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朴 ‘자택 칩거’ 어떤 ‘정국구상’ 중?

9월초 ‘화합’ 차원 ‘회동’→‘재집권’ 절충안 찾지 못할 시 朴 이명박 지지 철회 가능성

2007-08-23     최봉석 기자

‘이명박호(號)’ 초반부터 삐그덕…여러 정황상 선대위원장직 맡지 않을 듯
李 캠프 “군사정권이 5,6공을 거치며 국민에게 잘못, 반성해야”…朴 겨냥
당 관계자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 한 배 탈 수 없는 최악의 상황” 진단

[159호 정치] 범여권에 소속한 대선주자 A씨의 주장대로, 잇따르는 의혹으로 점철된 이명박 후보와 달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한나라당 경선에서 특별히 공분을 자아낼 약점이 없었다. 그래서 박 전 대표는 전쟁을 방불케 했던 당 경선을 통해 연일 이 후보를 향한 공격의 최선봉에 섰고 ‘당심’을 얻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석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경선결과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박 전 대표 역시 - 겉으로는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큰’ 용기를 보여줬지만 -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박 전 대표가 전당대회 후 일체의 외부활동을 잡지 않고 두문불출하며 말문을 굳게 닫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박 전 대표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지난 21일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열린 이른바 ‘눈물의’ 해단식에도 박 전 대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사어구에 가까운 “졌지만 이겼다”는 정치공학적 새로운 해석보다는 솔직컨대 “이겼는데 졌다”는 지지자들의 외침 속에서 터져 나오는 ‘여론조사 조작설, 무효설’이 더 의미 있는 메시지와 응원으로 귀에 솔깃하게 들렸을 가능성이 높다.어찌됐든 박 전 대표는 경선에서 패배한 직후 삼성동 자택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사실상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박 전 대표는 경선 과정을 돌아보고 향후 정치 행보를 결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박 전 대표 측근인 이정현 대변인은 “박 전 대표가 당분간 언론에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박 전 대표가 “경선 승복은 진심”이라며 “섭섭하더라도 내 뜻 따라 달라”고 밝힌 뒤, 캠프는 이 같은 지침에 따라 활동을 마무리하고 사실상 문을 닫은 상태다. 경선에 패배한 상황에서 앞으로는 ‘공식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이는 ‘이명박 후보의 위상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는 당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대선후보를 결정한 한나라당의 지상과제는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집권’이고, 이를 위해 당은 더 이상 자기 당 후보의 허물을 캐고 확인하는 이른바 ‘자살행위’를 중단해야 하는 처지다.

일단 ‘무대 뒤’로…이명박 후보에 대한 ‘배려(?)’

결국 당의 모든 중심에 이 후보가 서야 하고, 자신은 되도록 ‘무대 뒤’에 존재해야 한다는 일종의 ‘배려’가 작금의 박 전 대표 심정일 수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지난해 7.11 전대에서 물러난 뒤 신임 강재섭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상당 기간 외부 활동을 자제한 바 있다. 박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이 이 후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공식적으로 드러난 ‘칩거’의 또 다른 이유는 박 전 대표의 ‘건강’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 관계자는 “1년 2개월에 걸친 경선운동에 따른 피로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여의 경선 기간 ‘박근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우세한 ‘영남권’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도권’과 ‘호남권’ 등을 집중 공략하는 등 쉼 없는 유세 일정 등을 소화하느라 극도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이기 때문에 일체의 외부활동을 끊고 자택에서 심신을 추스르고 있다는 것이다.이 같은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할 때 박 전 대표는 당분간 계속 ‘칩거’ 상태를 유지하다가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부터 ‘국회의원 박근혜’로서 공식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9월, 국회의원 박근혜로 공식 활동 재개 가능성

그러나 여의도 정가는 박근혜 전 대표가 ‘언제 활동을 재개하느냐’보다 ‘칩거 중 어떤 정치적 구상’을 하는지에 대해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다시 말해 이명박 후보 측과 손을 잡느냐 마느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명박 후보 측이 선대위원장을 제의하면 이를 수락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어떤 입장을 표명하면서 ‘칩거’ 생활을 마무리하느냐는 데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이런 까닭에 박 전 대표가 ‘칩거’ 중에도 제한적이나마 외부 활동을 재개하리라는 분석도 있다. 선대위원장직을 맡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참모를 중심으로 공식 논의를 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겠냐는 것이다.일단 박 전 대표 측근들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측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이명박 후보는 공개적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한 사람은 경선 과정에서 어디에 있었든 같이 갈 것”이라며 ‘화합’ 차원에서 박 전 대표와 손을 잡으려 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깨끗한’ 경선승복을 외치며 ‘화려하게’ 물러났던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선 연일 ‘혼탁으로 치닫고 있는’ 이 후보 측의 손을 덥썩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후 ‘이명박호(號)’는 초반부터 당 체제를 탈바꿈시키는, 즉 항로설정에 따른 내부적 불협화음으로 인해 삐거덕거리고 있는 터라 일부러 ‘이명박 띄워주기’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는 속내를 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명박호 흔들, 이명박 손 ‘잡을까 말까’ 관심

