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사랑의 메신저' 로버트 인디애나를 추모하며
2019-05-24 송병형 기자
“한 사람이 겪은 하나의 사랑조차 늘 한 색깔로 존재하지 않는다. ‘LOVE’를 그리는 것이 ‘TREE’를 그리는 것보다 더 의미 있음을 알았다. 사랑은 삶의 모든 양상을 담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팝이다.”지난 19일 세상을 떠난 미국의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말이다. 필자에게 인디애나의 조각 작품 ‘LOVE’는 가장 사랑스러운 현대미술작품이다. ‘LOVE’는 전 세계 곳곳에 설치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수만 가지 감정과 영근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그의 작품을 사랑했던 전 세계 많은 사람들과 미술계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대표작 ‘LOVE’를 올리며 SNS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인디애나는 주로 글자나 숫자를 이용해서 문학적 상징성이 내포된 기하학적 추상형 작품을 완성해왔다. ‘EAT’, ‘DIE’, ‘HUG’ 등과 같은 단어를 미국적 간판, 표지, 상표 등 간결한 패턴에 삽입한 형태를 통해 ‘먹는다’, ‘죽는다’, ‘껴안는다’ 등의 고유한 의미가 인간에게 일어나게 하는 본능적 연상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그의 개인사가 담겨 있다. 어머니가 ‘밥은 먹었니?’라고 그에게 남긴 유언(EAT), 어린 시절 이사 갔던 횟수(21), 아버지가 근무하던 필립스 66의 간판(66) 등이 반영된 것이다.특히 그의 대표작 ‘LOVE’ 시리즈는 단순한 개인사의 반영이 아닌 그의 인생을 좌우한 작품이다. ‘LOVE’는 가운데 알파벳 ‘O’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고 정면의 붉은색과 대비되는 녹색 파란색 등이 옆면에 경쾌하게 사용되었다. 그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본 ‘God is Love’(신은 사랑이다)라는 문구에서 ‘사랑’만 따왔다. ‘O’자를 얌전하게 세웠더니 어쩐지 재미가 없어서 살짝 기울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 MOMA가 크리스마스 카드 디자인으로 의뢰받아 처음 선보인 뒤 큰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인디애나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1960년대 미국 사회를 풍미한 반전운동의 상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는 문자가 저작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라 그에게 시련을 안기게 된다.‘LOVE’는 티셔츠, 머그잔 등 많은 상품에 무분별하게 새겨지기 시작했다. 인디애나는 실질적인 저작권 수익은 챙기지 못한 채, 상업적인 화가로 오명을 안으며 큰 상처를 받아 오랜 시간 은둔하기에까지 이른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전달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시련이 되어야 했던 ‘LOVE’다.그는 2008년 은둔 중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선후보의 캠프를 통해 ‘HOPE’ 작품을 발표, 세상과의 대화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였다. 사랑과 희망 인류애가 담긴 그의 작품들은 뉴욕, 도쿄, 예루살렘, 리스본, 싱가포르 등 전 세계 곳곳에 남겨져 랜드마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대신증권의 명동 신사옥인 대신파이낸스센터 앞에 ‘LOVE’ 작품이 설치돼 있다. 히브리어, 스페인어 등 그 나라의 언어로 제작된 ‘LOVE’도 인상적인데 한글로 제작된 ‘LOVE’를 보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