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신정아 스캔들, 재계로 확산되나

해당 기업들 “신정아와 무관해요~”…해명 진땀, 이미지 실추 우려 전전긍긍

2007-09-14     최봉석 기자

신정아 파문에 휩싸인 경제계…‘신정아 쓰나미’ 재계 쑥대밭
발 저리는 후원기업들…성곡미술관 전시 때마다 거액 ‘펑펑’
신정아 후원 포스코 대우건설 산업은행 하나은행 검찰 조사

[매일일보닷컴] 변양균(58)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학력위조’ 파문에 휩싸인 신정아(35) 전 동국대 교수의 스캔들로 인한 후폭풍이 정치권과 문화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그 파장이 경제계로 확산될 조짐이다.

도미한 신정아씨가 성곡미술관 재직시(2002년 4월~2007년 7월) 미술관을 실질적으로 맡아 운영했고, 독단적으로 미술관의 자금까지 관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씨가 대기업들의 후원을 유치하는 과정 중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간의 관심사 중 한 축은 신씨가 미술 전시회를 열 때마다 기업과 은행들로부터 어떻게 거액의 협찬을 받아냈는지에 집중돼 있다. 일각에서는 ‘신씨가 최고경영자와 직거래했을 것’이라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어,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어떤 ‘입김’을 통해 신씨가 해당 기업들을 좌지우지 했는지에 관심 또한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 등에 따라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신씨가 근무했던 성곡미술관이 기업체 후원을 받는 과정에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 실장이 외압을 넣었고, 상당수 기업들은 청와대의 눈치 때문에 이를 수용했다는 의혹 정도로 정리되고 있다.미술계 한 관계자는 “신씨는 일반 화랑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었고 대기업과 공기업이 후원하는 대형 미술관 전시회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씨가 변 전 실장을 백그라운드로 이용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대형 그림을 팔거나 빌려주면서 돈을 벌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검찰에 따르면 신씨가 지난 4년간 대기업에서 끌어들인 후원금액은 총 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 12일부터 해당 대기업 실무 임원 등 관계자들을 소환, 후원 과정에서 변 전 실장으로부터의 외압 유무를 추궁 중이다. 13일 오후까지 성곡미술관 후원과 관련, 검찰에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된 기업과 금융기관은 대우건설, 포스코, 산업은행, 하나은행 등 총 4곳. 검찰 측은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등으로 있으면서 기업들이 미술관을 후원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해당 기업들은 일단 “정상적인 메세나(기업의 예술문화 지원) 활동”이라며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변 전 실장의 개입이 속속 확인되면서 ‘권력형 메세나’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터라 해당 기업들은 후원과정에 대한 세간의 오해 속에서 잘못된 보도가 전달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성곡미술관만 지원…심란한 산업은행

신정아 파문으로 가장 심란한 곳은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이 문화ㆍ예술 행사 후원 가운데 미술 분야에서는 유독 신정아씨가 근무했던 성곡미술관에만 지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지난 13일 공개한 산업은행의 ‘연도별 문화예술 부문 협찬활동 내역’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0개 문화ㆍ예술 행사에 후원 및 협찬했으며, 이 가운데 미술분야 후원은 3건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미술분야 후원은 △존 버닝햄-나의 그림책 이야기(2006년 7월5일, 지원액 2천만원) △김세중 조각상 20주년 기념전(2006년 9월6일, 지원액 1천만원) △알렝 플레셔 초대전(2006년 11월7일, 지원액 2천만원) 등 모두 신씨가 학예연구실장으로 근무하던 성곡미술관 주최 행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즉 지난해 총 3건에 걸쳐 5천만원을 후원한 셈이다. 올해 들어선 총 2천만원을 후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산업은행은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2005년 사회공헌팀을 신설해 문화마케팅 차원에서 공연이나 전시를 후원해왔다”며 “성곡미술관에만 후원하는 것은 성곡미술관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 순수하게 기업 홍보 효과를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 등 윗선의 외압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산은 측 또 다른 관계자는 “재정이 어려운 미술관을 중점 지원하기로 하다 보니 다른 재벌계 미술관과 달리 성곡이 재정이 어렵다고 해 지원한 것”이라며 “전체 문화예술 지원금 중 성곡에 지원한 금액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성곡미술관에 가장 집중적으로 후원한 산은 김창록 총재는 우연찮게 변 전 실장과 부산고 21회 동기다. 신정아씨가 변 전 실장에게 부탁을 했을 경우 변 전 실장 역시 친분이 두터운 김 총재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했을 개연성이 높다. 산은은 이에 대해 “총재가 후원을 지시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산은 측은 “1천만~2천만원 정도의 후원은 따로 총재에게 보고하지 않고 홍보실 차원에서 처리한다”고 반박했다. 총재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산은 김창록 총재는 신정아 파문과 관련해 자신의 이름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산은은 지난 14일 ‘2005년 이후 미술품을 집중 구입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미술품을 구입한 것은 맞지만 외부의 압력이나 개인적인 친분에 의해 예술품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고 공식 해명했다.

