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일제고사’…‘일제Go死’?

전교조 “교육 불평등은 심화, 학업성취도는 저하”

2012-07-15     송병승 기자

[매일일보=송병승기자]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초중고등학교 일제고사가 올해도 여지없이 시행됐다. 지난 7월12일 전국 1만1천여개 초·중·고에서 진행된 이번 일제고사의 응시 대상은 약 190여만명에 달했다.

1998년 정권교체와 함께 폐지됐던 일제고사가 2008년 정권이 다시 교체된 후 재개되면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원·학부모 단체는 “일제고사가 서열화, 성적지상주의에 의한 과열경쟁,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발해 왔다. 일제고사 시행 첫해인 2008년에는 각 지역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 등의 대체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일제고사 참여의사를 물었다는 이유로 선생님 7명이 강제퇴직 당하는 일이 있었다.지난해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 교육감들이 대거 진보적인 인사로 교체되면서 올해 4월 복직되기는 했지만 3년을 거리에서 보내야했던 선생님과 하루아침에 선생님을 빼앗긴 아이들의 가슴에 난 생채기는 여전히 남아있다.올해 일제고사가 작년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교과부가 각 지역 교육청에 일제고사에 대한 대체수업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점이다. 이로인해 일제고사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이었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마저 교과부 지침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전교조 “금품 미끼로 학습동기 유발된다 믿는 정부에 희망 없다”
교육희망네트워크 “일제고사 빌미로 아동학대 공공연히 벌어져”

교총 “평가만 하고, 결과만 발표하는 식으론 더 나은 교육 안 된다”
교과부·교육청·교원단체·학부모 참여하는 ‘교육협의체’ 구성 제안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이하 일제고사)’는 학생들이 교육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체계적으로 진단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실시하는 평가로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방법을 효과적으로 개선하고,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기초 자료를 마련하며, 학교 현장의 평가방법을 발전시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일제고사는 1960년대부터 실시되다 1998년 이후부터 1~3%의 학생을 대상으로 표집학업 성취도 평가로 전환됐다. 그러나 2008년부터 다시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 일제히 치르는 평가로 바뀌었다.

2008년 일제고사로 전환된 이후 교육계에서는 학교서열화, 성적지상주의에 의한 과열경쟁,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일제고사 평가 결과는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통지되지만 2010년부터는 학교별 응시 현황 및 과목별 성취수준 3단계 비율(보통학력 이상·기초학력 이상·기초학력 미달)을 학교알리미를 통해 공시하도록 되어 있다.



학생 200여명, 시험 대신 체험학습

총 189만4480명의 응시자 중 교과부가 파악한 결과 12일 시행된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은 학생은 187명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경북이 34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전북 32명, 서울 29명, 경기 25명, 경남 22명, 전남 16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전, 울산, 강원, 제주 지역은 미응시생이 없었다.

일제고사 거부 학생 중 무단결석으로 처리된 학생은 136명이었고, 무단 결과로 처리된 학생은 51명이었다. 무단결석 학생은 지난해 87명보다 50여명 늘었다.

특히 경북 다부초(11명)와 전남 S초 분교생(9명)의 경우 전교생이 일제고사에 불참했고, 전교생이 14명인 경기 S초 분교에서는 전교생 가운데 절대 다수인 10명이 집단으로 시험을 보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서울과 대구, 광주, 경북 등 전국 11개 시·도에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들을 위한 체험학습이 진행됐다.

이와 관련해 학부모·교육·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일제고사 반대 시민모임’은 1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체험학습을 허용해 달라는 요구를 발표했다.

이들은 “경쟁만능주의를 부추기는 일제고사로 정규수업이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식으로 진행되고 초등학생마저 0교시 수업과 야간학습을 강행하는 등 교육과정이 변질되고 있다”며 “정부가 학교와 학생의 서열화를 조장하고 학생을 무한 경쟁에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민모임은 “이는 교과부가 일제고사와 교사 성과급을 연계시키고 성적에 따라 시도교육청의 차등적인 예산분배를 하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학생의 정확한 학업성취도를 알기 위해 일제고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제고사가 아니더라도 각종 수행평가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을 통해 학업성취도 확인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단체, 한 목소리로 ‘일제고사’ 비판

교과부는 2011학년도 일제고사 응시거부자가 지난해보다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대체적으로 올해 일제고사가 순조롭게 마무리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의 이런 평가와는 달리 교육단체들은 대체 방안 없이 시행된 일제고사에 대해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진보성향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12일 성명서를 통해 “학업성취도 향상을 도모하고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평가권과 함께 교육과정 구성 권한을 학교와 교사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이라며, “일제고사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정부는 침대 길이에 맞추어 몸의 길이를 줄이고 늘려 사람을 죽였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일제고사라는 제물로 경쟁만능의 승자 독식 사회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아이들의 창의성과 주체성은 죽이고, 오직 일제고사시험지의 OMR 카드에 칠해질 검은색의 절망과 고통만을 키우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또한 “2011년 일제고사는 교육청, 학교, 학생의 순위만 남았다”며, “오직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라서만 성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일제고사는 망국으로 향하는 급행열차”라고 성토했다.

