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혁신성장 위해서는 실패에 대한 관용 있어야

2018-09-06     박진호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 소장

[매일일보] 고대에는 금, 은, 동이 화폐의 역할을 했다. 중국 명청 시기에는 대외무역으로 대량 유입된 은이 유통화폐가 됐다. 유럽에서도 은이 유통되는 금속화폐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인도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그러하였다. 금은 고액거래에 사용됐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금과 은이 1대 12.5의 교환비율로 거래됐고 중국에서는 1대 6으로 거래됐다. 중국에서 은이 비싼 이유는 세금을 은으로 받아 은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명나라는 북방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국내산 은이 절대적으로 모자라 수입이 절실했다.

은 거래에는 엄청난 이문이 발생했다. 대항해 시대 유럽인은 일본이나 남미 볼리비아에서 생산된 은을 중국으로 가져와 금과 바꾸어 약 100%의 환차익을 얻었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은 해외에서 싼 은을 구해 중국에서 금으로 교환하고, 그 금을 일본에서 은으로 바꾸고, 인도에서 면직, 말레카에서 후추를 사서 유럽으로 가져가 엄청난 무역차액을 얻었다. 이른바 재정거래(arbitrage)가 발생한 것이다. 항해 중에 많은 사람이 희생됐지만 교역의 이익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재정거래를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현재는 어떨까? 최첨단의 IT기기, 빠른 통신속도, AI 등의 프로그램매매 등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최근, 금융시장의 급등락은 주관적인 의사결정을 배제한 차익거래를 이용한 프로그램 매매로 많이 발생한다.

얼마 전 중국출장을 다녀왔다. 보험산업 전체 업무 프로세스에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거대한 계획을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와 각 보험사별로 구체화하고 있었다. 보험상품의 개발, 판매, 보험금 지급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별로 AI 도입이나 블록체인 활용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실패에 대한 리스크와 두려움이 있음에도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보험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었다.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중국의 기존 대형 인터넷 기업들의 기술발전도 놀랍지만 농업, 해운, 제조업 등 과거 전통산업에도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기술 들은 기존업무를 최적화해 업그레이드하고 신산업도 만든다. 쌀 재배도 파종부터 수확, 가공, 저장, 물류, 온라인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시스템에 기록해 추적이 용이하고 최종 소비자들도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수확일, 원산지 정보 등 평소 소비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민감한 정보들이 생산자나 유통과정에서 임의로 조작되지 않도록 해 신뢰를 만든다. 소비자는 안심하고 소비하고, 기업은 프로세스 개선과 이윤 증대 효과를 얻는다.

과거, 해상교역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었던 시절 위험을 분담하기 위한 나온 제도가 ‘모험대차’이다. 상인이 금융가에게 받은 돈으로 물품을 구매하고 선박을 구한다. 항해를 떠나 교역에 성공하면 항해 시작 전에 빌린 금액과 이자를 상환했다. 이러한 모험대차는 위험관리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은행업의 신용대출, 금융투자업의 자본투자, 보험업의 해상보험이 결합한 ‘복합금융상품’인 셈이다. 사회제도들이 많이 부족하고 성숙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이러한 복합금융상품을 만들어 신 산업을 창출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한 금전적 책임과 법률적 의무사항을 과다하게 부과하고 있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실패에 대한 사회적 포용이 필요하다. 많은 국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제자리에 맴돌면서 각종 리스크와 한계만 얘기하고 있다. 매년 공무원 시험에 많은 청년들이 몰려드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혁신이 말과 구호로만 되겠는가 ? 과학자들과 기업가들 그리고 청년들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성공을 격려하되 실패를 관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실패란 성공의 여정에서 만나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구조가 만들어져야한다.

우리나라도 핀테크 활성화, 초연결 지능화, 에너지, 드론,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등 8대 혁신성장 선도 사업을 통해 혁신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결기가 느껴진다. 모험심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배를 쉽게 띄울 수 있는 그런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금융산업이 먼저 나서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