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재도약 시동거나?

현대車 정 회장 항소심 집행유예… 부당내부거래 과징금 631억

2007-09-06     최봉석 기자

10년 만에 無분규 더해 대외이미지 회복…경재계 “환영” 이구동성
개혁연대 “돈으로 산 집행유예, 돈 앞에 무릎 꿇은 사법정의” 비난
민주노동당 “국민 우롱하는 재벌 일가에 추상같은 판결 필요” 논평

[매일일보닷컴] 현대차그룹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정몽구 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로 정 회장의 경영활동이 사실상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정 회장의 ‘보석 상태’에서 글로벌경영에 큰 제약을 받아왔다고 항변해왔다.

이처럼 정 회장의 경영활동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정 회장 특유의 ‘현장 경영’이 더욱 가속도를 붙는 등 그룹의 각종 사업에 있어 커다란 추동력을 얻을 것으로 기업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물론 여수엑스포 유치위원회 명예위원장인 정 회장의 엑스포 유치활동도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현대차는 특히 ‘10년 만에’ 무분규 노사교섭까지 이끌어내 ‘겹경사’를 누리는 등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결국 솜방망이 판결이 내려졌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은 지나친 봐주기”라는 부정적 시각을 보내고 있어 판결에 따른 새로운 갈등이 예상된다.

◇ 집유…‘사회공헌’ 이행명령 =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항소심 공판에서 ‘오매불망’ 외치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0부(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6일 비자금을 조성해 1천억 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천억 원대의 손해를 입힌 협의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정 회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집행유예 선고 이유에 대해 “과거 기업 부외자금 조성의 관행이 존재했고 비자금 중 개인적 용도로 사용된 부분이 적은 점, 범행 후 투명경영을 위해 노력한 점, 범행에 관여한 정도가 약하고 피해액을 대부분 회복한 점 등에 비춰 원심의 양형이 지나치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날 정 회장에게 사회봉사 명령도 함께 내렸다. △사회공헌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고 △준법 경영을 주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들을 상대로 강연 및 일간지 기고 등이 그 내용이다. 정 회장은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올 11월까지 1조 원대에 이르는 사회공헌자금 이용계획을 발표하겠다고 공헌한 상태였다.

법원의 이 같은 사회봉사 명령과 관련해 법조계 안팎에선 ▲정 회장이 국내 대표 그룹의 총수인데다 만 69세의 고령인 점 ▲봉사활동이 사회에 미칠 영향, 실질적 효과 등을 두루 감안, ‘고심 끝에’ 전례 없는 형태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계열사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현대우주항공 유상증자 과정의 배임, 현대강관 유상증자 과정의 배임, 계열사 채권거래 및 본텍 유상증자 과정의 배임 등 공소사실 4가지는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은 당초 지난 6월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정 회장의 혐의사실에 대한 입증이 충분한데도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 형량은 너무 가볍다”며 1심과 같은 징역 6년을 구형한 바 있다.

