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형촌마을 산사태…"산을 건들지 말아야 했다”
부촌이 삽시간에 폐허로…주민들 “근래들어 우면산 개발 너무 많아”
2011-07-27 한승진 기자
형촌마을은 예부터 대학총장이나 연예인 등 상류층들이 거주하는 부촌으로 유명하다. 평당 2500만원에서 3000만원 정도를 호가할 정도로 고급빌라가 몰려 있는 이곳은 한때 영화배우 심은하도 정치인인 남편 지상욱씨와 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발생한 산사태로 발생한 토사와 물은 평화로운 마을을 삽시간에 삼켜버렸다. 70여가구 중 절반 가까이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피해가 난 집들은 대부분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 양 옆에 있었다. 집들의 외형은 비교적 온전했지만 외벽은 토사로 도배가 돼 있었다.
이번 산사태는 특히 우면산 코밑에 있는 고급빌라들에 큰 타격을 입혔다. 한 빌라 대문 앞에 나뒹구는 바위가 산사태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오후 들어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마을을 휘젓던 흙탕물은 물러갔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토사와 뿌리째 뽑혀 떠내려온 나무들로 인해 현장 접근이 어려웠다.
주인을 잃은 외제차들은 토사에 떠밀려 마을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형촌마을 인근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 모인 주민들은 사고당시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이곳에서 20년째 슈퍼와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장모(58·여)씨는 "오전 7시반쯤 비가 쏟아졌다. 우리집 아저씨가 하수도에 찌꺼기가 막혀서 흙물이 있는 줄 알고 곡괭이 들고 가다가 물살이 세서 떠내려 갈 뻔했다. 아찔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마을 위에서부터 차도 떠내려 오고, 나무도 떠내려 와서 급하게 밖으로 피했다"고 말했다.
김모(74·여) 할머니는 "30년을 넘게 살았어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며 "원래 산 가까이 사는 게 좋은 줄 알고 살았는데 오늘 보니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고 몸을 떨었다.
김모(78) 할아버지는 인재가 겹쳤다고 했다. 최근 우면산 안팎에서 벌인 각종 공사가 산사태를 불렀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는 "홍수 안전지대라고 자부했는데, 이런 일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산을 건들이지 말아야 했다.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곳이 하천길이다. 원래 하천이 다니는 곳을 메워서 만든 도로다.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모(55·여)씨도 "근래들어 우면산 개발이 너무 많았다"며 "이를테면 예술의 전당, 우면산 터널, 생태공원, 관문사 등 개발로 인해 산이 많이 상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개발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