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대통령 하니? 나도 대통령 한다!
작가, 종교인, 농부, 청소부, 택시기사, 목사, 가수 등 대권 문전에 장사진
2007-08-29 최봉석 기자
8월22일 기준 1백1명 대선 예비후보 등록…선관위 “더 늘어날 것”
‘화끈하고 황당한’ 공약으로 세인의 관심 끌어라…‘후보 난립’ 지적도
[매일일보닷컴] 이번 대통령선거에선 예비후보자 등록제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예비후보 등록제는 인지도가 낮은 ‘신인’ 정치인에게 선거운동 기회를 주는 게 취지로 지난 2004년 3월 처음 도입됐다.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대선후보 등록에는 5억원의 기탁금을 맡겨야 하지만, 예비후보 등록에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예비후보 등록은 정식후보 등록 하루 전인 11월 24일까지 가능하다. 이들은 선거사무소에 간판과 현판, 현수막을 각각 1개씩 게시할 수 있다. 공약을 담은 명함도 돌릴 수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8월22일을 기준으로 1백1명이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중앙선관위측은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자들의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후보 난립’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이들은 출마를 선언한 뒤 나름대로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보내기도 하고, ‘화끈하거나 다소 황당한’ 공약을 제시하며 ‘이름 알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등 널리 알려져 있는 유명 정치인 외에 또 누가 “나도 대통령 후보”라며 출마를 결심했을까. 그 면면을 살펴보면 대학교수부터 작가, 종교인, 농부, 청소부, 택시기사, 목사, 가수, 무직자 등 다양한 직업의 생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예비후보자 백승원(58ㆍ現 평화기계, 천지타임즈 발행인 대표)씨는 평민당, 국민회의, 민주당 등 정당 생활만 20년째다. 서울시장에도 출마한 경험이 있다. 백씨는 전ㆍ현직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 대표의 비리재산을 조사해 환수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는 “정치권의 불법정치자금과 뇌물 2조5천430억 원, 한나라당 1조 5천억 원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오세훈, 김문수, 서청원 전현직 등의 재산을 모두 조사해 환수하겠다”고 말했다.현재 개혁당 정책위원으로 활동 중인 최영준(41)씨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해, 21세기에 맞는 더 좋은 세계를 확립하기 위해 출마하였다”며 과세ㆍ부동산 개혁, FTA에 맞서는 농업 정책 등을 공약으로 내걸은 뒤 가칭 ‘새민당’의 창당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미국 중앙정보국 극동 요원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사백(55)씨는 말 그대로 특이한 이력을 가진 후보.“美 중앙정보국 출신이야”
김씨는 “나는 17대 대선후보로 나서기까지 3수를 하는 대학입시준비생과 같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생 동안 준비한 소망이지만 구체적으로는 10년 전 15대 대선을 통해 국내외 지도자 어른, 친지 그리고 벗의 권유로 대선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때마다 아내의 적극적인 만류로 출마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될 경우 “가난한 이웃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부의 창출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이나경(41)씨는 대통령 후보 자격 나이인 40세를 막 넘긴 최연소 여성 후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이씨는 지난 4월23일 중앙선관위에 예비후보등록을 마쳤다. 그는 “북한문제와 불법 폭력시위가 끊이지 않는 노사문제, 양극화 문제, 교육문제, 부동산 문제를 비롯해서 동성애, 낙태, 이혼, 자살 등 우리 사회의 시급한 문제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없어서 해결 안 되는 게 아니”라며 “이 사회의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들을 원망과 시비(在)없이 하나하나 풀어나갈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고 출사표를 던졌다.김기일(76)씨는 최고령 예비후보다. 김씨는 현재 불교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데 “종교와 좌우를 뛰어넘는 중도정치를 지향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기업인 출신도 있다. 삼성생명 본부장을 지낸 조화훈(55)씨는 “대기업 근무도 해봤고 사업해서 큰돈도 벌어 봤는데 항상 뭔가 허전했다”며 “경제를 발목 잡지 않는 정치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큰 돈도 벌어봤는데 뭔가 허전해서…”
종교인이라고 대통령에 출마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종교의 힘’을 통해 대통령 후보에 나선 ‘황당한’ 사람도 있다. 박순철(56)씨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어서 출마를 하게 됐다”고 말했고, 정연중(64)씨 역시 “하늘의 계시를 듣고 대선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장기만(54)씨는 현직 ‘목사’이고, 이진석(54)씨는 승려다. 서해성(43)씨는 직업란에 ‘점쟁이’라고 밝혔다.‘가수’도 있다. 물론 유명세를 타진 않지만 김용구(47)씨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서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서 대통령예비후보로 등록했다”며 “예능계에서 일하는 만큼 한국문화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평범한 소시민도 상당수에 이른다. 반평생을 경찰로 살다 정년 퇴직한 송영원(66)씨는 “국가가 잘못 돌아가는 이유는 국민들이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출마의 변이고, 자신을 경영학 박사라고 소개한 이진석(54)씨는 “문화대통령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예비 후보란에 올렸다.컴퓨터프로그래머인 조계덕(47)씨는 “대통령 피선거권은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라며 “정치를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고 말했고, 충북 음성군에서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박노일(52)씨는 “나도 보통사람”이라며 “대통령도 보통사람인데 나라고 못 할 게 뭐냐”고 말했다. 사업가 심만구(59)씨는 “기성 정치인들이 못 미더워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정식 후보가 되려면 반드시 기탁금 5억원을 내야 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현실 정치에 진저리가 난다” “정치 한 번 해 보는 게 소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태껏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치고 베짱과 용기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들도 마찬가지일터. 그러나 이들이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정답은 ‘글쎄’다. 무명의 예비후보들이 과연 정식 후보가 되기 위한 11월25일과 26일, 기탁금 5억원을 떡하니 들고 나타날지가 미지수니까.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아직까진 ‘현실정치’에서 출발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