금융권 후원 이례적으로 많아

신씨가 성곡미술관 재직 중 마련한 기획전시를 유심히 살펴보면 산은을 포함한 금융권의 후원이 이례적으로 많았는데 ‘금융권 랭킹 상위업체’인 하나은행과 국민은행, 신한은행도 신씨를 후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들 역시 한결같이 변 전 실장의 ‘외압설’과 신정아씨 ‘특혜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계와 미술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술 기획전시의 경우 마케팅 효과가 크지 않아 은행들의 경우 미술 홍보는 꺼린다는 것.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수천만원 이상 후원은 드물 뿐더러, 3천만원 이상은 ‘외압’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신정아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사진작가 ‘알랭 플레셔 전’을 진행했는데 하나은행은 여기에 1천만원을 지원했다. 연간 최대 100억원으로 미술품을 구입하는 이 은행은 또 지난 3월 은행의 미술품 구매 자문위원으로 신씨를 위촉하고 월 100만원의 자문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신씨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하나은행 역시 김종열 행장이 변 전 실장과 부산고 동문이다. 김 행장은 변 전 실장의 2년 후배다. 특혜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하나금융그룹 김승유 회장은 변 전 실장과 고려대 동문이다.그러나 하나은행도 산은처럼 “금융권은 물론, 재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 투자를 하고 있고 성곡 이외에 다른 미술관에도 후원을 많이 하고 있다”며 “성곡미술관 후원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특혜의혹을 부인 중이다. 이 은행은 신씨의 학력 위조 사건이 불거진 이후 자문료 지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성곡미술관의 주거래은행으로 알려진 국민은행도 구설수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 국민은행은 올해 3~7월 성곡미술관의 ‘윌리엄 웨그먼 전’을 후원했다. 국민은행 측은 “(후원과 관련해)국민은행 해당 지점으로부터 수차례 요구가 있었지만 미루다가 한번 후원해 줬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 은행 한 관계자는 “한 해 예술 후원 예산 30억원 정도에서 미술은 2억원 정도”라며 “성곡미술관 후원은 그 일환”이라고 밝혔다.‘알랭 플레셔전’을 후원한 신한은행은 “한ㆍ프랑스 수교 행사였고 프랑스계인 BNP파리바와 사업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후원하게 됐다”고 말했다.대기업쪽으로 눈을 돌리면, 대우건설은 한마디로 ‘초비상’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고 있는 대기업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성곡미술관에 지원한 곳이 바로 대우건설이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박세흠 전 사장(현 대한주택공사 사장) 역시 변 전 실장과 부산고 21회 동기. 대우 건설 역시 변 전 실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기업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대우건설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대우건설은 박 전 사장이 재직 중이던 지난 2004~2006년 총 10차례에 걸쳐 2억 9천만원을 성곡미술관 후원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은행이 7천만원을 성곡미술관에 쏟아 부은 것에 비하면 약 3배에 가깝다. 대우건설 측은 “연간 기업 문화활동 지원 예산이 20억원에 달한다”며 “지난 3년간 매년 1억원 정도를 성곡미술관에 후원한 것은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워크아웃 대우건설, 3억원 거액 후원 왜?

