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의 ‘이유 있는’ 비공개

신한은행 ‘장막경영’은 업계 1위 ‘국민은행 앞지르기’의 발판이다?

2008-09-07     류세나 기자

신한은행, 월례조회 비공개 전환…“은행 내부경영 당부하는 자리…공개 못해”
신한銀, 상반기 순이익 국민銀 앞서…전문가 “신한지주 전망 밝다”
일각 “신한銀, 지주사 전환?행장 선임 등 골머리 썩는 국민銀 제치기 노린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은행업계의 연막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4월 박해춘 행장 취임 이후 우리은행이 월례회의를 비공개에 부치더니 이번엔 신한은행 차례다. 사실상 월례조회는 은행 경영방침을 전달하는 내부적인 행사지만 그동안 시중은행들의 월례조회사는 은행의 입장을 외부에 알리는 ‘언로’ 역할로 이용돼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한은행의 월례회의 비공개 결정을 두고 “은행업계 1위인 국민은행 앞지르기에 나선 게 아니냐”며 “본격적인 공격태세에 나섰다”고 분석하고 있다.

은행권 줄줄이 ‘장막 경영’ 돌입

한때 시중은행장들 사이에서 ‘조회사 경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행했던 시중은행 월례조회가 사라지거나 비공개로 전환되고 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지난 3일 이달부터 사내 월례조회를 비공개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은행장이 내부 직원들에게 은행경영과 관련한 설명과 당부를 하는 자리인 만큼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황영기 행장 시절 공격적인 월례조회사로 유명했던 우리은행도 지난 4월 박해춘 행장 취임 이후 월례조회사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국민은행도 지난 2월부터 월례조회를 폐지하고 분기조회로 전환했다.
시중은행들이 ‘조회사 경영’을 포기한 것은 은행의 현안이나 경영계획 등 내부사정을 외부에 공개해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수장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월례조회 공개는 무한경쟁 환경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장의 월례조회사가 경쟁 은행을 자극하고, 언론을 통해 은행장을 비교하는 척도로 활용되면서 은행장들이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됐다”면서 “특히 은행장의 의도와 달리 대주주, 금융당국 등의 갈등을 촉발하는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빅뱅크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명운이 걸린 중대한 시점에 최대한 노출을 막아가며 생존 전략을 짜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측은 외부의 반응들과 달리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월례조회의 본 뜻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라며 “다른 뜻은 없다”고 못 박았다.

신한은행, 국민은행을 잡아라?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민은행이 신임은행장 선임을 앞두고 노조와 행추위 또 강정원 행장 사이의 분란으로 내부가 혼란스럽고, 지주사 전환을 둘러싼 잡음이 많은 틈을 타 신한은행이 국민은행을 앞지르려는 심산을 갖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6년간‘국내 최대 은행’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온 국민은행은 턱밑까지 쫓아온 산한은행, 우리은행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고사해왔던 지주사 체제를 선택한 것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부 금융권 관계자들은 “신한은행이 혼란스러운 국민은행을 겨냥한 강력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며 신한은행 공격론을 내세우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공보팀 강현우 차장은 “국제적인 영향력과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스탠다드 뱅크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통합신한카드로 인한 전산 프로세스 업그레이드 등 내부적인 시스템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전했다.

흔들리는(?) 국민은행, 뒤쫓는 신한은행

이인호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지난 3일 창립 6주년을 맞은 기념사에서 “외부 전문가들은 신한그룹이 향후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가장 잘 돼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며 “이제는 신한그룹이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금융권 애널리스트들은 “신한지주는 사업다각화가 잘 돼 있어 전망이 밝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상태로는 사업 모델을 가장 잘 짜 놓은 신한지주에 경쟁력이 있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나태내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최대 카드사인 LG카드를 인수함으로써 자회사 포트폴리오 구성이 짜임새가 있다는 것이 후한 점수를 받은 요인.


이에 대해 신한금융지주 강 차장은 “타사는 은행 위주로 지주체계가 잡혀 있다면 우리는 금융, 비금융 등 골고루 분포돼 있어 금융지주사 중 사업 포트폴리오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업계가 발표한 올 상반기 순이익 자료에 따르면 업계 1위인 국민은행은 순이익 1조4천188억원에 그쳐 1조5천378억원의 신한은행에 선두자리를 내줬다. 우리은행 역시 1조3천360억원을 달성해 1천억원 이하로 격차를 줄이며 국민은행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홍보팀 유기영 과장은 “격차는 좁혀졌지만 여전히 은행업 1위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상반기 순이익이 신한은행에 밀린 것은 법인세 추가 납부와 관련된 일시적인 비용이 늘어난 것 때문”이라며 “일시적인 요인을 갖고 업계 1위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도 국민은행의 독주체제는 무너졌다. 신한은행, 우리은행의 총자산은 6월 말 기준 각각 198조7천020억원, 195조8천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은행 220조원5천억원과의 격차는 20조원대까지 줄어들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예금, 대출 등 각종 영업 실적에서 아직은 국민은행의 선두를 부인할 수 없지만, 신한, 우리은행의 추격 속도를 감안할 때 향후 리딩뱅크 고수에 대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