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제일銀, 파업 장기화 '생채기' 속출
2012-08-14 안경일 기자
파업이 종결되도 고객이 겪은 불편과 금융·노동계에 남긴 생채기가 아물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지적이다.
◆노조 이탈자 급증…파업 파급력 상실
파업 대열에서 이탈하는 직원이 늘면서 노조의 조직력에 금이 가고 있다. 리차드 힐 SC제일은행장은 지난 12일 "현재까지 파업에 참여했다가 복귀한 노조원은 120여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증시 폭락으로 파업에 참여한 일부 직원이 현업에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업 일수가 늘어나면서 강원도 객지 생활에 피로가 쌓인데다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점도 이탈자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급여 문제의 경우 '무노동 무입금' 원칙에 따라 지난달 22일 급여일에 전월 27일부터 19일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 8월 급여도 오는 15일이 공휴일인 관계로 사실상 지난 12일까지 파업에 참가한 직원은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 SC제일은행은 전월 16일부터 해당월 15일까지를 기준으로 월 급여를 산정하고 있기 때문.
파업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서이동·징계 등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측의 복귀 압력을 더이상 묵인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A 노조원은 "파업 50일째가 되도록 아무런 진척사항이 없어 답답할 뿐"이라며 "공휴일이 껴 있는 이번주 속초 복귀일은 16일인데 동요하는 조합원이 많아 참가율이 저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원에 대한 비난 여론도 파업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B 노조원은 "'평균 8000만원을 받는 고액연봉자들이 고객의 피해는 아랑곳 없이 휴양형 파업을 하고 있다'는 외부 시선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측, 무능한 협상능력 '도마위'…압박전략 반발 키워
파업 사태가 확대될 때까지 '밀어붙이기' 식의 태도를 보인 사측도 질타를 받고 있다. 노조에게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요구하며 압박한 것이 노조의 반발을 키우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김재율 노조위원장은 "합리적이고 수용 가능한 연봉제라면 시행 못할 이유가 없다. 사측은 협상과정에서 노조가 납득할 만한 제시안 없이 연봉제 추진만을 고수하면서 사실상 파업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3번에 걸친 대표자 협상에서 사측이 절충안을 내놓지 못한 것은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독특한 운영체제(이른바 매트릭스 조직)에 있다는 시각이다.
매트릭스 조직이란 자회사별이 아닌 개인금융·기업금융 등 유사 업무별로 개편한 조직 형태로, 계열사의 CEO(법인장)와는 별도로 비즈니스 유닛(BU)장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된다. 그러다 보니 법인장과 BU장 어느 한 쪽의 운신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이에 대해 힐 행장은 "SC제일은행의 성과주의 급여체계 도입은 내가 결정한 것"이라며 성과연봉제 추진이 본사의 피터 샌즈 회장의 뜻이고 행장에게는 권한이 없다는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힐 행장의 리더십과 경영성과에 치명타를 입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은행산업은 공공성이 있어 전산직 등 핵심업무까지 마비시키면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이 온다"며 "고객 및 예금 이탈, 기존 대출의 유지·관리 타격 등 경영진에 대한 실적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파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주 타협 가능성 낮아
SC제일은행은 오는 16일 영업일 기준으로 파업 35일째를 맞는다. 은행권 최장기간 파업 기록은 지난 2004년 한미은행 노조의 14일이다.
노사는 공휴일이 겹친 이번 주에도 이견을 좁히기 위해 협상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극적인 타협이 없는 한 파업은 다음 주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주는 노동계의 쟁점이 '신입행원 초임 원상회복'에 있어 연대 파업에 나서기 어렵고 대표자 교섭일정도 확정된 것이 없다"며 "16일 속초에 다시 모여 파업 장기화에 대한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파업에 의한 은행 경쟁력 약화는 노사 모두의 책임"이라며 "향후 파업이 종료되고 정상영업에 들어가더라도 고객 외면 등의 부작용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