그러나 대우건설이 2005~2006년 당시 워크아웃(기업 구조조정, 2003년 12월 워크아웃 졸업)에 따른 ‘공적자금’을 지원받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신씨의 성곡미술관에 3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후원했다는 점은 ‘신정아 파문’에서 대우건설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신씨는 지난해 대우건설이 금호그룹에 매각되자 “앞으로 대우건설에서 후원금 받기는 다 틀렸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청와대는 이와 관련 “박 사장이 변 전 실장의 부탁을 받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적자금을 받아 운영하던 대우건설 사장이 미술관 후원금으로 거액을 낸 것은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고 전했다.대우건설을 곤란하게 하는 내용은 또 있다. 검찰에 따르면, 독실한 불교신자인 변 전 실장이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대기업이 유명사찰에 시주하도록 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의 조사가 진행 중인데 대우건설이 유명사찰에 거액을 시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측은 이 같은 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성곡미술관 후원에 대해선 “외압은 없었다”고 말했다.그러나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의 다른 임직원은 “같은 미술관에 매년 1억원씩 꾸준히 지원하는 일은 실무자급에서 품의를 올려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해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지적이다.

신정아 파문에 포스코와 기아자동차 그리고 삼성전자도 곤혹스런 표정이다. 이들 기업들은 산업은행이나 대우건설과 달리, 변 전 실장과 별다른 개인적 연고가 없는 상황에서 후원한 까닭에 심란하기 그지없다.
포스코는 ‘알랭 플레셔 전’에 1억원을 후원했다. 신정아는 이 때문에 미술관 내부에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씨는 지난해 9월 포스코 홍보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협찬을 정식으로 요청, 프랑스문화원에 갔던 포스코 관계자들이 신씨를 직접 만났다. 포스코 측은 이와 관련 “연간 수십 건의 후원 행사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해 초 프랑스 대사가 이구택 회장을 방문, 한불수교 120주년 행사와 관련해 후원을 요청했고 성곡미술관 행사는 프랑스문화원 주관 행사 50여개 중 하나였다”며 “프랑스 대사의 요청도 있었던 터라 후원을 했던 것일 뿐 정권 실세의 외압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성곡미술관 측이 사진전을 연다며 2억원의 협찬을 요구해와 1억원을 협찬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어디까지나 메세나 활동의 하나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위해 한국메세나협회에 가입, 문화ㆍ예술분야에 지원했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기업들 “메세나 활동의 하나” 이구동성

기아자동차도 ‘알랭 플레셔젼’을 후원했다. 또 지난해 7월 신정아씨가 기획한 ‘존 버닝햄 40주년 기념전’ 행사에도 기아차는 협찬했다. 기아차는 ‘존 버닝햄 기념전’ 때 티켓구매 1천만원, 티켓 광고에 따른 1천만원 등 모두 2천만원을 지원했다. 알랭 플레셔 전에는 얼마를 후원했는지 아직까지 파악이 안된 상태.이와 관련 기아차 관계자는 “존 버닝행 40주년 기념전은 문화 마케팅의 일환으로 진행한 것이고, 알랭 플레셔전은 주한 프랑스대사관측이 협찬을 요청한 것을 검토 끝에 후원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또 “현대차는 후원한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압력이나 청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삼성전자도 한 차례 전시회 후원을 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월 신씨가 담당 과장에서 전화를 걸어 협찬을 요청해 1억원을 협찬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협찬요청은) 보통 미술관장이나 큐레이터가 요청한다”며 “이 같은 요청은 수십 건에 이른다”고 말해 압력이나 청탁은 없었음을 강조했다.LG 등 한차례 ‘단발성 후원’을 한 다른 후원 기업들도 신정아 사태로 인한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몰라 예의주시하고 있다. LG측은 “다른 후원 때와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차원에서 정상적인 절차와 검토에 따라 지원했을 뿐 지원 청탁이나 압력을 받은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신정아씨를 지원했던 기업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신씨와 무관하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