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의 #위드아트] 빌 게이츠를 매료시킨 고명근의 낡은 도시 사진

2019-08-02     송병형 기자
카네기는 죽기 전 미리 자신의 재산을 대부분을 현금화를 했고, 죽을 때까지 그 돈의 95%를 자선 사업에 쓰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부자가 재산을 남기고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재벌에게 자선사업가라는 말이 항상 따라 쓰인다.여러 가지 자선사업의 방법이 있겠지만 재벌의 관심사나 취미생활이 자선사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술품 수집이다. 재벌 개인이나 기업에서 사둔 미술품은 투자 목적이 있기도 하지만 향후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미술관을 설립하는 과정을 밟는 경우가 많다. 기업과 재벌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예술품은 공공의 유산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오늘날 세계 최고 부자로 치는 빌 게이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MS아트컬렉션에 전 세계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며 슈퍼컬렉터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소장품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면서 스타가 되는 작가들도 많다. 국내 작가인 고명근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빌 게이츠 재단은 고명근 작가의 작품을 4점이나 소장하고 있다.세계적 갑부는 과연 어떤 작품에 매료된 것일까. 작가에게 확인했더니 의외로 뉴욕의 낡은 빌딩을 담은 작품이었다. 고명근의 작품은 투명한 플라스틱 표면에 사진의 이미지를 중첩 투영,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사진에 담긴 이미지 자체는 낡고 허름한 건물이 등장한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83년도 대학을 들어갔을 때 시국이 매우 어려워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고 졸업할 무렵에는 심지어 학생들이 분신자살까지 하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암울하고 괴로워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뉴욕으로 간 거죠. 아직도 뉴욕에 간 첫 날 기억이 납니다. 맨해튼에서 친구 차를 타고 저녁이 어스름할 때 브루클린 학교 근처에 도착했는데 거리의 집 하나가 불에 타고 있고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미국은 다른 세계이고 안정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역시 사회적 문제로 어둡고 출구가 보이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냄새 나고 지저분한 브루클린 거리를 걸으면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 매일 걸던 거리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맨해튼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같이 우뚝 서있는 마천루를 보면서 감탄해 하지만, 저는 오히려 사람들의 손때가 묻고 허물어진 건물들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낡고 버려진 건물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빌 게이츠도 사람들의 손때가 묻고 허물어진 건물에 깃든 의미를 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