한편 검찰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 중앙수사부 한 관계자는 이번 재판에 대해 상고하는 것이 적정한지 여부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글로벌 경영 다시 시동 = 그동안 보석상태 신분으로 경영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정 회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음에 따라 경영활동이 사실상 자유로워진 상태다. 정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현장 경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고는 생산라인에서부터 최고 의사결정까지 경영과 관련한 모든 분야가 원활히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기업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000년 자동차 전문그룹을 출범시킨 후 줄기차게 추진해온 현장경영과 품질경영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오는 19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회의에 참석해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의 상생방안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며, 추석 연휴 이후에는 해외 현장경영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직접 점검하는 동시에 세계박람회 유치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내부혁신 작업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윤리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추진한 내부혁신을 기반으로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현대차그룹, 재계 “안도” “환영” = 이번 선고는 일단 안팎의 잇단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 현대차그룹의 대외신뢰도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됐다는 게 기업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생산차의 57~70%를 수출하는 현대차와 기아차로선 대외신인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의 실형선고는 현대차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그동안 시장회복에 어려움을 줬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음에 따라 그룹의 대외신뢰도는 다시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초 실형까지 가능하다는 소식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던 현대차그룹 직원들도 이구동성으로 “총수의 공백으로 인한 경영위기는 피하게 됐다”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재계는 하나같이 환영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전경련은 “법원의 판결이 현대차 그룹의 글로벌경영과 우리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논평을 통해 “앞으로 현대차 그룹은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우리 경제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대한상의는 논평에서 “이번 판결은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그룹이 과거를 반성하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본다”면서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세계 초일류기업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국민들로부터도 존경받는 기업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무역협회 또한 “자동차산업이 수출, 고용 등 우리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EXPO유치 일정을 감안할 때 매우 잘된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 “재벌 봐주기?” 정치권 일각 ‘반발’ =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그러나 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의 재벌 오너 일가에 대한 봐주기식 판결’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식 판결이라는 것.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 일가의 경우, 286억 원의 횡령과 2천8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질렀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상태. 두산 측은 재판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박용성 전 회장과 일가는 집행유예 판결이 내리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경영일선 복귀한 상태.

민주노동당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이날 ‘정몽구 회장에 관용 베풀면 안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법원은 재벌 오너 일가에 관대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선근 본부장은 “법원은 재벌의 전횡을 막고 경제 질서를 회복하는 마지막 보루”라며 “추상같은 판결로 주주와 임직원, 국민을 우롱하는 재벌 일가에 법원이 추상같은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항소심 법원의 이번 판결이 지배주주나 전문경영인의 범죄행위에 대해 징벌적 효과가 거의 없는 집행유예 선고를 되풀이함으로써 결국 ‘반기업적ㆍ반시장적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사법적 규율 기능을 사실상 방기하는 기존의 관행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 “법원이 판결문에서 어떠한 수사(修辭)를 동원해 합리화했든 간에, 이번 집행유예 선고는 실제로는 정몽구 회장의 재력으로 이루어진 것에 다름 아니”라며 “앞으로 법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요약되는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항변할 것인지 스스로 답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누리꾼들도 반발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판결”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대다수 누리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형평성 논란도 ‘모락모락’ = 경제개혁연대는 특히 이번 선고와 관련해 법원 판결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개혁연대는 “지난 7월 20일 농협중앙회 사옥 매각과 관련해 현대자동차로부터 3억 원을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정대근 농협회장의 경우와도 비교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며 “이는  이번 집행유예 선고의 또 다른 문제점”이라고 주장했다.

개혁연대는 “현대자동차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농협 정대근 회장은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그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현대자동차 김동진 부회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양형의 불균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이는 정몽구 회장에 대해 무리하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려다보니 전문경영인인 김동진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이는 이른바 ‘전문경영인 항변’에 의한 집행유예 선고의 전형적인 예”라고 말했다.

이들은 결국 “이번 항소심 판결은 재벌 총수일가와 전문경영인의 불법행위에 대해 한국 사회의 형사법적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하며, “따라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형사 규율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감독당국의 행정 규율, 나아가 피해당사자에 의한 민사적 규율이 더욱 엄격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현대차, 남은 과제는 뭔가 = 현대차그룹은 법원이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경영위기를 피하게 됐다”며 안도하는 표정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당내부거래 혐의로 63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데다 국세청이 지난 4월에 실시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여전히 부담감을 안고 있는 상태다.

특히 세무조사 결과에 따라 비자금 수사에서 포착된 탈세 금액과 편법 증여 부분에 대해 거액의 세금추징을 당할 수 있어 현대차 그룹의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라는 게 기업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이와 관련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지난 2006년 4월 11일 참여연대가 정몽구 회장 및 정의선 사장 등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의 전ㆍ현직 대표이사 5명을 특경가법상 배임혐의로 고발한 사안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이와 함께 ‘현대 비자금 사태’ 이후 1년 반 동안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1조원대의 사회공헌 방안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대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대해서는 즉각 대응을 피한 채 제반사항을 면밀히 검토해 법적 대응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는 등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