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너무 늦었구나", 구례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현장

2008-07-17     매일일보

【매일일보제휴사=뉴시스】"유해가 따뜻한 햇볕이라도 한번 쬐이고 수습됐으면 합니다"

16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성산 자락. 한국전쟁 전 좌.우익간 대립으로 무고하게 숨졌던 민간인 희생자들의 진실이 60년만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날 봉성산에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한양대 박물관이 최근 1개월간 공동으로 작업해 발굴한 구례 민간인 희생자 유해 12구를 공개했다. 발굴현장에는 바스러지기 직전인 다리뼈와 치아 몇 조각만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60년 전 그날의 진실과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유골 대부분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사라진 모습을 지켜본 유족들은 "아, 너무 늦었구나"라는 회한의 탄식을 내뱉었다. 특히 두개골로 추정되는 유골과 다리뼈 등에서 발견된 녹슨 탄두가 공개되자 유족들은 당시의 처참함을 떠올리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발굴조사 결과 매장지에서는 유해와 함께 칼빈소총 탄두 19개와 M1소총 탄두 1개가 발견 돼 민간인들이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됐음이 증명됐다. 이날 발굴현장에 참석한 박찬근 구례유족회 회장(72)은 "60년 동안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를 이제서야 조금이라도 풀게 됐다"며 "장마가 끝난 뒤 발굴된 유해가 따뜻한 햇볕이라도 쬐이고 수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회장은 "당시 희생된 민간인이 70여명에 달하는 만큼 정부가 추가 발굴작업을 벌였으면 한다"며 "발굴된 유해에 대해서도 적절한 보상과 함께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유해 발굴현장을 공개한 한양대 안신원 교수는 "유해 잔존상태가 이미 많이 부식돼 있어 완전한 형태를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이번 발굴조사의 성과는 유해에 박힌 실탄의 존재로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집단 희생됐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례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세척과정을 거친 후 충북대 유해감식센터로 옮겨져 정밀감식을 받게 되며, 필요한 경우 신원 확인을 위해 유족 동의를 얻어 DNA검사도 실시될 예정이다. 한편 구례지역 민간인 희생자 70여명은 1948년 11월19일 여순사건 연루자로 지목돼 구례경찰서에 연행된 후 조사도 받지 않은 채 집단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 맹대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