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가을을 기다리며
2019-08-30 송병형 기자
변덕 심한 비구름이 뿌린 폭우가 폭염을 물리쳤다. 서늘해진 날씨에 가을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이다. 올해 유난했던 폭염에 시달린 탓인지 벌써부터 가을이 기다려진다. 가을은 무엇보다 마음을 살찌우는 계절이다. 추사(秋史) 김정희는 “가슴 속에 책 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다. 추사의 경지를 어찌 따르겠냐마는 그래도 가을이 오면 차분히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볼 생각이다. 마침 작가 임수식의 작품이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던 참이다.임수식은 책가도를 주제로 작업해 온 작가다. 책가도란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문방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일상용품을 배치해 입신양명을 기원한 정물화풍의 전통 장식화의 하나이다. 정조대왕은 일이 많아 책을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책가도를 보며 마음을 푼다고 했다고 했으며, 문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임금의 장려에 힘입어 책가도 병풍을 설치하는 것이 양반가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선비가 현학에 정진하고 글공부를 권장하는 당시 풍토에 자신 아들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사진작가 임수식의 책가도는 특별해 보인다. 책장을 부분 촬영해 한지에 잉크젯으로 부분 프린트한 다음 바느질로 이어주면서 마무리하는 작업 과정을 거친다. 바느질을 이용하여 엮는 방법은 작가가 평소 아름답다고 생각해온 조각보를 책가도 작업에 활용한 것이다. 조각조각 모아져서 만들어지는 조각보가 한 권 한 권 모여 책장을 가득 채운 책가도와 통하는 구석이 연상되는데, 한지에 담백하게 스며든 책 종이의 질감과 마치 찢어진 책을 정성스럽게 다시 꿰어 놓은 듯한 바느질 자국은 임수식만의 책가도를 특정 짓는 총체적 스타일이 되었다.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모티브가 삼는 다양한 책장 주인에 따라 책가도의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임수식의 책가도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가 조용히 남겨진 서재에서 그의 고스란히 담긴 삶을 엿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작가는 “책가도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책과 문방구 등을 서가 모양의 격자 구획 안에 배치한 것과 덩어리로 모아 놓은 것이 그것이다. 본인이 책가도 작업을 진행하면서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첫 번째 것으로 여러 책장들을 촬영하는 것이다. 책장은 생김새는 비슷하나 그 주인의 취향과 직업에 따라 그 속에 책들은 너무나 달라서 배열되어 있는 책들만으로도 훌륭한 시각적 요소를 제공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