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남혐·여혐 시대 유감

2018-08-09     송병형 기자

‘한남충’이니 ‘김치녀’니 하는 말이 유행하더니 급기야 노골적인 성별 혐오의 시대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최근 조사(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7월말 발표)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8명은 최근 사회 속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느낀다고 한다.

개인 입장에서는 젊은 시절 남녀 관계에서 상처받은 경험들이 특정 성향의 남성이나 여성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성찰과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조사에서도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1-20대 층에서 심각성을 더 강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보였다고 한다.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젊은 세대 주도로 상대성에 대한 혐오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 결국 치유의 과정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20대들에 의해 성별 혐오현상이 확대 생산되는 셈이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 상처의 치유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 있어 감상을 권하고 싶다. 작가 조나라의 남녀 시리즈 연작이다. 그의 작품은 두 남녀가 하나의 결합체처럼 얽혀 있는 형상이라 언뜻 보면 관능적 에로티시즘으로 해석하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작가는 바늘과 실을 사용한다. 캔버스의 앞뒷면을 종횡하듯 어지럽게 수놓아진 바느질의 흔적들은 인간관계에서 마주하는 내면성, 다면성, 이면성, 상처, 감정, 흔적 등을 표현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사용되는 실은 단순히 실이 가지는 재료적 사용을 넘어 관계와 관계를 꿰매어 하나로 엮어내는 일련의 결합 과정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작품이 만들어지는 작업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원하는 이미지를 드로잉을 먼저 해본 다음 그 중 마음에 드는 스케치를 본 작업으로 옮긴다. 옮긴 밑 작업 위에 바느질로 인물들과 형상을 드러내고 뭉개면서 앞과 뒤를 수 천 번, 수 만 번을 교차시킨다. 모세 혈관, 근육 세포와 같이 켜켜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실들은 주로 끊어내어 정리되기보다는 흘러내리는 물감처럼 천 위를 벗어나 화면 아래로 늘어져 내린다. 실이 얽히고설켜 중첩될수록 구체적 형상은 조금씩 사라지고 추상적 이미지로 바뀌어 가는데 작업 과정에서 작가는 일종의 치유 과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실은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을 결합시킬 때 사용되어왔다. 상처를 봉합 때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작업에서 인간의 살(표피)를 꿰매는 행위는 본인 스스로에게 치유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조나라 작업노트 중에서)

상처를 받지 않고 살기는 불가능하다. 남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수성 예민한 10대나 20대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그 상처를 일반화된 분노로 표출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