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군사쿠데타의 망령이 부활했다

2019-07-26     송병형 기자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현재 우리는 대규모 폭력 소요로 인해 치안 행정 기능이 마비되는 등 국가비상사태를 맞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유언비어 확산으로 사회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폭력시위 확산 및 사재기가 급증하고 있어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헌법 제77조에 의거하여 17년 0월 0일 00:00시를 기하여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며, 본인은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계엄사령관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사회질서를 회복하고 원활한 작전을 위하여 부여된 책임과 임무완수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우리 군을 믿으시고 계엄사령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국민총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계엄사령부는 공공의 안녕과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거듭 다짐합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 드립니다. 2017. 0. 0.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000”‘친애하는’이라는 상투적인 말로 시작하는 이 글은 기무사가 지난해 탄핵결정을 앞두고 작성했다는 문건의 일부다. 정확히는 계엄 검토 문건에 딸린 67쪽 분량 ‘대비계획 세부자료’ 속 계엄사령관의 담화문인데 곱씹을수록 섬뜩한 느낌이 드는 글이다. △폭력 소요 △치안 마비 △유언비어 확산 △대학가 폭력시위 △사재기 △국민 불안 △사회질서 회복 △임무 완수 △국민총화 등 사용된 용어 하나하나가 80년대 학창시절에나 들었던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을 아직도 사용하는 군인들은 대체 어떤 사고를 가졌을까. 그들의 인식이 여전히 그때 그 시절에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닌지. 군사쿠데타의 망령이 주변을 배회하는 느낌이다.주변에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과잉반응’이라고 일축하는 이들도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 전달이 무섭도록 빠른 시대에 과거와 같은 군사쿠데타가 과연 가능한 일이냐는 것이다. 이들은 정확히 2년 전 터키 쿠데타를 막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페이스타임 방송을 기억하는 이들이다. 실제 터키의 군사쿠데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페이스타임을 통한 TV 인터뷰에서 지지자들에게 “군부에 맞서 싸우라”고 독려한지 3시간 만에 진압되고 말았다. 쿠데타에 동원된 병사들이 감히 대량의 시민학살을 저지를 엄두를 내지 못한 결과였다.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오늘날 최첨단 시대에도 군사쿠데타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세력이 터키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터키는 군사쿠데타 문제에 있어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 터키에 있었다면 한국에도 군사쿠데타가 여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없으란 법이 없다. 케말 파샤의 유지를 이어받은 터키 군부는 이슬람의 발호를 막기 위해 1960년, 1971년, 1980년 등 여러 차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성공시킨 바 있다. 우리도 박정희와 전두환이 연거푸 군사쿠데타에 성공했다. 또 터키에는 세속주의를 통해 기득권을 틀어쥔 엘리트들이 정부와 사회의 요직에 앉아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에르도안을 중심으로 한 사회변혁 세력과 대치하던 상황이었다. 우리 역시 박정희 시대 이래 산업화 세력과 진보 세력 간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 군사쿠데타의 망령이 터키에서 부활했다면 한국이라고 부활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