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승무원 농성 500일…"긴 투쟁, 끝 안 보여"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실마리 여전히 안개 속

2008-07-14     매일일보
【매일일보제휴사=뉴시스】최근 이랜드 및 연세의료원 등 노사 간에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KTX 승무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농성이 13일로 500일을 맞이했다. KTX 승무원들은 지난해 3월 불법파견 철회와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고, 지난 3일 서울역 광장에서 단식농성까지 벌이고 있으나, 기나긴 투쟁의 끝은 여전히 보이고 있지 않다.

◇ 단식, 삭발에 농성까지…

KTX 1기 승무원인 이들은 지난 2004년 1월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주)한국철도유통에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비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철도공사 자회사인 철도유통이 2005년 11월 노조 간부 승무 정지 및 선별 재계약 방침을 통보한 데 반발, 지난해 3월부터 '부실 자회사 위탁이 아닌 철도공사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당시 380여명이었던 승무원 중 100여명은 철도공사의 계열사인 ㈜KTX관광레저 정규직으로 업무에 복귀했지만, 같은해 5월15일 나머지 파업 승무원은 전원 정리해고됐다. 철도공사는 수조원의 부채가 누적되는 등 심각한 경영난을 이유로 이들의 직접고용을 거부한 채 지난해 5월 위탁업체를 ㈜KTX관광레저로 변경하고 270여명의 정규직 승무원을 새로 고용했다. 이후 KTX 승무원들은 지금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어렵게 이어오고 있다. 1년을 훌쩍 넘긴 길고 고통스러운 싸움을 거치면서 처음 380명에 이르렀던 동료들은 이제 74명밖에 남지 않았다. KTX승무원들은 지난 1년 여간 천막농성, 마라톤 회의, 집회와 기자회견, 1인 시위와 인권위 진정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러나 철도공사 측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열차에 타게만 해달라던 이들의 요청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은 연금수당 및 월 70만원의 철도노조 구호기금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몸과 마음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마지막까지 남은 승무원 74명 중 31명은 500일이 다 되도록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지난 3일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시민단체…직접고용 촉구

KTX 승무원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화되면서 시민단체들은 철도공사에게 이들의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지난 9일 서울역 광장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백기완 통일연구소 소장 등 3143명의 각계 인사들이 승무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1년 넘게 싸워온 KTX 승무원들의 투쟁은 우리 사회의 부당한 차별과 탄압에 항거하는 민중의 희망과 상징"이라며 "비정규직, 외주위탁, 여성 노동자와 같은 차별의 상징을 지우지 않고는 진정한 민주화도, 평화도, 정의 실현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는 시민사회와 양심세력의 튼튼한 연대로 성장해 온 KTX 승무원 투쟁의 승리가 바로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신호탄이 될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며 "철도공사는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투쟁하고 있는 승무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연대는 "KTX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지휘·감독 하에서 열차 이용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와 안전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이들이 철도공사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즉각 수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KTX 승무원들이 요구하는 것은 지금 바로 현장에 복귀해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그 해결책은 외주화가 아니고 정규직화"라고 말했다.

◇시민들, 그들의 권리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

KTX 승무원 문제에 대해 시민들은 조속한 해결과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쉽게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 했다. 이석만씨(32)는 "KTX 승무원들은 전형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며 "많은 어려움 속에서 500일간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모습을 보면서 조속한 해결을 통해 승무원들이 빠른 시일 내에 일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민영씨(25˙여)는 "최근 이랜드와 연세의료원 노사갈등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KTX 승무원 문제는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며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한순간 아무렇지 않게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 그녀들의 마음을 더 무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고 밝혔다.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실마리 여전히 안개 속

여 승무원들의 기록적인 농성 투쟁에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서 여승무원들의 직접고용 문제는 끝내 빠졌다. 올해 초 적극적 중재 노릇을 장담했던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재경부와 건교부의 반대가 완강해 KTX 승무원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며 "결국 당사자인 철도공사와 여 승무원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관계 부처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날 철도공사 노사에 공을 넘겨 버린 것이다. 철도공사는 또 "KTX 승무원 문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논의 사항이 아니다"라며 "직접고용은 수용할 수 있지만, 승무 업무를 맡길 수는 없어 현재 승무원 개개인의 일자리 제공을 위해 다양한 대안을 놓고 노조 쪽과 협의 중"이라고 말해 승무원 업무를 전제로 한 직접고용에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유일한 해결의 실마리는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라고 시민단체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KTX 문제가 이토록 장기화되도록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고, 노동부와 건교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방관만 하고 있었다"며 "KTX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연대는 "정부는 더 이상 KTX승무원들의 투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을 묵과해서는 안된다"며 "정부는 책임 있는 자세로 KTX 승무원 문제 및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