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수도 민영화, 기업들에 특혜 주나”
물 사유화 추진 남미 정권 퇴진당하기도" …정부의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에 대한 논란 확산
정부 “물산업,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각광받을 것” 기대
시민단체 “물을 돈벌이 논리로 접근하나?” 정책 철회 요구
[매일일보닷컴]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이하 계획)’에 대해 공공적 성격을 보다 강화해 보편적 권리로서 보장해야 할 ‘물’을 정부가 오로지 ‘돈벌이’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이날 “미래전략산업으로 물산업을 키워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겠다”면서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지자체와 수자원공사에만 부여됐던 수도사업자 지위를 민간기업에도 부여하는 민영화를 추진키로 밝혔다.
민간자본의 투입으로 수도사업 민영화가 이뤄지면 ‘물=돈’이라는 공식이 성립돼 수돗물 누수로 인한 경제적 낭비도 줄일 수 있고, 물분야의 핵심기술고도화, 인력양성 등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세계적인 물기업 육성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한 비판론도 만만찮다. 상수도사업을 민간에 넘길 경우, 이익을 위해 투자하는 민간자본의 특성상 결국 수돗물 값의 폭등으로 이어지고, 경제적 빈곤층의 수돗물 접근성은 더욱 저해될 것이라는 사회단체의 주장이다.
정부는 16일 확정ㆍ발표한 계획에서 “상하수도서비스, 하ㆍ폐수 처리, 해수담수화 등 물 관련 산업이 범정부적 지원을 통해 미래전략 산업으로 집중 육성된다”며 “물산업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떠오르는 황금산업으로 비유되고 있는 물산업은 2003년 현재 세계적으로 830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2015년에는 1천600조원의 거대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라며 “그러나 국내에는 물 전문기업이 없고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환경부, 재경부, 건교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물산업은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개도국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국내에는 베올리아, 수에즈 등 선진 다국적 기업과 경쟁할 만한 물 전문기업이 전무한 상태. 또 해수 담수화 등 일부 플랜트 분야를 제외하면 초보 수준인터라 경쟁력있는 사업자 육성이 시급한 실정이라는 게 정부측 주장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160여개 지방자치단체로 쪼개져서 영세성을 면치못하고 있는 상하수도사업을 규모의 경제가 작동될 수 있도록 30개 이내의 유역권역으로 광역화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공사화 또는 민영화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현재 지자체 및 수자원공사에게만 부여하고 있는 수도사업자의 지위를 민간 기업에도 부여할 것”이라며 “지자체 등에는 부과하지 않는 부가가치세 등에 대해서는 감면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밖에 ▲핵심기술개발, 전문인력양성, 연관산업을 육성해 2015년까지 글로벌 물산업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 조성 ▲물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의 지원 확대 ▲시장 수요에 맞는 다양한 지원방식을 도입해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 적극 지원 등과 같은 계획안을 확정 발표했다.
상하수도국 물산업육성과 김이광 사무관은 “이번 계획으로 국내 물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한 단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수도정책과 최용철 과장은 “우리나라의 상하수도는 그동안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면서 “전문화된 사업자가 운영한다면 같은 비용으로도 고효율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한 데는 국내 상수도의 경우 영세성, 중복투자, 농어촌의 저조한 보급률, 수질에 대한 불신, 요금 불균등, 열악한 재정 등 다양한 문제점에 직면한 상태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상하수도 민영화는 실패 책임 떠넘기기이자 기업들에 대한 특혜 의도” “정부가 물을 오로지 돈벌이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수돗물시민회의는 18일 논평을 통해 “우리나라 상하수도 정책의 실패는 부처간 이기주의로 막대한 시설을 중복 투자하고, 섬세한 계획이 필요한 농어촌 지역을 외면하고, 수도 관리에 대한 감독과 평가를 소홀히 하는 등 중앙정부의 구태의연한 관료주의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이번 발표는 상황의 진단과 대안 마련에서 방향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정부 진단, 대안 마련 틀렸다”
이들은 “정부의 방침은 그동안 도시지역 과잉투자와 농촌지역 과소투자에 대한 시정없이, 일방적으로 불투명한 수도행정에 대한 개선없이 민영화로 책임을 모면하겠다는 것”이라며 “상하수도 민영화에 따라 기업에 충분한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수돗물 값의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어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농어촌 지역에 투자할 민간 기업들은 없을 것이고 만약 민간기업이 진출한다 하더라도 그 비용은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며 “민영화는 지금껏 상수도 공급이 지체되는 농촌지역의 상하수도 소외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돗물시민회의 환경운동연합도 성명에서 “정부가 물을 ‘공공재’가 아닌 ‘경제재’로, ‘공공서비스’가 아닌 ‘상업적 서비스’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계획 그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가 전기, 가스, 교육, 의료 등 주요 공공서비스를 사유화(민영화)해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내맡기더니 이제는 국민의 생명인 물마저 사유화하겠다고 한다”며 “물의 공공적 성격을보다 강화하고 보편적 권리로서 보장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는 오로지 물을 돈벌이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세계 인구 중 민간기업이 공급한 물을 사용하는 비율은 9%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그토록 동경하는 세계 물기업들은 모두 ‘악덕기업’ 취급을 받고 있고, 남미 등에선 물 사유화를 추진한 정권이 퇴진당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측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민영화는 물산업계획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상하수도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