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 ‘덫’에 걸린 한나라당 ‘딜레마’
이규용 내정자, 이명박과 똑같이 ‘자녀교육 때문’ 해명…한나라, 논평조차 내놓지 못해
2007-09-18 최봉석 기자
통합신당 “지명 철회”…한나라 ‘벙어리 냉가슴’ 침묵중
이명박 궁지 몰기 위해 알고도 강행 가능성 ‘모락모락’
[매일일보닷컴] 이규용 환경부 장관 내정자의 ‘위장전입’ 문제를 놓고 정치권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18일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규용 내정자와 부인 김모씨는 1993년, 1996년, 2000년 세 차례에 걸쳐 각각 주소지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내정자는 이와 관련 “자녀교육을 위해 부인과 두 아들만 주소지를 옮긴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위장전입을 사실상 시인한 것. 청와대는 그러나 “별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측은 “위장전입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청와대와 지난 5년간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던 한나라당은 청와대 이번 입장을 두둔하고 나서고 있다. 반대로 대통합민주신당은 강하게 반발하며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경우’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일이 정치권에서 일어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나라당이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이규용 환경부 장관 내정자가 3차례에 걸친 ‘위장전입’ 논란에 휩싸였다는 것은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 전력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한나라당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정치권 내에서 ‘위장전입’ 논란의 선두주자(?)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다. 이 후보는 자녀들의 학업을 위한 위장전입 사건에 대해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그 어떤 맞대응조차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조금 유치하게 표현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시비를 걸 수도, 그렇다고 마냥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한나라당은 그동안 청와대의 인사발표 때마다 논평과 성명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코드 인사’에 대한 ‘독설’과 ‘비판’ 등을 개시하며 강하게 반발해왔던 까닭에, 작금의 침묵에 대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특히 최근 ‘정윤재 의혹’ ‘신정아 게이트’ 등과 관련해 청와대를 매일같이 초상집 분위기로 만들고 있는 기세대로라면 이번 문제 역시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청와대를 공격할 법도 하지만, 한나라당은 의외로 조용한 분위기다.청와대의 인사 방침에 한나라당이 사뭇 다른 기류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대통합민주신당 등 정치권 한 켠에서는 청와대에 내정철회를 요구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와 달리 여ㆍ야가 확실히 뒤바뀐 형국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최재성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18일 “이 내정자가 위장전입을 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내정한 것은 옳지 않다”며 내정 철회를 요청했다. 최 원내부대표는 “위장전입을 단 한번이라도 했다면 장관이 될 수 없다고 발언한 대통령이 그런 장관을 내정했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민주신당은 ‘해임건의안을 낼 수도 있다’는 입장까지 밝히고 있다.민주신당, 이명박 겨냥하나
대통합민주신당의 이 같은 입장은 일단 청와대를 겨낭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변양균, 정윤재 사건 등 각종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청와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뜻. 그러나 그 진짜 속내는 자녀 교육문제로 위장전입을 인정했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향한 화살이라는 게 정치권의 한결같은 시각이다. 이명박 후보를 궁지로 몰기 위해 청와대가 알고도 ‘강행’을 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인 셈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민주신당은 이 내정자를 압박하면서 이 후보에 대한 공격을 병행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한나라당은 실제로 이규용 내정자에 대한 위장전입 논란이 정치권에 확산되던 지난 18일을 기준으로 이 내정자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입도 뻥긋 못했다. 이규용 내정자의 위장전입 문제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곧추세우자니 이명박 후보의 ‘발등’을 내리찍는, 다시 말해 그 피해가 결국 한나라당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니 자기 꼬리를 무는 ‘자해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단 한 줄의 논평조차 내놓지 못했던 것.만약 한나라당이 이규용 내정자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피력할 경우,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은 문제가 되지 않고, 청와대의 위장전입은 문제가 된다는,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을 확률이 높은 상황.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 문제를 의식한 듯, “부동산투기 등 악의적인 목적을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면 도덕성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자녀 교육 문제라면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청와대를 옹호하는 발언을 취하기도 했다. 안홍준 한나라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업무의 연속성이나 전문성을 감안하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장관으로서 결정적인 하자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그때그때 다른 한나라당의 ‘이상한’ 논리다.그때그때 다른 한나라당의 논리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처럼 딜레마에 빠진 한나라당의 현실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김형탁 대변인은 논평에서 “세 차례의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대통령이 환경부장관을 내정하였는데 이처럼 큰 잘못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공직자 도덕성 검증 기준에 큰 구멍이 생겼다”고 청와대를 겨냥한 뒤, “대통령 후보도 위장전입, 장관 내정자도 위장전입 서로 따질 일 없어 좋겠다”고 비꼬며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 역시 겨냥했다.민주신당의 날선 공격, 한나라당의 어정쩡한 침묵 속에서 청와대는 이규용 장관 내정자의 위장전입 사실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고수하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자녀 학교를 위한 위장전입은 부동산 취득과 관련이 없어 중대 결격사유가 아니”라며 “지난해 2월 차관승진 때에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임용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상황이 이렇자 한나라당 내에서는 청와대가 다른 정치적 목적 때문에 일부러 이번 인사를 강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조금씩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위장전입 문제를 이슈화해 이 후보를 궁지에 몰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서는 이규용 내정자 문제와 관련해서만큼은 청와대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별도리가 없어 보인다.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나라당이) 청와대를 비난하자니 이 후보의 위장전입이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이 내정자를 두둔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만에 하나 청와대가 이 내정자 지명을 철회하거나 이 내정자 스스로 사퇴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간 양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