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 꿈꾸는 농협중앙회, NH 간판 내려라”

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 상고...노조 반발 확산

2007-08-03     권민경 기자

“농민 외면한 채 금융사업 확장, 중앙회와 관계 끊겠다”

노조 “정 회장 즉각 사퇴, 금융그룹 확장 정책 중단”...중앙회 “사퇴여부 개인 판단, 노조 집안 헐뜯기 그만”

[155호 경제] 농협중앙회가 정대근 회장 법정 구속을 기점으로 또 다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달 23일 전국농협노조는 서울 서대문구 농협 중앙회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 회장이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됐음에도, 농협중앙회는 여전히 그를 비호하며 회장직을 유지토록 하고 있다”면서 정 회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이와 함께 노조는 “농협중앙회는 종합금융그룹의 명칭인 NH사명을 폐기처분해야 한다”며 “농협중앙회가 지금과 같이 금융사업에만 몰두할 경우 농민들은 농협중앙회와의 관계를 더 이상 유지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의 농협중앙회는 농민을 위한 경제 사업이 아닌, 오로지 금융그룹으로의 몸집 불리기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 노조는 “농협중앙회가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노조는 하반기 ‘공공금고 운용수익 지역사회 환원투쟁’을 전개할 것이고, 다음 단계로 공공금고 유치를 지금처럼 농협중앙회가 독식하는 것에 제동을 걸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은행, 증권, 보험 등을 금융권 전반을 아우르며 종합금융그룹의 무서운 맹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농협중앙회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 회장 상고장 제출.. 회장직 끝까지 고수할까

지난 달 20일 서울고등법원은 3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정대근 회장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 5년과 추징금1300만원을 선고하는 한편, 법정구속 조치를 내렸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농협중앙회는 국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으로 특가법 소정의 정부관리기업체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기관의 간부인 정씨가 뇌물은 받은 것은 죄질이 나쁘고, 정씨의 경력·환경을 고려해 징역 5년에 처하되 법정구속한다”고 밝혔다.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서 농협중앙회 안팎에서는 정 회장의 퇴진 여부를 놓고 이런 저런 추측들이 오갔다. 노조를 비롯한 여론의 비난이 거센데다 중앙회 내부에서도 정 회장에 대한 불만이 확대되고 있어 퇴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과 함께, 정 회장 스스로 회장직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와 관련 <매일일보> 취재 결과 현재 정 회장은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고, 회장직을 유지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밝혀졌다.농협중앙회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이 법정구속된 상태이긴 하지만,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고 회장직 역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퇴진 여부는 본인이 판단할 문제기 때문에 중앙회 측에서는 특별히 언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농협 정관상 임원이 사임하려면 법원에서 금고 6개월 이상의 형이 확정돼야 한다. 정 회장의 입장에서는 상고를 제기해 최종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벌 게 된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정 회장의 퇴진 운동을 전개하며 전국 지역 단위 농협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농협노조는 정 회장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농협 노조 서필상 위원장은 “이번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농업과 농민을 팔아먹은 죄에 대한 정당한 댓가”라며 “사법부의 판단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다. 정 회장이 회장직에서 자진 사퇴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 농민의 이름으로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 위원장은 이어 “노조는 정 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을 기점으로, 농협중앙회가 종합금융그룹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저지시키고 농협이 협동조합조직답게 살아가는 날로 이어가기 위한 투쟁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 “금융그룹 꿈꾸는 농협중앙회, NH 간판 내려라”

현재 농협 노조는 “농협중앙회의 새로운 사명인 NH를 폐기 처분할 것”을 강하게 요구 중이다. 즉 농협중앙회가 농민 협동조합을 상징하는 ‘농협’ 두 글자를 버리고 새로운 CI인 ‘NH’를 통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변모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정용근 농협 신용부분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농협의 기업 이미지로는 금융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사명을 ‘‘NH뱅크’로 바꾸는 것을 포함한 새 기업 이미지(CI)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6월까지는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이후 지난 6월 28일 농협중앙회 창립 47주년 및 통합 농협 7주년을 맞아 새로운 기업이미지(CI) 선포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대근 회장은 “금융과 유통 양 분야에서 2015년 한국 최고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하며 새 CI 브랜드인 ‘NH'를 공개한 바 있다. 농협중앙회는 NH가 자연(Nature)과 인간(Human)의 조화, 새로운 행복(New Happiness)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농협 관계자는 “전체 사명이 농협에서 NH로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NH는 농협중앙회의 새 로고이자 브랜드로서 급변하는 시장 현실에 따라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농협중앙회가 종합금융그룹으로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CI를 교체하는 등 본격적인 작업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농협노조 측 역시 그동안 농민과 농촌을 위한 신용사업 보다는 증권, 보험, 카드 등 금융사업 분야로의 확장에만 주력해오던 농협중앙회가 이제는 사명까지 교체하고 완전한 금융그룹으로 가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30조원 달하는 공공기금, 중앙회 배불리는 원천

