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적폐청산의 미학
2019-05-17 송병형 기자
오랜 시간 먼지가 쌓여 더러워진 바닥을 닦아내다보면 처음 새하얗고 깨끗했던 천은 더러운 걸레가 되어 버린다. 바닥이 깨끗해지면 깨끗해질수록 걸레는 더욱 더러워진다. 적폐청산 작업도 이와 같지 않을까싶다. 온통 오물천지인 세상을 파헤쳐 청소하려면 오물이 묻지 않을 수 가 없다. 느리더라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면 그나마 오물이 덜 묻겠지만 세월이 기다려줄리 만무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치로 인해 현 정부의 적폐청산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음이 들리나보다.시대를 앞서갔던 작가 김구림의 작품 ‘걸레’(Wiping Cloth)는 이런 세상의 이치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제2회 국제 임팩트 아트 비디오전에 초청되어 출품한 작품이다. 한 사람이 테이블 앞에 서서 걸레로 더럽혀진 테이블을 닦고 있다. 흰 천으로 큰 테이블을 계속 닦는다. 하얀 천이 더럽혀져 회색으로 변하고 점점 시커멓게 때에 찌든다. 반대로 테이블은 깨끗해져서 다시 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지속되는 걸레질에 걸레는 낡아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테이블에 헤진 걸레 조각들이 떨어진 것만 남으면서 비디오는 끝난다. 걸레가 조각이 될 정도의 낡아 없어지는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몇 분 안의 행위로 압축시킨 것이다.영상뿐 아니라 일본에서 발표한 판화 작품의 다른 ‘걸레’도 있다. 같은 해 일본 국제판화비엔날레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전시장에 실제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테이블보로 보자기를 얹었는데, 보자기에 실크스크린으로 걸레 물이 번진 듯한 흔적을 이미 찍어놓았다. 다시 그 위에 실제 걸레를 올려놓았다. 판화에 설치미술이 접목되었다. 판화에도 실험적 기법을 끌어들이며 판화의 주 특징인 복제성을 삭제시킨 새로운 판화 이론을 제시한 셈인데 김구림이기에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최근 몇 년 전부터 김구림의 60, 70년대의 작품과 퍼포먼스가 전시, 재연되며 당시 너무 앞서 제재되었던 작품들과 작품세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작년에는 문화예술 발전에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미술계 역대 이중섭, 천경자, 김창열 화백에 이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더 주목할 것은 다른 데에 있다. 그의 작업은 무궁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갖은 개인적인 식사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며 받은 인상이다.그는 “작품을 보면 연도를 보지 않아도 시대성이 나타나는 작품을 하는 것이 작가이다. 나는 언제나 새롭고 현대적인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 83세인 작가 김구림은 오늘도 내일도 시대성의 이미지와 마주침을 주저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아방가르드가 끝나지 않아 더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