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삼국지’

호남 민심 ‘예전과 달라~달라’…한나라당 민주신당 민주당 “무조건 호남을 잡아라”

2008-08-30     최봉석 기자

[매일일보닷컴] 정치권에 ‘특명’이 떨어졌다(?). 여야 정치권이 내린 특명의 내용은 ‘호남을 무조건 잡으라는 것’. 올해 대선을 앞두고 최근 여ㆍ야를 가릴 것 없이 호남 민심잡기가 최대의 화두로 대두되면서 정치권이 호남구애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당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이 ‘불모지’ 호남(광주ㆍ전남ㆍ전북)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등 당 지지도에 탄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호남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자신들의 ‘텃밭’인 영남의 지지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 때문으로 분석되는데, 어찌됐든 ‘특정 지역정당’에서 ‘전국정당’으로 변화를 모색 중인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반기며 호남 민심 잡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민주당을 제외한 이른바 범여권이 대통합민주신당에 아래 뭉치기로 한 이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호남권 지지율이 예전과 같지 않고, 또 앞으로도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결국 호남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일부에서는 한나라당 대세론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추세인터라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세론’으로 호남을 끊임없이 공략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민주신당과 민주당 역시 호남 민심이 흐트러질세라 ‘지역적으로 호남 지역구도의 고립화를 벗어나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양 정당은 정치적 영향력 차원에서 호남 사수에 예전보다 더욱 공을 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한 정치전문가는 이를 두고 “범여권의 텃밭이었던 호남 지역 주민들의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눈빛은 예전과 다른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민주신당, 민주당, 한나라당이 호남 민심을 놓고 벌이는 ‘신(新)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호남의 민심이 달라” = “달라~달라~달라~난 달라.” 한 자동차업체의 광고 CM송처럼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호남 민심이 ‘달라’지고 있다.

여태껏 한나라당은 호남사람들에게 있어서만큼은 ‘가해자’라는 역사적 인식 때문에 호남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도는 그야말로 밑바닥을 면치 못해왔다. 각종 선거에서는 유권자의 90% 이상이 한나라당에 일체 표를 던지지 않았다. 호남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민주당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됐다. 결국 ‘정권 재탈환’을 목표로 둔 한나라당은 ‘전술’을 바꿀 수밖에 없었고 지난 2005년부터 한나라당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 때부터 호남을 차별했던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 물론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상당수였지만 - 사과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서서히 이 같은 전략이 먹혀들어갔다.

정치적인 현안 문제를 꺼내들어 ‘호남민심 달래기’에 나서는 거침없는 행보도 보여줬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은 그대로 있는데 현 노무현 정부가 당을 깨고 나와 국정실패의 책임을 안고 있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민주당을 모독했다’며 호남 민심을 자극했다. 이들은 호남을 찾을 때마다 “호남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정신을 불러일으킨 곳”이라며 “호남정신을 훼손하는 열린우리당과 현 정권을 반드시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나라당은 또 호남표심을 잡기 위해 ▲광주-전남 광역경제권 건설 ▲호남고속철도 조기개통 ▲2012 여수엑스포 유치 적극 지원 ▲호남민 차별하지 않는 탕평인사 등 ‘화려한’ 정책을 호남지역에 발표하기도 했다.결국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한나라당은 요즘 실감하고 있다. 호남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는 등 한나라당의 호남 끌어안기를 일컫는 ‘서진(西進)정책’은 서서히 그 결과물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지방신문협회와 리서치앤리서치(R&R)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달 2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남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25.2%로 1위를 차지했다. 민주당은 23.1%, 대통합민주신당은 16.1%로 그 뒤를 이었다.눈길을 끄는 대목은 두 자릿수 지지도라는 점. 지난 7,8월 문화일보 정기여론조사에 따르면 호남권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한 자릿수였다. 호남에서 한나라당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지난 1987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게 한나라당 자체 분석이다. 물론 한 번의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한나라당 대세론’을 확정짓기는 무리가 따르지만 어찌됐든 한나라당은 무척 고무된 분위기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호남에 꾸준히 애정을 갖고 보살펴 왔고, 그 결과 호남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한나라당은 앞으로 전국정당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인 박계동 의원은 지난 달 23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 “한나라당은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 구조를 끝내고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취지로 호남에 접근했다”며 “그런 성과가 희망을 보이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나라당은 서진정책에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다. 영남출신 이명박 후보가 호남권의 지지율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 이 후보는 정치권과 호남지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달 2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물론 한나라당은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여권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귀울이고 있다.

◇ 범여권 ‘발등에 불’ = 정치공학적으로 대선에서 호남표심이 결정적인 변수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한나라당이 호남권에서 ‘웃는다’는 것은 반대로 민주신당과 민주당 등 범여권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영남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입장에선 ‘호남권’마저 장악한다는 점은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뜻. 대선에게 이길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이와 반대로 호남이 ‘텃밭’인 민주당은 당연지사이고, 민주신당 또한 호남권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할 시 대선에서 백전백패할 확률이 높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민주신당 경선 예비후보들이 한나라당에 질세라 줄기차게 호남에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여권은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지역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호남권 표심을 두고 요즘 들어 가장 고민에 빠진 곳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다.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선 “민주당에서 기대했던 호남 석권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왜 그럴까. 대통합 문제를 놓고 민주당은 현재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갈등’ 속에서 ‘충돌’을 빚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대승적 차원의 ‘통 큰’ 대통합을 외치고 있는 반면,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잡탕식 대통합’은 안된다며 독자생존론에 힘을 두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들어 김 전 대통령의 ‘훈수 정치’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표출하며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결국 호남 민심이 ‘호남의 구심점 되찾기’에 나선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느냐, 아니면 ‘고립무원’에 가까운 민주당을 지지하느냐가 앞으로 민심의 향배가 될 수 있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민주신당의 고민도 더할 나위 없이 크다. 민주신당은 정치공학적으로 ‘호남당’의 성격이 큼에도 불구하고 호남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신당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아류(亞流)’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호남 민심은 지역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역사적 사명과 소명 의식 속에서 민주당을 배신(?)하고 만들어진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등 각종 선거에서 민주당을 외면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의 손을 들어줬다.그러나 참여정부가 올해 들어 “호남이 더 양보해야 한다”, “DJ지지기반이었던 호남이 지역주의 피해자는 아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지면서 노 대통령이 ‘호남 버리기와 영남 올인 전략’의 수순을 밟고 있지 않느냐는 실망 섞인 목소리가 호남권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고 이 또한 표심으로 이어졌다.어찌됐든 민주당과 민주신당 모두 호남권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터라, 호남권의 표심을 얻기 위해 양 당은 ‘한나라당과의 한판 승부’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맞대결 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양 당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정치권 또 다른 관계자는 “호남표심은 참여정부의 정권창출의 단초를 제공하는 등 결정적 변수”라며 “민주당의 경우 조순형 대표체제 출범과 함께 DJ를 비롯해 호남 표심 단속에 나서면서 호남 민심을 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호남 지역 정당 지지율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호남지역 한 정치권 인사는 “민주신당과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경선 레이스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툼을 하고 있어 호남지역에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대통합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이번 대선에선 그동안 범여권 후보에게 90%대의 절대적 지지를 보였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