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문사위 “사병 우울증 방치 끝에 스스로 목매”
2007-08-07 홍세기 기자
“이등병 같으면 자살했을 것” 호소해도 ‘진실성 의심된다’며 묵살
박윤기는 부대 전입 70일만인 1998년 8월 21일과 같은 달 28일 등 2달간 5차례에 걸쳐 ‘불면증과 악몽, 선임병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 등의 증세로 사단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받았다.정신과 치료 경력과 보호관심사병으로 분류된 박윤기는 1998년 9월과 1999년 5월 두차례에 걸쳐 GOP 투입 대상자에서 탈락해 다른 부대로 전입됐다. ‘총기사고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하지만 박윤기는 첫 GOP 투입에서 탈락 뒤, ‘지휘관들에 대한 배신감’과 ‘누군가 비웃는 듯한 망상’에 시달려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우울증에 시달려 치료 중이던 박윤기는 오히려 1998년 말 사단장의 지시로 열린 “비전투 손실예방 세미나”에 ‘자살 극복 사례 발표자’로 참석했다. 평소 여러차례 상담했던 군종장교의 설득에 의해 본인의 진심과는 달리 모든 것을 극복했다는 발표를 했고,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 군의문사위의 지적이다.망인의 동료들의 일관된 진술에 따르면, 박윤기는 업무와 관련 “야 자식아, 이 미친놈아”하는 간부의 욕설을 듣거나 일주일 내내 혼나는 경우도 있었으며, 완전군장한 채 연병장을 도는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더구나 GOP 투입에서 탈락돼 전입했다는 이유로 사병들은 비록 박윤기가 병장이긴해도 고참 대우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왕따’시켰다.상황이 이런대도 박윤기의 소속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은 10개월간 보호관심사병 관리의 가장 기본인 면담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죽기 얼마 전 면담을 자청한 박윤기가 중대장에게 “지금 정말 힘들다, 이등병 같으면 자살했을 것이다”고 어려운 심정을 토로했으나 이 또한 묵살됐다.박윤기를 면담한 중대장은 ‘관심사병’ 관찰보고서에 “비관자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도 “진실성이 의심되며, 남은 군 생활을 최대한 편하게 하고 가려 한다”고 판단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은 채 방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사망사건 이후 군수사기관의 수사에서도 성의없는 행태는 계속됐다. 당시 헌병대는 보호관심사병 관리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수사를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또한 사단 헌병대는 실재 이혼하지 않은 부모에 대해 “모 OOO은 부친과 이혼한 후 혼자 살면서”라고 수사결과 보고서에 기재해 유족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허위사실을 시정하지 않고 기록에 남기고, 최종 조사결과 보고서 작성 후 주요 참고인 진술조서를 받는 등 납득키 어려운 행태를 보이며, 박윤기의 사망 원인을 가정불화로만 몰고 갔다.군의문사위는 망인이 군복무 중 우울증에 걸렸으나 지휘관을 비롯한 주요 관부의 무관심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수행에 따른 얼차려, 소속 부대원들의 ‘왕따’ 등 스트레스를 장기간 받아 주요우울증으로 병증이 악화돼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이해동 위원장은 “이번 사건이 보호관심사병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박윤기 병장의 사망군분에 대한 재심의를 국방부장관에게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