사실 농협중앙회는 금융 쪽만 놓고 보더라도 이미 총자산 147조원, 수신 규모 100조원, 점포 890여개에 이르러 국내 2위의 거대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금융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용사업부 내부에는 은행과 증권, 투신, 보험, 선물 등을 보유해 사실상 금융지주회사의 위상을 갖춘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들 역시 “증권, 보험 등 금융 전반에서 농협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고 인정하고 있다.농협중앙회는 이렇게 금융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농민, 농촌을 위한 경제사업에 재투자한다는 입장이다. 농협 측 한 관계자는 “신용사업을 통해 남긴 이윤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경제사업 쪽 적자를 메우는 데 쓰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조의 주장은 사측과 다르다. 농협노조 한 임원급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 경제사업에 투자되는 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농협중앙회 총 자본금 7조6천억원 가운데 현지 농산물 가공, 판매 등 유통이 주축이 된 농촌 경제사업 자본금은 6천억원 가량으로 6%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농협중앙회 인력의 80%이상이 신용사업에 치중돼 있고, 중앙회 노동조합 역시 ‘금융산업’ 노조에 가입돼 있다. 때문에 노조는 “농협중앙회가 금융사업 덩치 키우기만을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면, 더 이상 농협중앙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농협중앙회와 관계를 끊는 수순으로 가게 될 것이며 그에 대한 첫 번째 압박 투쟁으로 올 하반기부터 공공금고인 시.군금고 운용수익의 지역사회 환원 운동을 전개할 것과, 근본적으로 공공금고를 농협중앙회가 독식하는 현재의 구조를 바꿔 나갈 것임을 경고했다.    노조 측에서 공공금고 수익의 지역사회 환원과 함께, 이를 농협중앙회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사용하려는 것은 공공금고가 농협중앙회 신용사업 수익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현재 266개 시.군구 공공금고 가운데 187개를 유치하고 있다. 여기서 모인 예금만 지난해 4월말 기준으로 30조원에 이른다. 총 수신의 무려 28.9%에 달한다. 중앙회는 이를 운용.관리하며 한 해 1조5천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렇다보니 노조 측에서는 농협중앙회가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것은 공공금고 수익을 통해서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 “공공기금, 중앙회가 독식 못하도록 저지”

농협중앙회가 이처럼 공공금고 취급을 독점할 수 있었던 데에는 농민조합원과 지역농협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시.군금고의 지정이 수의계약에서 IMF이후 공개경쟁입찰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농협중앙회가 이를 독식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지자체는 농협중앙회에 해당 지역의 공공 자산을 맡기면 당연하게 그 수익은 농업과 농촌, 농민조합원에게 돌아갈 것이고, 전국 어디를 가든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농협을 통해 맡기게 되니 더욱 편리할 것이라고 판단해 농협중앙회 측에 점수를 더 줘왔던 것이다. 노조 측은 그러나 “생산주체인 농민조합원과 지역농협의 지원이 농협중앙회 금고 유치를 가능하게 하지만, 그 수익은 농민조합원과 지역농협에 전혀 환원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들과 맺은 지방세 금고 대행업무 계약을 보면, 지역농협이 무료로 지방세를 대리 수납하도록 해 연간 수백억원의 수납 비용을 지역 농협에 전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노조는 주장했다.결국 지역농협은 금고운용 과정에서 업무를 분담할 뿐 수익구조에서는 완전히 배제돼 오히려 지방세 취급 건수에 따라 손해를 본다는 얘기.농협노조는 “중앙회가 지금과 같이 공공기금 운용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이를 중앙회가 살찌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경우, 공공기금이 중앙회에 집중되지 못하도록 투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조 서필상 위원장은 “농민들은 굳이 중앙회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며 “농촌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시, 군금고 기금을 농민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다른 금융권과도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노조 측이 중앙회가 공공기금 운용수익을 독식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실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운용수익은 조합에 포괄적인 형태로 지원되고 있다”며 “이를 중앙회가 아닌 다른 은행이 가져가도록 돕겠다는 것은 자기 집안을 흠집내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고 노조를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