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통령이 말한 허황후는 역사적 사실인가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2015년 10월 부산외국어대 이광수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인도 전문가인 이 교수는 당시 허황후 이야기가 만들어진 신화라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정리해 책으로 엮어내는 중이었다. 2017년 1월 그 책이 나왔다. ‘인도에서 온 허왕후(허황후), 그 만들어진 신화’라는 제목이었다.
뜬금없이 허황후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방문에서 허황후라는 존재가 양국 간 소통의 상징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허황후는 문 대통령의 언론인터뷰와 연설에 등장하더니 9일 저녁에는 문 대통령과 재인도 동포들의 만찬 자리에 인도 총리가 허황후 공연을 선물하기까지 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을 예우하기 위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이례적인 조치였다고 한다.
인도 무용단의 공연 레퍼토리는 한국에 퍼져있는 허황후 이야기 그대로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 부모의 꿈에 나타난 신의 계시에 따라 금관가야로 왔고 수로왕과 만나 허황후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이 같은 이야기는 “만들어진 역사”에 불과하다고 했다. 통일신라시대 수로왕 신화의 일부에서 시작해 조금씩 살이 붙었고, 조선시대 특정 세력의 주도로 오늘날의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 교수는 1970년대 이후 일부 학자와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 결과 실제 역사처럼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이 교수는 허황후 이야기를 문화콘텐츠로서 인정하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 교수의 주장이 모두 맞지 않을 수 있다. 실제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한 참모가 이 같은 논란을 과연 알고 있었는지, 알고도 그냥 넘어갔는지는 짚어볼 문제다. 향후 허황후 이야기가 만들어진 허구라고 결론 날 경우 이번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될 테니 말이다.
문 대통령이 인도 국빈방문에서 허황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인도와 한국 간의 인연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그 동안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다른 나라를 찾을 때마다 해당 국가와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상대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 온 행보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달 러시아 방문 때에도 하원 두마 연설에서 “한국인들의 서재에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의 소설과 푸시킨의 시집이 꽂혀있다. 나도 젊은 시절, 낯선 러시아의 지명과 등장인물을 더듬으며 인간과 자연, 역사와 삶의 의미를 스스로 묻곤 했다”고 했다. 또 조인영, 이범진, 안중근, 홍범도, 최재형, 이상설 등 러시아와 인연이 깊은 한국인들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마 의원들은 이런 연설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인연 강조’가 논란을 부른 적도 있다. 지난 해 12월 중국 방문 중 베이징대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6.25에 참전하고 북한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을 언급해 논란을 자초했다. 대통령 연설문 담당자가 반추해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