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 '지시사항' 문건 나왔다!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통해 언론에 문건 공개
2008-11-04 박준형 기자
[뉴시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시사항'이 적시된 문서가 나왔다.
3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가 언론에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회장은 2003년 8월 서울 한남동 자택을 시작으로 경기 화성 삼성반도체, 보광(휘닉스파크) 등지에서 그룹운영을 비롯해 정치 경제 법조 언론 스포츠 등 사회전반에 관해 A4지 18장 분량의 지시사항을 내렸다. 문건에는 이 회장이 지시한 사안별 일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지시사항 가운데 상당부분은 그룹운영에 관한 오너로서의 질책과 격려 등이다. 그러나 삼성 그룹 차원의 전방위적 로비를 의심케 하는 부분도 일부 포함돼 있다. 2003년 12월12일 스키애호가로 알려진 이 회장은 보광(휘닉스파크)에서 다음과 같이 지시한 것으로 적혀있다.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등)에게 주면 부담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임." 정치인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사는 발언이다. 이와 관련, 삼성의 로비 대상자로 지목된 대통합민주신당 추미애 전 의원은 지난 2일 KBS와 전화인터뷰에서 삼성에게서 선거자금 제공을 제의받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추 전 의원 측은 3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KBS가) 녹취하는 줄도 모르고 한 이야기"라며 "이미 지나간 일(선거자금 제의)에 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구체적인 액수나 삼청측의 제의 내용 공개를 꺼렸다. 이 회장은 또다른 지시사항을 통해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볼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주었다고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임"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있다. 재계 라이벌인 LG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회장이 "LG가 해외에서 덤핑을 일삼는다 하는데, 제대로 하면 몇조 이익이 날 것을 국가적으로 손해고 전부 같이 망할 수도 있다 하는 여론을 만들어볼 것. 경제담당 기자나 교수를 시켜서 삼성, LG의 이익 등을 비교해 홍보하고 이게 얼마나 손해인지 여론을 조성해볼 것"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 "분당 플라자는 매각하든지, 위탁경영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것.(노조설립 시도 관련 보고 들으시고)"이라며 노조설립 움직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같은해 10월22일 일본 도쿄에서는 "참여연대 같은 NGO에 대해 우리를 타깃으로 해를 입히려는 부문 말고 다른 부문에 대해서는 몇십억 정도 지원해보면 어떨지 검토해볼 것"이라고 지시했다. 삼성에 비판적인 비정부기구(NGO) 우회 지원방안 검토 지시로 해석된다. 한편, 삼성측은 이 회장의 지시문건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며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문건이 공개된 후 삼성측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해당문건의 존재는 시인했다. 그러나 "돈 주지 말고 마음의 정표를 주라는 것이며 '로비지침서'라는 주장은 왜곡됐다"며 부적절한 로비설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