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신은 민주화”…호남민심 누구에게?

범여권 대선주자 ‘바쁘다 바빠’…호남민심 ‘시큰둥’

2007-09-24     최봉석 기자

[매일일보닷컴] 대선이 87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범여권’으로부터 등을 돌린 호남 민심을 다독이려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로 추석 직전 호남 민심은 이른바 ‘범여’로 결집을 시작하고 있고, 덩달아 범여권 지지율도 상승 추세다.

지난 8일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범여권(민주신당, 민주당, 무소속)의 지지율 합이 31%를 기록했고 이후 17~19일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는 30.4%를 기록하는 등 30%대를 넘어서면서 ‘전략적 선택’에 능한 호남의 지지층이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주자 선두 독주체제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전체 호남 민심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대로 범여권의 대통합이 실패할 경우, 차기 정권을 한나라당에게 뺏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흩어져 있던 호남의 표심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동영 통합신당 경선후보는 지난 17일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통합신당 내 3인 후보(정동영, 손학규, 이해찬)간 선호도, 범여권 후보 적임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의 가상대결 등 모든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호남지역 한 정치권 인사는 “누가 나서도 이명박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왕이면 호남 출신인 정 후보를 내세우는 게 낫지 않느냐는, 차선의 움직임이 이 지역에서 일고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올해 대선에서 범여권이 승리하기 힘들다고 판단, 같은 고향사람이라도 한번 내보자는 심정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통합신당 대선후보 경선 구도가 ‘친노(親盧) 단일화’ 이후 ‘오리무중’의 3파전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호남민심이 정동영이냐, 이해찬이냐, 손학규냐를 ‘확실히’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게 오는 29일로 예정된 광주ㆍ전남 경선에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중간집계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가루 효과’라고 평가절하 중이다. ‘꽃가루 효과’란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승자에게 꽃가루 세례가 쏟아지면서 지지율이 치솟는 현상을 말하는데, 정 후보는 이른바 ‘호남후보 필패론’과 ‘동원경선 논란’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캠프 해체’ ‘장외경선’을 선언하며 컴백한 손학규 후보는 마지막 승부수를 어떻게 던질지 등에 따라 선거판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호남지역에서는 손 후보의 이틀간 칩거 및 잠행 뒤 “당내 경선을 조직도 없이 치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최근 잠행의 역풍이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목소리다.

이해찬 후보를 바라보는 호남 민심의 시선도 ‘회의론’과 ‘현실론’이 교차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계승자라는 점에서 ‘현실론’에 가깝지만, 친노 대선주자라는 평가 측면에서 보자면 ‘회의론’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호남의 곱지 않은 시선이 이 후보로서는 적잖은 부담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후보는 자신들의 호남의 유일한 후보임을 부각시키면서 호남 정서에 연일 호소 중이다. 특히 추석연휴 뒤 곧바로 이어지는 27일 광주 합동토론회와 29일 광주, 전남 지역 투표는 이들이 너도 나도 “호남 정신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이 지역에서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지난 22일 광주에 내려온 정동영 후보는 25일까지 광주, 전남지역에 머물며 이 지역 민심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추석 당일 날인 25일에는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 성묘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광주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담을 계획이다.

정동영 후보는 이와 관련 “호남은 민주 평화 개혁의 뿌리이면서 또 정동영의 뿌리다. 호남은 정동영에게 가족”이라고 강조하며 호남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 후보는 “민주의 성지 광주에서, 평화개혁 세력의 구심점 광주에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려주시길 당부한다”며 “평화협정 시대의 한반도 운영이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할 힘을 실어 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초반 4연전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밀린 뒤 칩거와 잠행을 마치고 경선에 복귀한 손학규 후보는 지난 21일 첫 행선지로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추석연휴 기간 집중 공략을 펴고 있다.

손 후보는 “광주영령들의 뜻을 받들어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경선을 이뤄내겠다”며 “경선 대책본부를 해체키로 한 것이 그 뜻”이라고 말했다.

호남 지역 인사들을 꾸준히 만나고 있는 이해찬 후보는 지난 23일 ‘약무호남 시무국가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광주의 아들’임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 편지에서 “광주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가 후보가 되든 본선에서 질 것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면서 “광주가 싸워보지도 않고 본선 패배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광주시민과 호남인은 박정희의 폭압 속에서도, 전두환의 총칼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분들이고 좌경용공이다 친북좌파다 온갖 음해와 모략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곳이 바로 광주와 호남”이라며 “어느 누가 감히 광주와 전남이 전두환의 후예에게 미리부터 굴복했다는 망발을 늘어놓을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 후보는 이어 “1997년 김대중, 2002 노무현의 승리를 기획하고 만들었던 이해찬이 이제 직접 승리의 공식을 만들겠다”면서 “유신에도 굴하지 않았고 전두환에게도 끝내 승리했듯이 결코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후보에게 정권을 내주지 않겠다”고 자신했다.

이 후보는 특히 “호남이 흔들리면 한국이 흔들리고 호남이 흔들리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며 호남이 흔들리면 한반도 평화가 흔들린다”고 강조한 뒤 “호남이 체념하면 대한민국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관건은 ‘호남 민심’이 29일 민주신당 세 후보 각각에 대해 어떤 제스처를 취하느냐는 것.

제주, 울산, 강원, 충북 등 4개 지역 투표 참여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흥행 참패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호남 지역 민심 또한 “대통합민주신당은 개통합민주신당”이라고 비난하는 등 민주신당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신당의 경선초반 흥행부진이 호남을 중심으로 어떤 포물선을 그려낼 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각 후보 진영이 ‘2002 again 광주’를 꿈꾸면서 경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국민적 관심과 흥행을 불러일으키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대선주자들이 ‘바쁘다 바뻐’라고 외치는 것과 달리, 호남 민심은 여전히 ‘나몰라라~’하고 있는 게 사실.

상황이 이런 까닭에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진영 대통합’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민주당도 ‘텃밭인’ 호남 전역을 누비며 때아닌 지지를 목청높여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호남 민심은 아무래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이 같은 분열양상에 대한 커다란 실망감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 범여권 주요 후보들의 지지도를 모두 합쳐도 이명박 지지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너도 나도 대통령 후보라고 나서고 있지만 오는 12월 이명박 후보와 맞설 수 있는 대선후보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 광주시민은 “추석연휴 직후 광주에서 시작되는 민주신당의 경선이 서울까지 흥행을 이뤄야 하는 게 급선무”라며 “이후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하고 여기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