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고르디우스의 매듭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다. 그 전차에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매듭이 있었는데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다고 해 수많은 사람들이 매듭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가운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곳을 지나게 된다. 그는 매듭 이야기를 듣고 칼로 매듭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이 전설은 오늘날 '대담한 방법을 써야만 풀 수 있는 어려운 문제'라는 뜻으로 인용된다.
필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의 인생살이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무수히 많은 관계 맺기를 지속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무수한 관계들이 얽히는 때가 있다. 우리 인생에서 힘든 순간 중 하나다. 그런 힘든 순간에는 이야기 속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단칼에 그 매듭을 끊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얽힌 무수한 관계에 묶여 살아가는 게 우리의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작가 중에는 이보다 깊은 사유를 매듭에 담아내는 이가 있다. 매듭을 관계의 은유로 보고 작업의 주제를 삼고 있는 배상순 작가다. 그는 이해되지 않는 삶의 관계들이나 모순적 가치에 대한 문제들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끊어내고 새로운 자유와 창조의 길을 모색한다.
배상순 작가의 매듭은 크게 확대돼 있다. 매듭의 형태에서 중요한 부분을 선택해서 시각적으로 강조한 것인데 크게 확대된 매듭을 보고 있자면 얽혀 있는 관계의 긴장감이 깊은 울림으로 전해져 온다. 주로 절제된 흑백의 색과 무수히 반복되는 선의 중첩으로 더 굵은 선이 만들어지고 면이 형성되는데 커다란 검은 덩어리 형태이다.
작가는 매듭에 대해 “친구의 결혼식에서 봉투에 매어진 매듭이 두 사람의 ‘관계의 시작’과 축하를 의미하고, 지인의 장례식의 봉투에 사용된 매듭은 그 사람과의 ‘관계의 끝’과 슬픔을 의미하는 메타포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매듭들의 형태와 의미가 그의 작품 속에 들어와 회화로 재구성된다. 그렇게 구현된 작품 속 매듭은 현대사회 고립감의 탈출구를 상징한다. 작가는 “타인과의 관계의 모습을 매듭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다. 내 작업은 ‘관계 맺기’라는 추상적인 언어가 회화적 형식을 통해 표상화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