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와 ‘학계’…신정아의 ‘대형쇼’에 놀아났다?
‘가짜박사’로 집중 테러 당한 ‘미술계의 신데렐라’ 신정아, 그녀는 누구?
30대 현장미술인의 단순 사기극이냐, 누군가의 비호로 이뤄진 권력형 비리이냐…
[154호 사회] ‘가짜 학위’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동국대 조교수는 한마디로 말해서 ‘알쏭달쏭’한 사람이다. 큐레이터, 대학 조교수 등 화려한 경력 속에서 마침내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임됐지만 학ㆍ석사는 물론, 예일대 박사학위까지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씨는 현재 “언론에 할말이 없다”며 잠적한 상태다. 나름대로 억울하다는 뜻일텐데, 본인 스스로 ‘가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면 ‘진짜’는 과연 뭘까? 제발 답 좀 해줘.
국내 최대 미술행사 중 하나인 ‘광주비엔날레’가 제7회 행사를 약 13개월 앞둔 시점에서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 갈팡질팡하고 있다.
좌초의 위기까지는 아니지만 신정아(35세) 동국대 조교수의 학력 위조(예일대와 캔자스대)와 교수 임용 그리고 광주비엔날레 감독 선임 과정 등에 따른 각종 의혹들이 메스컴을 통해 그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면서 스스로 그 위상에 먹칠을 하고 있다.
(재)광주비엔날레는 7월18일 긴급이사회를 개최해 한갑수 이사장과 27명의 이사 전원이 공모 절차도 없이 인적 네트워크에 의한 추천을 통해 이뤄진 ‘밀실 인사행정’가 빚어낸 ‘신정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문화계 안팎에서 줄곧 제기됐던 ‘재단 책임론’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서 비엔날레측은 신씨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광주지검에 같은 날 고소장을 제출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재단 대리인 서한기 변호사는 “국제적인 행사의 공동 예술감독이 학력을 위조하고 허위증명서를 제출, 재단의 명예와 비엔날레의 위상을 크게 실추시켜 고소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따르면, 피고소인인 신씨는 한국에 없다. 미국 예일대 가짜 학위 의혹까지 불거진 지난 7월5일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가 12일 일시 귀국한 신씨는 같은 달 17일(한국시간) 뉴욕으로 다시 출국했고 현지 공항에서 맨해튼으로 향하다 취재진이 따라붙자 어디론가 사라져 행방이 묘연한 상태(7월19일 기준)다. 언론의 추적을 따돌린 데 성공한 셈이다.
신씨는 출국에 앞서 자신의 예일대 박사학위가 허위라는 동국대 진상조사 결과와, 언론 보도를 수긍할 수 없어 ‘학위 수여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는 말을 주위에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발적 도미’냐 ‘특정세력 비호받은 출국이냐’
결과적으로 신씨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가짜 학위 파문이 확산되면서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자발적으로’ 도미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부터 시작해 ▲신씨가 ‘특정세력’의 비호를 받아 해외로 출국했다는 주장까지 갖가기 의혹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동국대도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학교 명예를 크게 훼손시킨 신씨에 대해 검찰 수사 의뢰를 미뤄 ‘신씨의 도미를 방치하고 실체 규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 속에서 설상가상으로 ‘동국대가 오히려 신씨를 비호하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의 표현대로 미술계의 ‘신데렐라’에서 거짓인생에 따른 미술계의 ‘재투성이 아가씨’로 전락해버린 신정아씨는 이유야 어찌됐든 본의 아니게 “30대 여성미술인의 단순한 사기극이냐, 특정인의 외압에 의한 권력형 비리이냐”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꼴이 됐다.
그런데 정작 웃긴 사실은 ‘그렇게도 유명했던’ 신씨가 누구인지는 그러니까 그의 실체에 대해선 ‘여태껏’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가짜 이력’을 제외하곤 말이다.
실제로 미술계에선 신정아 사태와 상관없이 오래 전부터 그가 ‘재력가의 딸일 것, 아버지가 모 대학의 총장일 것’이라는 등 그의 배경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이 터져나왔지만 ‘진실 추적’은 아무데도 없었다.
상상도 안되는 대담한 사기 행각으로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신씨지만, 아이러니하게 신씨는 미술계에는 금호미술관 수석큐레이터(1997~2001년: 97년 그는 아르바이트로 채용됐다),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 실장(2002년~), 동국대 조교수(2205년~) 등 화려한 미술계 경력을 자랑하는 등 - 그래서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내정됐을지 모르지만 - 어찌됐든 미술계에선 꽤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인물로 꼽힌다.