줄줄이 예정된 당직자 인선과 관련해선 벌써부터 ‘이명박 사당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당내 한 관계자는 “당심에서 패배한 경선 결과를 볼 때 자성해야하는데 오히려 사당화 시키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까닭에 이명박 측이 내민 손이 ‘약’이 아니라 ‘독’일 가능성도 염두하고 있다는 게 박 전 대표 측근들의 귀띔이다.박 전 대표 측 입장에선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이명박 후보 측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박 전 대표가 쉽게 이명박 후보와 손을 맞잡을 수 없는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현재 당의 ‘색깔’과 ‘기능’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박근혜 체제의 색깔을 빼야 향후 대선 정국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은 지난 23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옛날 군사정권이 5,6공을 거치면서 당은 국민에게 상당히 잘못했는데 이런 과오를 반성하고 청산해야 한다”며 박 전 대표를 노골적으로 겨냥했다.결국 정치전문가들은 섣부른 판단일 가능성도 있지만, 박 전 대표는 이명박과 작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 방점을 두는 모습이다. 박 전 대표 측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 후보의 (선대위원장) 제안은 성급한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불가능해보이긴 하지만 이미 박근혜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박근혜-민주당’의 연대설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민주당 연대설, 지지세력 사이 확산 주목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경선 이후 박 전 대표 측이 이 후보를 지지해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은 이미 한배를 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박 전 대표의 뜻과 상관없이 향후 행보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박 전 대표는 이번 주(27~31일)께 캠프 지지자들이 마련하는 만찬회(경선 뒤풀이)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일단 “선거에 졌고 이를 깨끗이 인정하면서 큰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만찬회에서 향후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만찬회 자리를 ‘시작’으로 그간의 칩거를 정리하고 향후 정국에 대한 얼개를 박 전 대표가 그리지 않겠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관심사는 역시나 박 전 대표의 ‘입’에서 향후 계획에 대한 어떤 입장이 나오느냐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번 경선과정을 통해 ‘정치적 역량이 더욱 강화됐다’는 세간의 찬사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청기를 들지, 백기를 들지’에 따라 당의 대선 판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에서 “백의종군 하겠다”던 박근혜 전 대표가 ‘백의종군’을 뿌리치고 이명박 후보를 과연 도울 것이냐는 것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범여권 공세 강화시, 이 후보를 도울 가능성도 높아

원칙적으로 박 전 대표 역시 ‘정권 재탈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 이상 이명박 후보를 향한 범여권의 공세가 한층 강화될 경우 어찌됐든 ‘아군’을 돕는 심정으로 이 후보를 돕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현재로선 지배적이다. 범여권의 경선전이 본격화되는 - 범여권의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격이 구체화되는 - 10월초에 박 전 대표가 이 후보를 위해 발로 뛸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최경환 의원은 지난 2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여러 가지 여건이 마련된다면 뭐가 됐든 간에 당의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그렇게 (협력)하겠다는 뜻은 확고하다”고 말했다.문제는 방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후보를 돕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에 대해 “조건이나 자리 요구, 이런 것보다 당원으로서 사심 없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구체적 역할론’에 대해 ‘뭔가 언급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어찌됐든 당의 정권 창출을 만날 꿈꾸는 이명박과 박근혜는 ‘동반자’로서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칙적’인 얘기를 하든, ‘의례적’인 얘기를 나누던, 대선을 향한 ‘구체적’인 의견을 주고받든 회동을 하게 될 확률은 100%다. 이명박 후보는 이와 관련 “너무 일찍 만나자는 것은 진 쪽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언급한 상황. 일각에서는 ‘8월 회동설’을 제기하지만 불발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앞선다.

8월 회동설 노, 9월 회동설 예스

그렇기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이르면 9월 초께 양측이 만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관심의 또 다른 포인트는 대화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다. 정답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당 개혁’ 방침에 따라 당 안팎의 불만을 사며 ‘하한가’로 치닫고 있는 이명박 후보와 달리 박근혜 전 대표는 경선패배에도 불구, 요즘 ‘상종가’다. 상종가를 내달리는 박 전 대표가 경선 전에 갖고 있던 900여 만 표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도 관심이다. 이게 바로 이명박 후보가 끊임없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진짜’ 이유다.마지막으로 보너스. 가정법인데, 만약 두 사람간의 ‘화합’이 끝내 ‘불발’로 돌아가게 된다면? 최근 들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제3후보 출마설’이 또다시 떠오르고 있다.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