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노조 경쟁시대’ 개막
[이슈분석] 노동계 15년 숙원 ‘복수노조’ 허용…의미와 한계
2012-06-27 송병승 기자
[매일일보=김경탁·송병승기자] 1996년 12월26일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15년 동안 유지되어왔던 위헌적 법률 ‘복수노조 설립 금지’ 조항이 오는 7월1일부로 사라진다.
정부와 재계는 ‘복수노조’ 시행을 통해 그간 정체되어 있던 노조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는 반면 노동계는 관련 법안을 다시 바꾸기 위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상호간의 마찰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시대’의 개막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기존 단일노조 체제 하에서도 ‘합법적 파업’이 거의 불가능하고, 새로 시행되는 복수노조 제도 역시 여전히 노동3권중 단결권을 제외한 노동 2권에 대해 심각한 제약을 가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지만 ‘노조도 경쟁하는 시대’가 바꿀 것은 여전히 많다.김영훈 위원장 “노동 3권도 보장 못받는 복수노조는 허울 뿐”
“소수노조, 교섭 못하고 교섭이 없으니 결렬 후 파업도 못해”
기존 노조에도 변화 불가피…운영방식 민주화 및 내부 정화 기대
미숙한 토론 문화 속 경쟁체제 도입, 감정 대립으로 이어질 수도
‘단체교섭권’이라는 진입장벽
경쟁 혹은 갈등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2명 이상의 노동자가 모여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이는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사측이 ‘어용노조’를 내세워 노조 설립을 제한했던 사업장이라면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진짜 노조가 설립 될 수 있고, 반대로 강성 노조가 장악하고 있던 사업장에서는 노사협력을 도모하는 타협적 노조가 나타날 수 있다.여기에 더해 고용규모가 큰 사업장의 경우, 지금까지 내부 계파로만 존재했던 중소규모 단위조직들이 개별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존의 주류계파에 불만을 품은 조합원들이 새 노조를 만들고, 또 다른 상급 단체에 가입할 수도 있다.어쨌든 기존 노조들의 운영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의 운영방식은 과거에 비해 더욱 민주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노조 간의 경쟁이 노동운동 내부의 자체 정화 움직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노조의 설립과 가입 탈퇴가 자유로워지고 조합원 영입을 위한 노조끼리의 경쟁이 이어지면 현재 10.1%까지 떨어져 있는 우리나라 전체의 노조 조직률을 획기적으로 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0반면 이번에 시행되는 복수노조법의 기본 구조가 노동계 내부의 갈등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노조간 경쟁체제로 조합원 확보가 더 힘들어지고, 교섭권 획득을 위해 보다 많은 조합원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노조간에 감정적 대립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가장 심각한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노조 집행부 선거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지던 노동계 내부의 경쟁이 경쟁적인 ‘조합원 빼오기’를 통해 음성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토론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경쟁체제의 전면적 도입은 노동자집단 내부의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적지 않고 이는 결과적으로 해당 기업 내부의 조직력 훼손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또한 이전까지는 노조 집행부 선거를 통해 당연하게 획득됐던 단체교섭권이 파편화된 개별 노조의 단일화 혹은 합종연횡을 통해 경쟁적으로 쟁취해야 할 대상이 되면서 노조 전체의 사용자에 대한 대응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현재 단일노조 체제로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 상호간의 견제 아래 노조의 영향력이 점점 더 약화된다면 노동운동의 미래는 복수 노조의 시행으로 인해 더욱 어두워 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무노조 사업장’의 노조 조직
복수노조 시행과 관련해 노동계가 가진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조합원 확보다. 현존하는 최상위 노조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이어 출범을 앞둔 제3노총(가칭 국민노총)은 각자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사업장과 노조원들을 유지하고 새 사업장과 새 노조원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동계의 관심이 가장 높게 쏠린 곳은 범삼성가 그룹 계열사들과 포스코로 대표될 수 있는 ‘무노조 사업장’ 이다. 특히 삼성그룹 계열사 78개 중 현재 서류상으로는 7개의 회사 노조가 존재하지만 모두 페이퍼 노조에 불과하다. 삼성은 故 이병철 회장이 남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된다’는 유훈에 따라 철저히 무노조 경영을 실천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노조 시행에 대한 삼성의 중압감은 엄청 날 수밖에 없다. 삼성은 현재 고용노동부 국장급을 영입하고 ‘무노조 특별교육’을 그룹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삼성전자 일부 계열사의 노사협의회 대표 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변경하는 등의 ‘회유책’을 내놓는 한편 국제노동기구에 노조가 아닌 근로자 대표제의 요건에 대해 공식 질의 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는 복수노조 설립이 현실화 될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노사관계를 우호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1991년까지 노조원 2만명이 넘는 강성노조로 이름을 알렸지만 현재는 노조원 15명 정도의 유명무실한 상태다. 노조를 대신해 지난 1997년 출범한 노경협의회는 직원들이 직접 선출한 근로자위원과 경영자위원 각각 10명씩 20명 및 과공장위원 43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실질적인 노사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실화되기에 앞서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 복수노조 설립 자체를 막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새로운 노조가 생겨나더라도 지금껏 유지돼 온 노사관계의 큰 틀이 동요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삼성노동자 조직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출범하고 삼성노조 설립을 공언하고 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빠른일내에 삼성에 민주노조를 건설하겠다”면서 결의를 다졌고 삼성내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한국노총도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직원을 개별 접촉하며 노조 설립을 준비중이다. 과거 삼성에서 노조 결성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포섭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복수노조가 시행되어 노조가 설립된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노조의 활동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페이퍼 노조에 많은 인원을 가입시켜 ‘교섭단체단일화’ 조항을 근거로 교섭단을 꾸리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삼성, 포스코에 설립한 노조가 조합원 수 일정수준 이상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설립된 노조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노조자체의 존립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노동계 관계자는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더라도 무턱대고 설립신고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최대한 준비를 갖추고 사측이 탄압하더라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이 되면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