이날 전교조는 특히 “다양한 학습 경험을 통해 가능성이 성장해야 할 아이들은, 일제고사를 통해 획일화된 성적으로 매겨진 상품이 되어 가고 있다”며, 일선 몇몇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빌미로 금품, 상품권 등을 제공하기로 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전교조는 “상품권 등을 제공하는 무분별한 보상은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저하시키고 학생 간 위화감을 조성해 교실 문화를 폭력적으로 만들어 간다”며 “금품을 미끼로 학습동기를 유발 할 수 있다고 믿는 정부에게 공교육의 희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가르치고 배우는 수업의 과정을 통해 진단, 평가하고 보충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유기적 학습이 이루어진다”며, “학업 성취도 향상을 도모하고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평가권과 함께 교육과정 구성 권한을 학교와 교사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성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이례적으로 일제고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교총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교과부, 시·도교육청,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등이 참여하는 ‘교육협의체’를 구성해 일제고사의 개선 및 정착방안을 함께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교총은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에 있어,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은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뒤쳐진 학교와 학생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평가 결과의 활용도 측면에서 학교 및 교원에게 책무성을 과도하게 부과함에 따라 평가 성적 향상을 위해 학교에서 별도의 학습을 시키는 등 부작용이 발생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고 교총은 덧붙였다.

이날 교총은 “‘평가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평가만 하고, 결과만 발표하는 식으로는 더 나은 교육을 도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국가 수준의 평가를 통해 개별 학생의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국가차원에서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보장, 객관적으로 신뢰성 높은 학력 정보를 학생·학부에게 제공한다는 정책목표에 부합할 수 없다”고 교총은 충고했다.

같은 날 시민단체인 전국교육희망네트워크도 논평을 통해 “언뜻 기업체 영업부서에서 일어날 것 같은 반교육적 행태가 경기와 충남, 충북, 경북, 경남, 제주 등지의 일선 학교 교실들에서 버젓이 벌어졌다”며 “반교육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일제고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교육희망네트워크는 “부산의 초등학생 5명은 지난 5일 등교한다고 집을 나섰지만 일제고사 대비 공부를 너무 시키는 학교가 싫어 학교에 가지 않아버리는 일까지 발생해 버렸다”며. “결국 일제고사를 빌미로 아동학대가 공공연히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교육희망네트워크는 이어 “교과부가 일제고사로 인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절반가량 줄었다고 주장하는데, 진정으로 교과부가 학습부진 학생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일제고사를 통해 열패감만을 부추기고 낙인찍는 이러한 방식이 아니라, 학습부진의 원인이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해 종합적 진단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교육희망연대는 더불어 “획일화된 일제식 평가는 사업화 시대의 주입식 지식테스트에 불과하고 지난세기 낡은 패러다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일제고사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이들은 오지선다형인 일제고사가 “문제풀이 중심의 암기식·반복식 수업은 일단 학습의 흥미를 말살시키고 아이들의 생각을 다섯 개의 문항 가운데 ‘정답’을 골라내는 형태로 국한시켜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듦과 동시에 창의성의 싹을 잘라 버린다”고 밝혔다.

교육도 정치다

일제고사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표집학업성취도 평가로 전환됐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대상학년 전부가 치르는 ‘일제고사’로 바뀌었다.

일제고사로 전환되고 교육계와 일선 현장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008년 12월에는 일제고사 응시 선택권을 학부모에게 직접 선택하게 했다는 이유로 7명의 초·중 교사가 해직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2011년 4월 복직했지만 3년간 거리에서 ‘일제고사’의 부당함을 알렸다.

시험 하나가 늘어나는 것을 반길 학생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학교 평가에 반영된다’ 는 부담감이 더해진다면 학생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 심할 것이다.

결국 시험 하나를 더 보느냐 마느냐는 이 문제를 푸는 핵심 열쇠는 아니다. ‘일제고사’는 2012년 정권이 교체되면 다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일제고사’가 사라졌다고 해서 대한민국 교육의 줄 세우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일제고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옭아매고 있는 입시교육의 굴레는 강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은 험난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다시 취직 경쟁의 대열에 내몰리면서 젊음과 꿈을 마모시켜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일제고사’를 둘러싼 여러 논란은 결국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정글자본주의라는 사회적 구조를 겉으로 드러내는 상징에 불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