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직원들 잇따른 사망 ‘왜?’

1년새 직원 8명 사망…돌연사만 6명이라고?

2008-08-31     류세나 기자

돌연사 6명 모두 심근경색, 비슷한 근무부서…‘업무와 관련된 죽음인가’
유가족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원인 밝혀내라”…말로만 도와주는 회사 “못믿어”
한국타이어 “나이, 사망시기 달라…회사와 상관없다”…“유가족 취업알선 등 해줄 만큼 해줬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음’이 한국타이어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1년새 한국타이어의 직원 8명이 돌연사, 안전사고,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은 것. 일부 사망자 유가족들은 이들 대부분의 사인이 심근경색이라는 점과 근무부서가 비슷하다는 점을 미루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이 아닌지 의문이 간다며 한국타이어 사망자 유가족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해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측은 “업무와 관련된 사망인지 원인파악이 되지 않았다”며 유가족 측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죽음의 릴레이’ 어디까지…

지난해 5월부터 올 5월까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금산공장, 중앙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던 8명의 직원이 돌연사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망자들은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던 도중 급성 심근경색(관상 동맥에서 일어난 혈액의 순환 장애) 등으로 돌연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죽음의 릴레이’는 지난 해 5월 대전공장에서 일하던 임씨(당시 51세)의 죽음으로 시작됐다. 사망당일 오후 출근조였던 임씨는 오전시간을 이용해 집에서 경작하는 논에 들러 허드렛일을 하고 돌아와 출근하기 전 거실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것이 임씨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임씨의 동료 이모씨는 “같은 공장에서 근무를 해 평소 고인을 잘 알고 있다”며 “임씨는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돌연사 외에 자살사건도 있었다. 대전공장 김씨(42) 한국타이어에서 15년간 성실히 근무해 온 직원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김씨를 허드렛일을 하는 한직으로 발령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게 가족들의 설명이다. 김씨는 사직서 제출 이틀 뒤 자택 뒷산에서 목을 매 유명을 달리했다.


비슷한 시기, 회사 연말회식자리에 참석한 대전 중앙연구소의 조씨(28)는 회식 후 회사기숙사로 귀가해 잠을 자던 중 숨졌다. 조씨의 아버지이자 공대위 대표인 조호영(58)씨는 “평소 건강하고 지병도 없었는데 입사한 지 채 1년도 안돼서 갑자기 숨졌다”면서 “아들은 회사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집에 오면 ‘밤늦게까지 일했다’며 몇 차례 피로를 호소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공장탈의실에서 숨진 박씨(49), 식당에서 숨진 이씨(42)를 비롯한 총 8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한국타이어, 산재처리 적극적으로 도왔나?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한국타이어에서 직원들의 사망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유족들은 “1년새 유사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은 회사 업무와 무관할 수 없다”며 이들의 사망의 배경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들이 업무 스트레스를 사망원인으로 제기하고 나선 이유는 자살, 안전사고를 제외한 6명 모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같은 공장은 아니지만 중앙연구소 3명, 설비보존팀 2명, PCR 서브팀 2명, 생산관리팀 1명 등 비슷한 업무를 맡아왔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해 대전공장 생산지원팀 최재혁 과장은 “사망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하고, 사망시기에도 차이가 있어 그들의 죽음에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중앙연구소 같은 경우  연구직이고, 근무환경도 제일 좋은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업무하고 관련된 죽음인지 현재까지 원인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며 “회사에서도 이들이 산재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 측의 입장에 대해 공대위 측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간 쌓여져 온 '불신'이 그 이유다.


공대위 조호영 대표는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회사가 언론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면서부터 유족들을 도운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면서 “산재처리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던 회사가 도대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줬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 대표에 따르면 그는 회사기숙사에서 숨진 아들의 산재신청을 했지만 회사 측에서 ‘회사기숙사’가 아닌 ‘사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산재처리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


조 대표가 회사 측에 도덕적 책임과 보상을 요구하는 뜻을 처음으로 내비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하지만 회사 측은 호소문을 보낸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회신조차 없었고, 회사 측에서 받은 답변은 “억울하면 (산재신청)절차를 밟아라”는 말 뿐이었다.


조 대표는 “더 이상 회사를 흠집 내기 싫다. 인간이기에 잘못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심어린 사과의 뜻을 비치지 않는 회사의 태도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억울하다, 억울해”

한국타이어 사망직원 8명 중 자살, 안전사고를 제외한 돌연사 사망자는 6명이다. 그러나 그 6명 중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람은 공장 내 탈의실에서 숨진 박씨(49) 1명 뿐.


공대위 조호영 대표는 “한 회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짧은 기간 동안 죽었는데도 회사에선 개인 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치부하고 있다”면서 “우리 공대위는 회사 측에게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 죽음에 대한 적당한 보상, 제2의 집단사망이 재발되지 않기 위한 방지책 등을 얻어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타이어 측은 유가족들의 강경한 태도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전공장 생산지원팀 최재혁 과장은 “임원들이 유가족들과 계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회사는 사망자들의 산재처리를 위해 관련기관에 자료를 성실히 제출했고, 산재소송에 들어갈 경우 유가족들에게 노무사와 변호사를 선임해주겠다는 뜻도 전했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이어 “유가족들에게 장기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취업도 알선해주고 있고, 8월 말 기준 유가족 중 1명이 취업을 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현재로서 잇따른 사망사건에 대해 드러난 인과관계는 없지만 대전시 인구 30-40대의 평균 사망률 2.16명(2005년 기준)의 3배가 넘는 사망사건이 동일한 사업체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전지방 노동청도 상황파악에 나섰다.


대전지방 노동청 관계자는 “몇 건의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전모를 파악하지는 못했었다”며 “보도된 내용들을 토대로 자체적인 상황파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가족공동대책위도 향후 활동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공대위 조 대표는 “말로만 도와주겠다고 외치는 회사의 납득될 수 없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시위는 물론이고 단식투쟁을 해서라도 정당성을 밝혀내겠다”면서 “공대위 회원들과 차후일정에 대해 상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