‘기사’가 ‘거래’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쉽게 말해, 광고 매출이 언론사 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언론사들이 (우호적인 기사를) 써서 받는 광고보다 (비판적인 기사를) 안 써서 받는 광고가 더 많다는 것이 냉정하게 들여다본 대한민국 언론업계의 현실이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정도언론’이라 믿고 있는 언론매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단적인 예를 들면, 매일일보에 들어오는 대기업 관련 폭로성 혹은 민원성 제보의 과반수 이상은 당신이 ‘양심 있는 언론’, ‘좋은 언론’이라고 믿어온 매체들의 문을 두드려 본 것들이다. 취재 과정에 혹은 기사를 다 써놓고도 막판에 뭔가에 막혀 기사화되지 않은 아이템들이 군소언론매체의 몫으로 넘어온다는 말이다.
기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제보를 접수한 기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제보 자체를 검증하는 것이다. 주장이 얼토당토않게 앞뒤가 안 맞고 아무 근거도 없거나 사적 이익만을 위해 매체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보이는지 여부를 ‘상식’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이다.(광고주협회가 주장한 ‘허위 사실 및 음해성’ 제보는 이 단계에서 상당부분 걸러진다)
이런 제보 중에는 과거 다른 매체가 보도했으나 별 파급력 없이 사장됐던 것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접수된 제보 내용에 보도할 만한 변화된 팩트 혹은 다른 매체들이 간과하고 놓쳤던 부분이 있는지를 다시 판단한다. 광고주협회가 ‘종료된 사건 기사 재탕’이라고 부른 이런 아이템을 언론계에서는 ‘후속보도’라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아이템에 대해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된다. 취재 과정에 반대쪽 당사자인 기업 측의 공식입장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협회의 주장에서 ‘기사내용을 미리 공지한다’는 부분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종료된 사건 재탕’=후속보도, ‘기사 내용 사전 공지’=확인 취재
많은 경우 대기업 홍보실 관계자들이 취하는 대처방식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정말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시간 끌기’로 의심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내용은 모르지만 기사 쓰면 무조건 소송 건다’는 알쏭달쏭한 입장이 대기업 홍보 담당자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답변이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만 있는 그대로 쓰면 되는 일반 네티즌과 달리, 일방의 주장만을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불편부당’의 원칙을 뼛속 깊이 실천하는 기자들의 특성을 악용해 제보자와 물밑 협상에 들어갈 시간을 벌거나 보도시점을 조금이라도 뒤로 늦춤으로써 파급력을 떨어뜨리려 시도하는 것이다.
마감에 쫓기는 기자들 중에는 팩트에 대한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힘들어하다 취재를 포기하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해당 기업의 입장이 나올 때까지 담당자를 ‘다그친’다.(이 과정을 “하루 종일 해당 기업에 전화해 광고․협찬 요청을 다그침”이라고 본다면 황당한 일이다)
완성된 기사가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공표되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해당 대기업에서 갖은 수단을 동원한 회유와 협박이 들어오는 것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기사에 들어있는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 잡아 소송을 거는 기업도 있는 상황에서 ‘허위사실 및 근거 없는 음해성 기사’를 올려놓고 거래하자고 제안하는 간 큰 언론사가 있다면 그 언론사가 ‘군소매체’일 가능성은 0에 가까울 것이라는 점이다.
무시해도 되는 언론?
문제의 보도자료에서 광고주협회는 “과거에는 발행부수가 미미한 유사언론들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포털에 기사가 올라오면서 소비자들이 기사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사실로 받아들여 기업의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포탈을 이용한 뉴스 소비가 활성화되기 전까지 기업들은 부수가 미미한 비주류 언론 대부분을 무시했다. 당시에는 비주류 언론매체가 기업 관련 특종을 낼 때마다 이른바 ‘4대 일간지’로 대변되던 메이저 신문들이 돈을 벌었다.
전술했듯이 (좋은 기사를) 써서 버는 돈보다 (나쁜 기사를) 안 써서 버는 돈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가판보다 배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신문시장 구조는 언론계의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 구조를 심화시켰다.
인터넷은 이 구조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 어떤 언론사보다 막강한 파급력을 갖고 있는 포털들이 뉴스의 중개상으로 등장하면서 대기업들이 ‘무시해도 되는 언론사’라는 개념에 큰 변화가 왔다.
시대 변화 인식에서 대책도 나온다
광고주협회는 취재․편집인력 3인 이상을 갖추고 정식 설립된 인터넷신문이 2577개나 된다며 볼멘소리를 냈지만, 이제 그런 볼멘소리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수천 개에 달하는 인터넷매체만이 아니라 그 몇 만 배인 네티즌 전체가 움직이는 ‘1인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기성 언론의 입을 막고, 이미지 광고로 돈을 뿌려댄다고 기업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 구축과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지난 4월 중순 있었던 ‘신라호텔 한복 사건’이 이슈화되고 해결된 과정은 대기업들에게 닥친 매체 환경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당시 사건이 확산 전파되는 과정에 등장한 99%의 언론매체들은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흐름을 대세 추종한 ‘조연’에 불과했다.
초기에 원만하게 해결될 뻔 했던 사건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된 과정에 기름을 부은 것은 신라호텔 측의 거짓말이었고, 결국 대표이사가 직접 사과를 하고 정치권과 문화체육관광부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포탈이 가진 정보 파급력 때문에 기사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는 광고주협회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한복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넷심을 움직이는 힘은 언론매체가 창작해낸 ‘센세이션한 제목’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갈망과 권력자의 위선에 대한 분노이기 때문이다.
전경련, 광고주협회 그리고 시사서울B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