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부시’ 면담 무산, 美로부터 외면당한 MB
남북정상회담·국정감사 등 맞불 이슈 사라져...‘10월 위기론’ 대두
[매일일보제휴사=폴리뉴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면담이 사실상 무산됐다. 이로인해 야심차게 추진해온 4강 외교는 출발부터 차질을 빚게 됨은 물론 ‘글로벌 리더쉽’ 이미지에도 상처를 입게 됐다.
지난달 27일 한나라당은 오는 15~16일 양일 중 백악관에서 부시대통령을 예방해 한·미 관계와 북핵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2일 주한 미국 대사관 측이 공개적으로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데 이어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도 이날 “그런 면담은 계획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의 대선 정국에 말려드는 데 관심이 없다"고 공식입장을 밝혀, 면담 자체를 일축했다.
이 후보측은 주한 미 대사관과 백악관의 잇단 부인에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이 후보가 4강 외교를 통해 ‘글로벌 리더쉽’으로 대선국면의 최대 분수령이 될 10월 정국을 뚫고 대세론 확산을 꾀했지만 ‘면담 무산’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당초 이 후보측은 면담 성사 발표와 함께 “미국이 이 후보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라고 자평했지만 면담 무산으로 미국의 이 후보와 ‘거리두기’가 가시화 된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백악관이 직접 “한국 대선에 관심 없다”며 차단에 나섬으로써 사실상 이 후보의 친미행보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라 마찬가지. 대선에서 외교적 우군인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경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납북정상회담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외교적 우군인 미국조차도 ‘이명박 거리두기’에 나섬으로써 이 후보의 외교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고, 또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밖에도 야당 대선 후보인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이례적인 만남을 ‘비선’ 조직에만 의존해 확정되지도 않은 면담계획 발표로 스스로 공신력에 먹칠을 하는 등 한나라당의 ‘외교력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더욱이 이러한 면담 소동에 ‘미 대사관’ ‘백악관’이 직접 부인에 나서는 등 국내외로 망신살이 뻗쳤다.
남북정상회담, 국정감사 등 굵직한 이슈에 ‘이명박-부시’ 면담으로 ‘대세론 굳히기’를 기대했지만 면담 불발로 오히려 역풍을 맞으며 10월 정국 시작부터 ‘이명박 호’가 흔들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미 백악관 “한국의 대선 정국에 말려드는 데 관심이 없다"
미 백악관은 2일 부시 대통령과 이명박 후보간 면담 계획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그런 면담은 계획돼 있지 않다(No such meeting is planned)"고 공식 부인했다.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공식 입장표명을 통해 "백악관이 부시 대통령과 이 후보간 면담 요청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대선 정국에 말려드는 데 관심이 없다"고 밝혀, 이 후보와의 면담 자체를 아예 계획하지도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한 미 대사관 맥스 곽 대변인도 이날 "백악관이 부시 대통령과 이 후보 간 면담 요청을 받았으나 그러한 면담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며 "이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 대사관 조셉 윤 정무공사는 이날 오후 임태희 후보비서실장을 만나 이 같은 입장을 설명했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면담은 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보고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미측은 면담 주선 라인이 언론에 공개돼 당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전날(2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부인을 했다고 하지만 아직 일정을 주선했던 백악관 강영우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위원으로부터 연락받은 바 없다”면서 “언론보도에 난 강 위원의 말처럼 면담이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었다.
하지만 3일 박 대변인은 “상황이 좋지 않게 됐다”며 “지난 주 백악관 강 장애위원회 정책위원이 먼저 확실하다고 해서 발표했다”고 말면서 “오늘까지 최종적으로 확정하겠다”고 말해 면담 불발에 무게를 두는 듯 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현재로선 무산됐다고 봐도 우리로서는 할 이야기가 없다”며 한 언론을 통해 사실상 면담 무산을 인정했다.
이에 앞서 강 백악관 정책위원은 한 통신사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면담 계획은 공식 외교라인이 아닌 사적 라인을 통해 주선한 것이기 때문에 존드로 대변인의 발표가 있은 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운을 남겼다.
또 “앞으로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 면담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그대로 유요한 것”이라며 “99%까지 성사됐던 면담도 결과적으로 안 될 수 있지만 백악관 발표와 이 후보, 부시 대통령간 비공식 면담은 별개로 아직 유효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백악관이 “대한민국 대선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미국의 입장을 밝힌 만큼 비선라인을 통한 면담 추진이 성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후보의 4강 외교는 그대로 추진키로 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3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측 라인을 통해 면담성사 여부를 전해 들었지만 미국 국무부와 대사관측에서 이를 부인하고 있다”면서 “더 이상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강 외교는 경제·자원 외교차원에서 추진되는 만큼 부시대통령과 면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이달 중순 예정된 미국 방문 일정은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측 ‘외교력 한계’ 그대로 드러내....
이번 ‘이명박-부시’ 면담 소동은 야당 후보로서 양국의 공식 라인을 통하기 어렸다고 해도
이 후보측이 정부의 공식 외교라인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추진, 확인절차도 무시한 채 성급하게 발표해 이 후보측 외교팀의 안이한 대응이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일단 외교력 한계를 보여준 이번 소동은 양국 공식 라인이 한계에 부딪쳐 대안으로 백악관 강영우 위원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강 위원이 지난달 28일 “이 후보가 10월 15~16일 백악관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고,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같은 날 박형준 대변인은 “박액관 의전 실장이 오늘 공식 문서를 통해 면담 계획을 알려왔다”고 면담 성사를 발표했다.
강 위원은 발언에만 전적으로 의존 미국의 공식 채널에 확인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백악관 보다 먼저 면담 추진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또 한나라당이 면담 성사 근거로 제시했던 백악관 공식 문서를 멋대로 해석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공심 문건에 일부 참모가 이를 ‘면담 확정’으로 적극 해석해 공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한나라당은 강 위원의 말만 믿고 면담 성사까지 발표한 데에는 결과적으로 국내외로 망신을 자초한 것이라는 자조섞인 한숨도 나오고 있다.
李 4강 외교 행보 ‘삐걱삐걱’, 영향 미칠 듯
이로인해 이 후보의 '4강 외교 행보'가 의도와는 무관하게 계속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무산은 적지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 후보는 추석 전 미국 방문을 시작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을 방문하는 ‘4강외교’를 펼치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미국 방문의 경우 지난 6월에도 한 차례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러시아 방문 일정 역시 9월에서 10월로 미뤄졌다가 결국 무기한 연기됐다.
앞으로 있을 일본 방문은 최근 총리가 바뀌어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에나 일정이 잡힐 수 있으며, 중국도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전당대회가 이달로 예정돼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각국의 사정을 감안하지 못한채 이 후보 ‘대세론’ 확산에만 치중해 오히려 후보의 ‘글로벌 리더십’ 이미지만 추락시켰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