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방문판매 알고 보니 불법 다단계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대교, ‘규제’ 피해온 놀라운(?) 위장술

2008-08-24     권민경 기자

공정위, ‘무늬만 방문판매’ 칼날 빼들어
공정위 “상위 업체 불법 행위 타 업체 확산 높아”
업계 상위 기업들, 다단계 전환 놓고 딜레마 빠져

[매일일보닷컴]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대교 등 업계 상위 기업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영업 행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무늬만 ‘방문판매’(이하 방판)라고 속이고 실제로는 미등록 다단계영업을 해온 기업들에 대해 과태료 부과 및 시정명령을 내렸다.

화장품, 학습지 등의 부문에서 업계 1~2위를 차지하는 이들 업체들은 각각 4단계~7단계의 판매원 조직을 운영하면서 판매실적에 따라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등 다단계방식의 영업을 해왔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받은 해당 업체들은 분주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다단계판매업으로의 전환 여부를 놓고 고심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시정조치 업체들, 최고 60%까지 후원수당 지급

다단계판매의 구성요소로는 판매원의 가입이 단계적·누적적으로 이루어져 가입한 판매원의 단계가 3단계 이상이거나 판매원을 단계적으로 가입하도록 권유하는 과정에서 판매 및 가입유치 활동에 대한 경제적 이익의 부여를 유인으로 활용하는 경우다.공정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방판사업부의 경우 7단계의 판매원 조직을 통해 하위판매원과 본인의 판매실적에 따른 육성, 교육장려금 등을 지급해왔다. LG생활건강과 대교 역시 각각 5단계, 4단계의 판매원 조직을 갖추고 실적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교는 기존 판매원이 특정인을 판매원으로 가입시키면 일정한 조건하에 기존 판매원에게 1인 7만원, 추가시 1인당 10만원 등의 증원수당까지 지급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다단계판매는 매출액의 35%내에서 후원수당을 지급할 수 있지만 대교는 40~60%를 지급했고, 나머지 업체들도 30~40%대의 수당을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판매자가 구매자를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권유 등을 통해 판매활동을 벌이는 방문판매업은 시, 군구에 신고만 하면 별다른 제재조치를 받지 않는다. 반면 다단계판매업은 시, 도에 등록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피해보상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후원수당이나 상품가격 등에서 제한을 받는 등 까다로운 규제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다단계 판매의 경우 조직의 하방확장성, 연고판매, 대인판매 등의 특성으로 인해 사행성 조장, 소비자 피해 야기 등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엄격한 규제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대교 등은 다단계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함으로써 각종 다단계판매업자의 준수의무를 회피했고 이를 모방한 다수의 소규모 업체들이 발생하는 문제까지 야기 시켰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업계1~2위 아모레VS LG생건, 공정위 대응법 달라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내려지자 관련 업체들은 공식 입장을 자제한 채 내부적으로 구체적인 상황 파악에 나서고 있다. 1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위반 사실을 시정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즉, 지금까지의 영업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다단계등록을 하던가 기존 시스템을 2단계 이하 판매 조직으로 전면 개편하던가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단계판매업 등록을 하게되면 이미지 추락이 불가피한데다가 방문판매업보다 까다로운 규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실제로 다단계판매업 등록을 하면 최고 130만 원 이상의 제품을 판매할 수 없고, 판매원 장려금 등 수당도 판매대금의 35%이상을 줄 수 없게 된다. 이런 가운데 방문판매가 영업의 30%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화장품 업계 1~2위 업체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공정위의 이번 조사에 대해 상이한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끒고 있다.

먼저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공정위의 결정에  내심 반발하면서도 “확정 공문을 받고 검토한 후에 회사의 입장을 밝히겠다”며 일단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정확한 입장이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40년 넘게 방판을 지속해 오면서 고객 피해, 불만 등이 없이 영업을 잘 해왔다. 공정위 측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단계 방식의 영업을 해온 적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공정위가 아모레퍼시픽의 판매조직이 7단계라고 결론지은 것과 달리 실제로 아모레의 방판사원들은 특정한 직급을 정해놓고 이에 따라 수익이 발생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또 공정위 측에서는 육성장려금을 준다는 것을 문제삼았지만, 모집인이 직접 모집한 사람에게만 수당이 돌아가는 것이지 다단계 방식처럼 모집인과 피모집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익고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이어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다만 일선 영업 현장에서는 경력이나 나이 등에 따라 형식적으로나마 직급을 정해놓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 역시도 수익발생 여부 등과는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LG생활건강의 경우 공정위 발표가 나기 전에 이미 서울시에 다단계판매업자 등록을 신청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LG생활건강이 그간의 판매방식에 다단계성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LG생활건강이 공정위 발표보다 한 발 먼저 다단계판매업 등록이라는 수를 띄운 데에는 ‘잘못을 인정했다’기 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LG생활건강의 한 관계자는 “다단계판매업 등록을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공정위가 말한 것처럼 다단계 방식의 영업을 해왔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에서 파악하기로는 다단계 방식이 아니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어차피 공정위의 시정조치가 내려질 것이었기 때문에 향후 공정위와의 관계 등을 생각해 일종의 ‘액션’을 취한 것 뿐”이라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했다. 이어 “다단계판매업 등록 신청을 했지만, 앞으로 다단계 판매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여부는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교 ‘교육기업’ 이미지 추락…공정위 결정 반박

학습지 업계를 대표하고 있는 대교도 이번 공정위의 시정조치에 따라 난감한 상황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이라는 특성 상 불법 다단계판매 적발은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자칫 대교의 브랜드 파워 약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대교는 “공정위 결정은 규제필요성이나 이유가 전혀 없는 방문교육사업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라며 “대교의 방문교육 사업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즉 대교의 방문교육사업은 교사들이 방문교육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수를 받는 형태이며 기존 방문교사들이 신규교사를 추천하도록 하고 있지만 피추천교사가 추천을 한 교사의 하위판매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추천 시 지급하는 수당 역시 1회성의 적은 액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또한 피추천교사의 실적에 전혀 연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연고판매 및 대인판매를 통한 판매조직의 확장이 아니라고 대교 측은 주장했다. 한편 대교 한 관계자는 “일단 공정위의 발표에 대해 내부적으로 반박의견을 정리하긴 했지만, 정확한 입장은 확정 의결서를 받은 이후에나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