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VS 이명박, 남북정상회담 대충돌

2007-08-22     최봉석 기자

 “대선 이후 당선된 대통령과 협의해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해야”(한나라당)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좌지우지하고 국가체계를 무시하는 오만함”(청와대)

[매일일보닷컴] 한나라당은 혹시 경선을 대선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한나라당이 오는 10월 2~4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끊임없이 ‘딴지’를 걸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시기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차기 정권에 넘기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하고 있어서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 날부터 공식적으로 이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와 범여권이 “이명박 후보가 정해지고 맨 처음 나온 정책이 고작 이것인가”라며 한나라당의 외침을 ‘트집’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와 이명박 후보측간의 한바탕 대충돌이 예견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당의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공식 확정되던 지난 20일 남북정상회담 대책 TF팀(이주영 정책위의장) 회의를 개최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연기와 관련해 대책을 논의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수해 때문에) 개최 시기와 장소 및 의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차기 정권에 넘기는 것이 순리”라고 밝혔다.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다음 날인 21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어제(20일) 수해 때문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의제가 북한 핵문제 등이 분명하게 들어갈 것 같지 않고 또 정상회담이 자꾸 연기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 같다”며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에 차기 정권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또 “최악의 경우에라도 대통령이 당선되면 당선된 대통령과 협의 하에 진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한나라당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 “대통령 당선되면 협의 하에 진행하라”

이명박 후보도 같은 날 오후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한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정상회담을 앞으로 대통령선거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걱정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제를 분명히 안하고 잔뜩 합의를 하고 오면 차기 대통령이 이행해야 되니 걱정이 된다”며 “핵포기를 시켜야 되는데 핵이 있는 상태에서 협상해버리면 핵을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어 “역시 신뢰의 문제인데, NLL에 관해 통일부장관이 발언한 것을 보면 참으로 걱정된다”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올 대선에 있어서 평화 대 전쟁불사 당으로 몰까봐 걱정이 된다. 오히려 한나라당이야말로 전쟁억지당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22일 현안관련 브리핑을 통해 “남과 북이 모두 남북정상회담을 연기하기 위한 명분으로 수해를 이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며 “정부가 별로 따져보지도 않고 정상회담 연기를 전격 수용한 것도 이런 의구심을 더하게 한다”고 가세했다. 나 대변인은 이어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연기의 진짜 배경이 무엇인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차피 남북 정상이 합의해도 집행은 차기 정부 몫일 수밖에 없다”며 “명실상부한 회담이 되려면 차기 정부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선거판 흔들어 정권교체 막아보겠다’ 술책 주장

한나라당은 10월 정상회담이 ‘대선용 정치 이벤트’이며 노무현 정부의 국내 정치용 회담이라며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다시 말해 선거판을 흔들어 정권교체를 막아보겠다는 술책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속에서 “이벤트성 정상회담은 오히려 국민적 반감을 불러일으켜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청와대는 한나라당의 이 같은 목소리에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정상회담 연기주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철없는 주장”이라고 일침을 가했다.청와대 홍보수석실은 21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을 통해 “정략적 차원에서 한번 던져보는 정치공세라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 되풀이되는 대변인의 막말 공세에 그치지 않고 정책위원장까지 나서서 당내 논의 절차를 거쳐 나온 결론이라고 강조한다. 공당의 논의가 이런 수준이라면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청와대는 “상식적으로 정상회담 연기 요구가 대한민국 정부 이름으로 수용할 수 있는 요구인가. 한나라당 집권이라는 당리당략 말고 국가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하는 얘기인가”라며 “아직 선거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좌지우지하고 국가체계를 무시하는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라고 한나라당의 요구를 사실상 일축했다.

국가체계 무시하는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

청와대는 특히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으면 앞으로 최소한 1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한다”며 “참으로 무책임하고 철없는 주장이다. 아무리 대선이 중요하고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라고 해도 너무 심하다. 국가가 있고 집권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대통합민주신당 오충일 대표는 22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남북정상회담 연기 발언과 관련, “남북관계에서는 큰 틀의 생각을 가질 줄 알았는데 상식 이하”라며 “(남북문제는)8천만 민족의 숙원과제이고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나 6자회담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의외의 발언”이라고 꼬집었다.정균환 최고위원도 “적어도 외교에 대해서는 초당적 접근이 있어야 하고 특히 남북관계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며 “일각에서는 이 후보는 뭔가 불안하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낙연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가 정해지고 맨 처음 나온 정책이 고작 이것인가. 공연한 트집이다.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후보 정해지고 맨 처음 나온 정책 맞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움직임이 이명박 후보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 남북정상간 회담이 17대 대선을 불과 두 달 여 남겨 놓고 열려 회담의 결과에 따라 대선 판도에 직ㆍ간접적 영향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연구실장은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평화 체제가 가시화하면 대선 판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입장에선 앞으로도 정상회담 연기를 끊임없이 주문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