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을 불법 간판 천국으로 만든 사람들

한강변 간판 규제 고시는 21세기 한국판 ‘금주법’인가

2011-06-20     송병승 기자


[매일일보=김경탁·송병승기자] 대한민국에서 ‘법’은 어떤 존재일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속담, 그리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관용적인 칭찬문구는 한국의 서민대중들이 법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법치’를 강조했음에도 일반 국민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전해주지 못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법’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서민대중의 불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고 그 불신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다. <매일일보>은 354호에 실린 ‘’라는 기사를 통해 영등포구청이 관할하고 있는 여의도 공원 미니스톱에서 간판이 내려졌다가 다시 걸린 사연을 보도한 바 있다.후속취재과정을 통해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위배되는 편의점 간판의 문제는 영등포구청 관할이나 미니스톱 편의점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임을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대규모 브랜드 편의점체인들, 관할 구역 내에 벌어지고 있는 불법에 대해 눈감은 각 구청, 한강공원 전반의 관리를 맡고 있음에도 편의점들의 불법 행태에 신경도 쓰지 않는 한강사업본부가 얽힌 3각 관계에 현미경을 들이대 봤다.

각 관할구청 “정기적으로 순찰은 하지만 단속은 한강사업본부 책임”
한강본부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 단속 안 할 것”…법 개정 노력은?

지난 3월 한강변 편의매점들의 간판이 일제히 내려지는 일이 벌어졌다. 영등포 구청 도시디자인과 정비팀의 단속에 불법 간판으로 적발된 것. 그러나 이후 한강변 편의점들은 다시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관할 구청 “관리 책임은 ‘한강사업본부’”
 
현재 서울권에 위치한 29개 한강변 매점을 운영하는 편의점 체인은 패밀리마트와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 3개 브랜드로, 이중 롯데그룹 계열인 세븐일레븐이 14개, 일본계 브랜드인 미니스톱이 11개, 범삼성가인 보광그룹 계열의 패밀리마트가 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광진구 관할인 뚝섬지구에는 3개의 미니스톱 편의점이 운영되고 있는데, 뚝섬 1호점에는 6개, 2호점도 6개, 3호점 역시 6개의 간판이 부착돼 있다. 2008년 발표된 광진구 ‘옥외광고물 등의 특정구역 지정 및 표시제한·완화 고시’에 따르면 이 지역은 ‘일반권역’에 속한다. 일반권역은 1개 업소당 1개의 간판을 표시 할 수 있으며 도로 곡각지점(2개 이상의 도로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접한 업소는 1개의 간판을 추가 표시 할 수 있다.이에 대해 광진구청 관계자는 “정비팀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관내만 순찰하고 있다”며 “한강 지역은 한강사업본부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들의 관할업무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초구 관할인 한강 반포지역에는 2개 미니스톱 편의점이 있다. 반포 1호점과 2호점으로 각각 6개와 4개의 간판이 부착되어 있다. 서초구는 지난 2010년 발표한 ‘옥외광고물 등의 특정구역 지정 및 표시제한·완화 고시’에서 한강 반포구역을 특정구역으로 지정했다. 고시는 특정구역에 부착할 수 있는 일반업소 간판 수를 1개로 제한하고 2개를 표시하는 ‘경우 업소의 규모·성격 등 여건을 감안하여 결정한다’고 규정했지만 서초구청 관계자는 “간판의 개수는 고시에 나와 있는 데로 해야 하지만 관리는 한강사업본부에서 한다”고 밝혔다.마포구 관할인 난지 캠핑장 부근에 난지 1호점, 2호점 두 개의 미니스톱 편의점이 있다. 두 개의 편의점에도 모두 6개씩의 간판이 부착되어 있다. 2010년 발표된 마포구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 고시’에서 난지 지역은 일반 권역에 속하며 일반 구역에서 1개 업소가 표시할 수 있는 간판의 총 수량은 2개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마포구청 관계자 역시 다른 구청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강지역의 경우 청소나 관리 부분은 한강사업본부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한강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가는 지역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규제를 두기는 문제가 있다”며 “그렇게 규제를 하면 야구장이나 스키장 등의 간판도 모두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강사업본부 “불법은 맞지만…”

각 관할 구청들은 한강지역 편의점의 불법 간판 부착에 대해서 “관리, 단속은 한강사업본부에서 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강사업본부는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한강편의점 불법간판에 대해 관리단속을 실시한 적이 없었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현재 각 구청에서 내놓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고시가 한강공원 적용에 맞느냐 틀리느냐에 대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현재까지 관리감독은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한강에는 많은 매점이 없기 때문에 시민들이 물이라도 마시려면 편의점이 쉽게 눈에 띄어야 하는데 사방에서 보고 인식할 수 있도록 편의점들이 각 방향에 간판을 단 것을 이해해야 한다”며 “지금으로서는 불법간판들을 내버려 두는 것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 관계자는 “한강 매점간판에 대한 완화안을 만들려고 각 구청들과 비공식적으로 논의 검토했지만 잘되지 않았다”면서 “불법인 것은 알지만 철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변화를 맞추지 못하는 ‘법’

변화를 맞추지 못하는 ‘법’ 한강변 매점이 개인 사업자에서 전국망을 갖춘 브랜드편의점체인으로 바뀐 것은 지난 2007년의 일이다. 서울시가 추진한 ‘한강르네상스사업’의 일환으로 날벼락처럼 한강변 매점의 운영주체가 대자본으로 변경된 것이다.<매일일보>이 불법 간판 문제에 대해 굳이 새삼스럽게 현미경을 들이대본 이유는 이 사안이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법치주의에 대한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취재과정에 생긴 의문은 다른 구청들이 전부 눈을 감고 있는 ‘불법 간판’에 대해 영등포구청이 단속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과 함께 법이 현실에 맞지 않는데도 왜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례적인 단속이 이뤄진 이유에 대해 영등포구 관계자는 “제보가 들어와서 나가게 됐다”고 설명했지만 이후의 후속조치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인상은 조직폭력배들이 지역 상인들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보호비를 받다가 보호비가 밀린 상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었다.영세상인들이 매점을 운영할 때에는 간판이 문제될 일이 없었지만 브랜드 편의점의 진입은 한강변 매점들을 불법의 온상으로 만들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주류의 제조와 유통, 판매를 금지하는 ‘금주법’의 등장이 마피아 성장의 기반으로 작용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