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이부망천 대신 빌바오 효과
2019-06-14 송병형 기자
6‧13지방선거가 한국 현대사에 유례없는 정치지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지금이야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알고 보면 시장이나 도지사를 뽑는 지방선거야말로 근대 시민민주주의의 시작이 아니었나싶다.예를 들어 도시를 의미하는 영어 ‘city’나 프랑스어 ‘cité’는 모두 고대 로마의 ‘도시국가’ 또는 ‘로마 시민권’이라는 뜻을 가진 ‘civitas’에 어원을 두고 있다. 또한 근대 이전부터 도시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서의 도읍(都邑)과 상업 경제의 중심지로서의 시장(市場)의 역할을 핵심으로 해서 발달해왔다. 예술가의 눈으로 보면 도시의 구획과 건물들부터 권력과 뗄 수 없는 관계다. 가장 크고 가장 높은 건물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가장 권력이 집중된 곳이다.사진작가 원범식의 건축조각(Archisculpture) 사진 프로젝트는 이러한 예술가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그는 다양한 권력이 담긴 건축물의 재조합 작업을 통해 도시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전 세계의 서로 다른 도시 건축물을 작업의 재료로 삼고 콜라주 작업을 통해 새로운 건축을 설계해온 작업으로 유명 뮤지엄, 미술관, 공연장 등의 문화 명소와 정치, 경제, 사회의 상징적 건축물들을 찾아 서로 연결한다.그가 최근 발표한 신작 중에서는 영국 타워 오브 런던을 비롯해 요크 캐슬, 에든버러 캐슬, 오스트리아의 호엔 잘츠부르크 캐슬을 조합한 건축조각 36번이 눈에 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도시는 인간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아를 만들어 나가는 유기적 생물체이기 때문에 변화하고 확장되며 또한 우리와 공생한다. 건축조각 36번의 성(城)은 외적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와 공격의 수단으로 설계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의 상징으로 역할 한다. 따라서 건축으로서의 실용성과 웅장한 아름다움이 그 내외부에 존재한다”고 했다.도시의 외관은 도시민의 삶과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한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싶다. 지방선거 직전 ‘이부망천’이란 어느 정치가의 말이 큰 논란을 불렀다. “서울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데서 잘살다가 이혼 한번 하면 부천 정도로 가고,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는 말에 부천과 인천 사람들이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 정치가는 도시의 모습을 과시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의 한쪽 면과 연결시켰다.하지만 사람은 상반되는 면모도 가지고 있다. ‘빌바오 효과’라는 말이 있다. 스페인의 쇠퇴해가던 공업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이 들어서며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폐허가 된 화력발전소에서 세계적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단지에서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예술구역으로 변한 중국의 따산즈 798예술구, 예술의 섬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나오시마 섬 등은 모두 ‘빌바오 효과’의 사례들이다.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이부망천’이 아닌 ‘빌바오 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