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한나라, 정상회담 ‘딴지’걸기?
한나라당의 남북정상회담 ‘가이드라인’ 제시에 범여권 ‘발끈’ ‘황당’
한나라 “끌려가는 정상회담”…‘3가(可)3불(不)’ 원칙제시 맹공격
문희상 “2군 후보가 1군 감독에게 작전” “회담 실패하라는 주술(?)”
한나라당이 오는 28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세 가지씩을 담은 ‘3가3불(三可三不) 원칙’, 즉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청와대와의 갈등이 예상된다.
청와대는 앞서 정치권을 향해 ‘정략적인 주문’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15일 제62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이드라인을 확정, 정부가 이를 지켜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범여권은 발끈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남북정상회담 지원특위 문희상 위원장은 “2군 후보선수가 1군 감독에게 작전지시를 하는 행태”라고 비꼬았다. 한나라당이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자체 TF팀을 통해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유는 뭘까.
지난 16일 한나라당 남북정상회담 태스크포스(TF, 이주영 위원장)는 남북 정상이 회담을 통해 ▲북핵폐기 확약 ▲분단고통 해소 ▲군사적 신뢰구축을 ‘합의해야 할’ 사안으로 정했다. 반대로 ▲국민합의 없는 통일방안 ▲NLL 재획정 ▲국민부담 가중하는 대북지원은 ‘논의해서는 안될’ 의제로 정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당사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ㆍ민족적ㆍ국제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분단고통의 극복을 위한 책임 있는 결과가 있도록 노력할 것을 온 국민과 함께 촉구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나경원 대변인도 거들었다. 나 대변인은 같은 날 현안 브리핑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무엇보다 한반도 비핵화에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경제협력은 부차적인 문제다. 본말이 전도된 회담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 대변인은 또 “정부가 어떻게든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준비단계부터 북한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해상의 휴전선인 NLL 만큼은 양보란 있을 수 없고 이번 정상회담 의제로도 절대 채택돼선 안 된다. 국가 안보만은 절대 팔아먹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나라당은 외견상 ‘3可3不’과 관련, “양국 정상회담의 어젠다 설정에 관한 기본방향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나라 “정부가 북한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
그러나 범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하고 와도 이번 회담을 두고 한나라당이 ‘무조건 실패’라고 주장하기 위한 ‘함정’,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을 ‘비난할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향후 정상회담결과에 대한 ‘비판의 날’을 미리 갈아 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딴지’를 거는 이유는 이번 정상회담이 ‘대선용 정상회담’이라는 의혹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지율이 낮은 범여권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최고의 흥행카드를 결국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선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직접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임기말 노무현 정권이 서두르는 이유가 분명 있기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정부가 어떻게든 남북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준비단계서부터 북한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까닭에 나 대변인의 논평을 관찰하면 - 노 대통령이 경축사를 통해 “(정상회담에서) ‘무엇은 안 된다’든가 ‘이것만은 꼭 받아 내라’는 부담을 주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 한결같이 “○○의제는 절대 안된다” “○○에 대해선 양보란 있을 수 없다” “○○의제는 절대 채택되선 안된다”는 문장으로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
나경원 대변인은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무엇은 받아 내라는 부담을 주지 말아 달라’고 말함으로써 남북문제의 최우선 전제 조건인 비핵화 문제를 회피하려는 듯한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범여권 “정상회담 ‘실패’ 프레임 짜놓은 것”
범여권은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발끈’하고 있다. 핵 폐기 약속을 못받아 올 경우, 정상회담 성과는 무조건 인정할 수 없고 ‘실패’라는 ‘프레임’을 짜놓은 것이라는 비판이 범여권 내부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남북정상회담 지원특위 문희상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3可 3不’를 내놓은데 대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남북 정상간 만남의 의미조차 제대로 짚어보지 못한 ‘2군 후보선수가 1군 감독에게 작전지시를 하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회담에 실패하라는 주술 정도가 아니라 ‘이번 회담은 무조건 실패’다라며 미리 함정을 판 것”이라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이와 함께 “회담 개최 발표 직후 (한나라당으로부터) ‘뒷거래 의혹’이라는 한심한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정치공세가 집중되고 있다”며 “그 두 번째로 정상회담에 ‘3可 3不’이라는 회담 조건까지 제시하며 정부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만남 자체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려는 것인지, 회담을 지원하기보다는 이를 준비하는 대통령과 정부에 부담을 주고 걸림돌이 되는 언행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나라당은 갈등과 후퇴의 회담을 바라나?
범여권 대선주자인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이날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정당들은 남북정상회담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하고, 대선을 이유로 회담을 훼방하거나 폄훼해서는 안된다”며 “한나라당이 제시한 ‘3가3불(三可三不)’ 원칙은 협력과 전진이 아닌 갈등과 후퇴의 회담을 바라는 것”이라고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이와 관련 정치권 한 인사는 “한반도의 새지평을 열 남북정상회담은 누가 뭐래도 지금이 적기”라며 “북한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실제로 미국과 일본, 중국도 정상회담을 찬성하는 마당에 유독 한나라당에서는 아젠다도 설정하지 않고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한다는 둥 딴지를 걸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