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 등 조선 회화 2점 보물 지정
2019-08-21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은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와 '평양성도 병풍' 등 조선 시대 회화 2점에 대해 보물 지정했다.보물 제1996호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浦港 寶鏡寺 毘盧遮那佛圖)는 1742년(영조 18년) 조선 후기 경상도에서 활동한 세 명의 불화승(佛畵僧)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그린 작품이다. 높이 3m에 가까운 대형 삼베 바탕에 붉은 물감을 칠한 뒤 인물과 의복 등을 흰색 물감으로 그린 불화이다.그림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둥글게 에워싼 원형 구도로서, 이렇듯 비로자나불을 주존불(主尊佛)로 배치한 불화 중에는 이 작품이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붉은 바탕과 백색의 섬세한 필선과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화려한 장식 문양 등이 어우러져 시각적인 오묘함과 조화로움이 돋보인다.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뚜렷해 조선 후기 불화 연구의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보물 제1997호 평양성도 병풍(平壤城圖 屛風)은 조선 후기 화려했던 평양의 모습을 가로 4m에 이르는 장대한 8폭 화면에 집약적으로 표현한 '전도식(全圖式) 읍성도(邑城圖)'다. 참고로, 전도식 읍성도 중에서는 전주를 그린 '완산부지도'가 보물 제1876호로 지정된 바 있다.전도식(全圖式) 읍성도(邑城圖)는 읍(邑)이나 성(城)안에 있는 마을을 내려 보듯 펼친 형식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평양은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에 대비되어 '서경(西京)'으로 불렸을 만큼 한강 이북의 지리적 요충지로서 중요하게 여겨졌을 뿐 아니라, 자원이 풍부하고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경제‧문화적으로 번영한 도시였다. 이러한 이유로 평양은 조선 시대 읍성도에 가장 자주 등장했다. 고려 시대부터 한양은 남경(合肥), 경주는 동경(東京), 서경은 평양을 의미했다.'평양성도 병풍'은 도시의 전경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배치하고 화면 윗부분에는 멀리 보이는 북쪽의 능선을, 화면 아래에는 평양성을 에워싸듯 흐르는 대동강과 그 주변의 섬인 양각도(羊角島)와 능라도(綾羅島) 등 강변의 풍경을 묘사했다.이 작품에는 18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90년 중건된 대동강 주변의 애련당(愛蓮堂)과 장대(將臺)가 묘사됐고, 19세기에 유행한 밝고 짙은 청색을 혼용하지 않고 녹색 위주로 처리한 방식, 명암이 거의 없는 건물 묘사와 인물이 표현되지 않은 예스러운 화법(畵法) 등을 근거로 제작 시기를 18세기 후반기까지 올려볼 수 있어 현존하는 평양성도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으로 추정된다.애련당(愛蓮堂)은 평양 대동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정자, 중건 이후 일본으로 밀반출되어 소실되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장대(將臺)는 장수가 올라서서 군사를 지휘하도록, 성, 보, 둔, 수 따위의 높은 곳에 돌로 쌓은 대(臺)를 말한다.평양성도 병풍은 작품의 규모와 제작 시기, 예술적 완성도, 조선 시대 평양에 대한 역사적 위상 반영 등 여러 면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될 뿐 아니라 조선 후기 회화 연구에서도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