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파국으로 치닫는 이랜드 사태

비정규직 투쟁에 정규직 ‘기꺼이’ 동참…해고대상 아니지만 너도 나도 투쟁 동참

2008-07-13     류세나 기자

[153호 사회] 전체 노동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 1일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둘러싼 파열음이 노동 현장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비정규직법의 입법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부당한’ 계약해지 등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이 악화되지 않도록 보호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해고 되고 있는 것.

비정규직법의 취지에 맞지 않게 ‘편법’을 쓴 바람에 노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곳은 이랜드그룹. 이랜드그룹은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뉴코아아울렛과 홈에버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계산원 750명에 대해 계약해지와 아웃소싱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노사간의 극명한 입장차이로 노조의 매장점거 농성이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농성 중인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위원장 김경욱) 조합원들과 경찰 사이에 첫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노조의 무기한 파업은 현재 양측 모두의 경제적 손실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시민들 또한 생활편익 저해와 공권력 투입으로 인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기에 사태의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게 노사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매일일보>이 노사갈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랜드 파업 현장을 취재했다.

비정규직 해고 및 외주 용역업체 전환 등을 놓고 지난 10일을 기준으로 꼬박 11일째 매장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랜드 일반노조는 이날 오전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 내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가로막은 채 경찰과 대치 중이었다.식품매장으로 통하는 1층의 모든 입구는 봉쇄됐고, 노조원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은 1개의 입구마저 쇼핑카드, 동전교환기 등으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노조원들은 취재기자는 물론이고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의 신분과 방문 목적을 일일이 확인한 후 내부로의 출입을 허가했다.노사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면서 사태가 장기화되고 이에 따라 농성도 길어지고 있지만 노조원들의 투쟁 의지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해 보였다. 이들은 맨바닥에 상자만을 깔고 앉아 있으면서도 “부당해고 박살내고 현장으로 돌아가자. 비정규직 결사투쟁”의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구호를 외칠 때만큼은 눈물을 훔치는 노조원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랜드 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은 그야말로 ‘억울하다’며 하소연이다. 김 위원장은 “노조는 노동부가 자랑하고 홍보했던 비정규직보호법의 취지에 따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시정과 고용보장을 요구했을 뿐”이라면서 “왜 법과 원칙은 늘 힘없는 노동자들에게만 그렇게 단호하고 잔인하게 적용되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날 서울지방노동청에서 가진 이랜드 노사간의 3시간에 걸친 협상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장기적으로 파업 중인 사업장이 늘 그렇듯, 서로의 상반된 입장차만 재확인하는 자리였을 뿐, 양측 모두 아무런 소득이 없는 채로 결렬된 것이다.

협상은 결렬…‘희망’은 있다
‘혹시나’하고 기대감을 가졌던 노조원들은 실망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농성장은 밝은 분위기였다. 자신들이 얼마 전까지 즐겁게 일했고, 현재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홈에버 계산대에는 색종이로 접은 색색깔의 종이학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그 종이학들에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원직복직 등의 소망이 담겨있다. 일하던 곳으로 다시 복귀하길 바라며 고이고이 접은 ‘희망의 학’이다.‘희망’은 ‘정규직’의 동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보름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조원들의 약 70%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들이다. 홈에버 인천 계산점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A씨는 “비정규직 문제는 이랜드그룹만의 문제가 아니고, 나아가 내 자식들의 문제로도 번질 수 있다”며 “우리는 단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보장된 일자리를 얻으려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이들의 ‘바람’은 ‘동료애’에서 더 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흥점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오임숙(41)씨는 해고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번 ‘비정규직 투쟁’에 동참했다. 자신을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라고 소개한 오씨는 바로 옆에서 일하던 동료가 계약기간 만료 5일 전에 해고통보를 받은 것을 보고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복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정작 일할 자리가 없는데 복지를 따질 상황이냐. 정치인들은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월급으로 한달만 생활해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씨의 말이다.오씨처럼 노조원 상당수는 사측만이 아니라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랜드 일반노조 유상헌 조직국장은 “파업을 선포하자마자 회사가 ‘직무급제 정규직 채용 공고’를 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직무급제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입사지원서를 쓰게 해 신규채용 방식으로 선발하겠다는 속셈”이라며 “차라리 정부가 비정규직법안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텐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랜드 일반노조 이미애 교육선전국장은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언론을 통해 ‘노조는 3개월 이사된 사람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무리한 요구’라고 밝혔다. 우리는 18개월 이상의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고, 3개월 이상의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고용안정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며 “노동부 장관마저 사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전했다.

노조 ‘한숨’…사측 “답해줄 수 없다”

<매일일보>은 노조의 ‘고충’과 관련, 사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이랜드 노사협력실장에게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이번 이랜드 노조사태와 관련된 모든 인터뷰는 본사 홍보팀이 담당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아무런 대답을 해줄 수 없다”는 말로 직접적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랜드 홍보팀도 마찬가지였다.기자는 홍보팀과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이 역시 “미팅 중”, “30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줄 것” 등으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30분 후에 전화를 걸었을 때는 담당자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또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언론사로부터 가장 많은 전화를 받았을 홍보실측은 ‘더 이상의 답변이 힘든 듯’ 통화 중을 알리는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지난 11일 이랜드 일반노조가 홈에버 시흥점을 점거한다는 소식에 이날 홈에버 시흥점은 영업을 중단하고 임시휴점에 들어갔다. 기자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시흥점 앞 도로는 경찰병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매장 입구는 경찰병력에 의해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시민 박모(45ㆍ여ㆍ시흥시)씨는 “이랜드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무슨 이유 때문에 농성을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면서 “파업으로 인해 시민들은 불편을 겪고, 노사 모두 금전적 손실이 클텐데 서로를 위해 영업을 하면서 투쟁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시흥점은 다음날인 12일 정상적으로 영업에 돌입했다. 비정규직 문제로 이랜드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말로만’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