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진실외면 보도, 민주주의 발전 불가능”
PD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권력형’ 언론 꼬집어
2008-09-01 최봉석 기자
[매일일보닷컴]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또 다시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8월 3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 ‘권력형’ 언론들의 ‘무책임한’ 보도태도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쏟아냈다.먼저 노 대통령은 “PD연합회가 출범한 87년은 제 인생에도 큰 전환기였다”며 “PD연합회라는 곳에 우리 한국사회의 희망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축하의 말문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987년 대우조선사건 때 최루탄으로 사망한 이석규씨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 구속되어, 같은 해 11월 변호사 업무 정치 처분을 받은 바 있다.노 대통령은 이어 “(언론 영역, 방송 영역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말할 자리가 없었다”면서 “마침 여러분들이 제게 영상 메시지를 하나 보내달라고 해…”라고 말해, 초청에 대한 감사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했다.노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언론과의 갈등관계를 얘기하면서 “(예전에) 제가 반대편 언론과 꾸준히 싸움을 했는데 그때 ‘확 긁어버린다’ ‘확 조져버리겠다’는 협박을 (언론으로부터) 참 많이 당했다”면서 “(당시엔) 우리 편, 저편 대개 언론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노 대통령은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예를 들면서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이 그들을 지지하는 언론으로부터 말년에 버림을 받고 몰락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아, 언론은 권력이다. 그들이 어느 권력에 편드는 권력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이미 권력이구나’ 그렇게 느꼈다”고 말했다.그는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새로운 갈등이 생겼다”면서 “저는 아직 들어보지도 않고 아무 결정도 하지 않았는데 신문을 보면, 새로 들어설 정부가 이런 정책도 결정하고 저런 정책도 결정했다는 식으로 계속 나왔다. 그런데 정책을 결정한 것만 아니라 그 정책에 대한 비판기사까지 따라 나왔다”며 취임 초기 당시 언론들의 ‘오버’ 이른바 노무현 죽이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노 대통령은 한 예로 “인수위에 있는 사람 가운데 공직경험이 없는 사람은 잘 모르니까 묻는 대로 그냥 한마디 해버리면 그날 대문짝하게 나왔다”면서 “특히 문서까지 사라져 버렸다. 우리 나름대로 기획 문서인데 도둑맞았다. 그래서 정부 조직의 기능을 보호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그는 “참여정부가 처음 시작한 것이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위 특권과 유착의 구조가 제게 큰 과제였다”면서 “그래서 검찰, 국정원, 국세청, 경찰 전부 각기 자기 일들을 하게하고 그들의 특별한 도움, 말하자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체의 도움을 내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이어 “그 다음은 언론 차례”라고 강조하며, “(언론이) 인사에 대해서도 발언할 만큼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언론들이 사실은 상당히 막강한 특권들을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서 (내가) 기자실을 폐지하는 등 (특권의) 근거가 되는 제도들 몇 가지를 끊어버렸다”며 “그 때부터 참여정부는 언론을 탄압하는 정부가 됐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저도 주장이 있다”면서 “그런데 우리 신문과 방송들은 (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전혀 쓰지도 않는다. 노무현이 하고 싶은 얘기도 실어줘야 될 것 아니냐”며 사회의 공론장이 되지 못하고 있는 언론들의 ‘편들기’ 보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노 대통령은 “언론이 공론의 장에 모두를 올려놓고 공정하게 뛰게 해줘야 한다. 그런데 (언론들이) 전혀 안한다. 그들의 사유물이다. 그래서 제가 어디 가서라도 이 말을 해야겠는데 말할 데가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뒤 “이 말이 보도가 될까요”라고 농담을 던져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노 대통령은 이날 축하 연설을 통해 언론의 기능과 수준은 나라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그는 “‘나라의 미래가 있는가’는 언론과 관련된 문제”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합의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다”면서 △정확한 사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것 △반드시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할 것 △공정하게 토론의 기회를 줄 것 등을 예로 드는 등 정확하고 공정한 정론의 장 없인 미래가 없음을 역설했다.노 대통령은 “저는 소신대로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소위 개혁을 하려고 했고, 서로 공생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니까 옛날에는 편을 갈라서 싸우던 언론이 저한테 대해서는 전체가 다 적이 돼버렸다”면서 “그게 지금 이 싸움(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논란)이다”고 강조했다.노 대통령은 “제가 (국민에게) 말해주고 싶은데 제 말이 (언론을 통해) 전달이 안된다”면서“그래서 저희도 가지고 있는 매체가 있다. <국정브리핑>, <청와대브리핑> 등은 이전에 없던 무기다. 그나마 그거라도 있으니까 마구 거짓말 쓰는 사람이 얼마나 가슴 찔리겠느냐”고 꼬집었다.노 대통령은 “이 복잡한 인과관계를 누가 이해할 것인가. 저는 언론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정책을 잘 선전해 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항상 균형 있게 얘기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노 대통령은 “오늘 제가 이렇게 복잡한 말씀을 드렸는데 이 복잡한 얘기는, 기자들은 쓸 수가 없을 것”이라며 “복잡한 인과관계라든지 이런 것들을 기자들은 쓸 수가 없다. 그야말로 PD라야 이 긴 얘기를 담아 낼 수 있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이어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가 하는 과제는 여러분의 손에 크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오늘도 많은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지만 이 수준을 높이 끌어올리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라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특히 “저에게도 권력이 있다. 권력이라는 것은 행세하는 것만이 권력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루어 나가는 영향력과 힘, 그것이 권력”이라며 “지금 전 언론사들이 무슨 성명내고 국제언론인협회(IPI)까지 동원하고 난리를 부리는데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 제 임기까지 가는데 아무 지장 없을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두 번째 박수를 받기도 했다.노무현 대통령은 연설 마지막까지 진실을 외면하는 중계방송식 보도 태도로는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이 후보에 대한 언론의 ‘편파적’ 보도태도를 의식한 듯, “무슨 의혹이 있다 그러는데 ‘카더라’만 방송했지 서로 싸우고 있는 진실이 어느 것인지는 아마 역량이 없어 못 들어가 보는 모양인데, 추구하지를 않는다”면서 “대개 일부 언론들은 빨리 덮어라 덮어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그는 “저는 일개 공기업 사장 한사람 하는데도 옛날에 음주운전 했다고 자르고 뭐 했다고 자르고, 안 자르고는 견딜 방법이 없어서 잘랐다”고 강조한 뒤, “음주운전 하나만 있어도, 옛날에 부동산 상가 하나만 있어도 그리고 무슨 위장전입 한 건만 있어도 도저히 장관이 안됐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요즘 언론들은 팔짱끼고 앉아있다. 이런 수준을 우리가 넘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민주주의에 못간다”고 언론들의 보도태도를 질타했다.노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저는 여기 와서 여러분께 간곡히 제가 희망을 건다는 말씀을 드린다. 잘 부탁한다”면서 “저를 위해서가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20년 전 여러분들이 부끄러움을 가지고, 사명감을 가지고 뭉쳤었을 때 그때 심정으로 다시 돌아가 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