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다가오는 겨울, 삶의 근원을 찾아서
2019-10-11 송병형 기자
하루가 지날 때마다 아침저녁 바람이 차가워진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다. 겨울은 생명에게는 두려운 계절이다. 가로수의 가지들이 날로 앙상해지는 모습만으로도 죽음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직결돼 있다고 한다. 삶을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 예술가의 지성도 마찬가지다.김의식 작가는 거대한 뼈의 형상을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작가다. 전시장에 설치된 그의 작품을 보면 흡사 자연사 박물관에 온 듯하다. 치과에서 주로 쓰는 레진을 소재로 고래뼈의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아주 작은 글씨를 빼곡하게 쓰는 작업, 즉 ‘뼈’ 와 ‘쓰기’가 그를 특징짓는다. 인간은 뼈와 살을 입고 태어나 살아가면서 언어와 문자를 습득한다. 그 과정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의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거대한 뼈에 새겨진 빼곡한 글씨들은 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작가의 작업은 생의 힘든 시기에 찾아온 끔찍한 교통사고의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교통사고에서 부러져 드러난 자신의 흰 뼈를 직접 보게 되면서 뼈를 죽음의 상징물로 다루기 시작했다. 작가는 많은 뼈 중에서도 고래의 뼈를 선택한다. 해양 동물 중 밍크고래의 DNA 맵이 인간과 가장 유사한 유전자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읽은 우연히 읽은 네이처지 기고글에 담긴 내용이다.고래뼈는 문학적 상상력과도 연결돼 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서 고래는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의 폭력성과 살육을 상징하며, 이로 인해 생겨난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지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쓰기’이다.작가는 잊고 싶은 상황을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 기억들이 잊히거나 무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 이후 특정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 위에 잊고 싶은 것들을 써서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나의 작업은 쓰는 행위에서 시작한다. 일반적 글쓰기는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 반면, 나는 특정 기억을 지우기 위해 글을 쓴다. 지우는 동시에 기억하고 추억하는 동시에 지워나간다. 그리고 삶의 총체적 기억을 지운 뼈를 대상으로 불러냄으로써 불확실한 인간 존재를 고찰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