승승장구 신정아, 미술계 이목을 한 몸에…
신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중퇴했고 이후 도미해 1994년 캔자스대(The University of Kansas)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복수전공해 학사학위(BFA)를, 1995년에는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또 2005년 예일대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신씨는 특히 30대 중반에 ‘해외 1급’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해, 미술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유능한 큐레이터(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위해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수집,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로 미술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있을 때 그는 ‘아틀리에 아담슨전―데이빗 아담슨과 그의 친구들: 척 클로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짐 다인 외’(2005년), 세계적 동화작가 존 버닝햄 40주년전(2006년)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추천위원을 맡았고, 광주비엔날레 사상 최연소 감독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올해 들어선 주요 미술관 학예실장,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추천위원, 주요 그룹의 미술품 컬렉션 자문위원 등 각 분야의 ‘러브콜’을 받으며 전방위로 활동해 “미술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인재”라고 불리우는 등 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신씨는 가짜 학위 의혹이 불거지기 불과 한달 전인 지난 6월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우리 현대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를 발굴해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술계 전문가’로서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진 미술가를 키우고 발굴해내는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정아씨는 학력위조로 인해 졸지에 ‘짝퉁’이 됐고 ‘가짜 인생’이 돼 버렸다. ‘가짜 인생’으로 전락했지만 이를 계기로 ‘진짜 인생’ 역시 최근 들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술계 새바람 인재에서 ‘짝퉁’으로 순식간에 전락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신씨 어머니 이원옥(63)씨가 공개한 가족사에 따르면, 신씨 아버지는 청송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한 지역 유지였지만 15년 전 작고하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신씨는 중1때인 1985년 청송을 떠나 상경했다. 그리고 20년쯤 지난 몇 년 전 “동국대 교수가 됐다”는 소식이 고향 곳곳에 울려 퍼졌다.
신정아씨가 가짜 학위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덩달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대목은 한때 미술계의 요정이었던 그의 어릴 적 행보다.
언론에 보도된 어머니 이씨와 친구들의 증언을 요약하면 신씨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줄곧 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음악과 미술 등 예능 방면에도 솜씨가 뛰어나 피아노 연주 등 각종 악기 연주에 능했던 그야말로 ‘똘똘한’ 아이였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선 그토록 똑똑한 신정아씨가 ‘힘있는 집안’ 출신이 아님을 스스로 극복하고 오직 자신의 노력을 통해 ‘학벌사회를 조롱했다’는 다소 ‘의미 심장한(?)’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나이 어린 큐레이터가 학력을 위조해 교수에 임용된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비판보다는 자성이 급선무라는 우회적 설명이다.
신정아씨의 ‘가짜인생’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판에 신씨 못지 않게 고통스런 인물은 물론 어머니 이씨다. 이씨는 현재 경북 청송군 진보면(신씨 고향 추정) 내 한 사찰에 기거 중이다. 신씨 역시 7월14일 이 사찰에 잠시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씨는 신씨의 배경을 두고 의혹이 한창 난무할 무렵, 경주와 포항에 큰 절을 가진 ‘불교계 큰 손’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어머니 이원옥 “정아가 절대 그럴 리 없다”
미술계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 역시 신정아씨의 ‘진짜 학력’에 대해선 잘 몰랐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어머니 이씨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아가 절대 그럴 리 없다. 나중에 보면 안다. 절대 아니다”고 말했고, 신씨 삼촌(47)은 “(학위 문제는)우리도 속았다”고 전한 것으로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둘째오빠인 신기웅(39)씨는 “조만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미술계도 몰랐고, 가족도 몰랐던 신씨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한쪽에서는 “모든 거짓이 드러났는데도 왜 아직도 시인하지 않는지 참으로 슬프다”고 따지지만,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딸을 믿는다”고 말한다. 특히 어머니 이씨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증빙자료를 갖춰 강력대응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은 되지 않은 상태다.
신정아씨는 지난 16일 대한항공 KE081편으로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해 “논문 표절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내몰고 있다. 고졸 학력으로 끌어내린 언론에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뒤 휭하니 사라졌다.
어쨌든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토대로 결론지으면, 신정아씨는 캔자스대에 1992년 봄학기부터 1996년 가을학기까지 5년을 다녔지만 3학년을 끝으로 학부를 그만뒀다. 또 서울대, 캔자스주립대 경영대학원, 예일대에는 아예 입학하지 않았다.
신씨는 이에 대해 여전히 오리무중이어서 ‘핑퐁게임’도 ‘진실게임’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저 언론이 일방적으로 그의 ‘이력’에 대해 꾸준히 ‘의혹’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진짜로’ 밝혀진 것은 그가 논문을 표절했다는 정도?.
이런 상황에서 웃기는 일이 발생했다. 신씨의 예일대 박사학위 위조에 이어 유명 영어강사이자, KBS 라디오 ‘굿모닝 팝스’를 7년간 진행해오고 있는 이지영씨(38)의 학력 역시 ‘위조’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다. 석사가 아니라 고졸이라는 게 논란의 핵심인데, ‘학벌위조 논란’,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 선보이는 새로운 트렌드는 아닐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