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기념사업회-지만씨, 서로간 ‘앙금’ 여전

11월 개관 앞둔 ‘박정희기념도서관’

2012-09-29     도기천 기자

[매일일보 = 도기천 기자] 2002년 1월 착공 후 8년간 표류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기념관이 11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정식 명칭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명칭과 규모, 용도, 예산 등을 둘러싸고 지난 10여년간 지리한 법정 공방, 정치적 공방 끝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매일일보>이 웅장한 건물 뒤에 숨겨진 사연을 들여다봤다.

명칭․위치․용도 둘러싼 논란 ‘불씨’ 남겨
박근혜 전 대표 개관식 참석여부 관심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산26번지. 130층 높이의 서울라이트빌딩(DMC랜드마크) 부지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곳. 기념관 뒤쪽으로는 야트막한 상암산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관은 산 한쪽 면을 절개해서 지어졌다. 마치 산 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기념관 앞쪽으로는 여의도 크기만한 월드컵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월드컵공원은 옛 난지쓰레기매립장을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세워진 세계에서 유례를 보기드문 실험적 성격의 친환경 공원. 공원의 좌측에 하늘공원이, 우측 편에는 노을공원이 위치해 있는데 기념관은 노을공원쪽이다.
노을공원에서 한강으로 연결되는 브릿지(생태보도)가 최근 완공돼 한강까지 도보로 20분 정도면 접근이 가능한 위치다.

연면적 5260㎡에 3층 규모. 마포구 상암동 상암산 부근에 들어서며 1층은 전시실, 2층은 전시실과 일반 열람실, 3층은 특별자료 열람실로 꾸며졌다. 박 전 대통령 관련 각종 사료와 전자도서관, 중점 7대 분야 시책, 연도별 공적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측에 부지(14만8930㎡)를 무상 임대하는 대신 공공도서관을 짓도록 했고, 사업회측이 이를 받아들인 것. 기념사업회가 최소 10년 이상 운영한 뒤 건물을 시에 기부채납하도록 했다. 현재 외관 공사는 완전히 마무리됐고 내부 마감과 조경 공사가 한창이다.

기념사업회 측은 “전체공간 중 55%는 도서관으로, 45%는 기념전시관으로 사용되며,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0여년간 수차례 ‘고비’

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는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다. 기념관 건립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역사와의 화해’ 차원에서 공약한 것. 김 전 대통령은 이후 1999년부터 3년간 국고보조금 208억원을 지원했다.

1999년 7월 발족한 '박정희 기념사업회'는 이 국고보조금에다 국민모금 500억원을 더해 사업을 진행하기로 계획했으나, 국민모금 실적이 당초 계획의 20.6%인 103억여원에 그쳐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행자부가 국민모금 부진을 이유로 지원금 회수에 나서면서 결정적으로 사업이 흔들렸다. 2005년 정부는 기존에 지원했던 기념관 건립 사업비 170억원의 회수를 결정했다.

이에 기념사업회측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4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은 2009년 4월 기념사업회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공사가 재개됐고 모금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국가보조금, 모금액 등을 합치면 총공사비는 700억원 규모에 이른다. 기념사업회측은 "그동안 민간 기부금이 많이 들어와 500억원을 채웠다"고 밝혔다.

기념관의 명칭과 용도를 둘러싸고도 말들이 많았었다. ‘박정희 기념도서관’의 ‘기념’과 ‘도서관’ 사이에 가운뎃점(·)을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서울시와 기념사업회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가운뎃점이 빠질 경우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도서관’이 되지만, 가운뎃점이 들어갈 경우 ‘박정희기념관’과 (별개의)‘도서관’이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결국 논란 끝에 가운뎃점이 들어가게 됐다.

기념관 인근에서 만난 주부 이모씨(48)는 “박정희 전대통령에 관한 평가를 두고 주민들 사이에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물에 대한 의미보다 주민들의 문화공간 하나가 더 생기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며 기념관 건립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지만씨측 “여전히 섭섭”

그러나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와 일부 시민단체들은 “전시관(기념관)보다 도서관 면적이 더 넓어 본연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며 내키지 않아하는 분위기다.

지만씨가 운영하는 EG그룹 정용희 비서실장과 20여개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4월 “사업을 맡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가 기념관을 건립한다며 모금해 놓고 국민의 동의 없이 서울시 소유의 기념도서관 건립으로 사업 내용을 변경했다”고 주장하면서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가 기각된 바 있다.

지만씨 측은 여전히 서울시 기부채납을 반대하며, “기념관은 육영재단 내에 세워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예전보다는 강도가 약해졌다. 지만씨 주변에서는 “기념사업회측과 관계가 서먹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누그러뜨려졌으며, (지만씨의) 개관식 참석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다”고 귀뜸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한때 박지만 회장 측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개관을 앞둔 때라 박 회장 쪽에서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면서도 “개관식을 최대한 조용하게 치를 예정이라 박근혜, 박지만 등 중요 인사들의 참석여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친박(박근혜)계로 알려진 정치권의 한 인사는 “내년 총선과 대선 등 중요 정치일정을 앞두고 박 전 대표가 정치적 논란이 여전한 박정희기념관 개관에 참석할지는 미지수”라며 “박 전 대표가 워낙 말을 아끼고 있어 심중을 알 수는 없지만, 동생 지만씨가 기념사업회측과 소송을 벌인 만큼 기념사업회 측과 앙금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기념관의 위치, 용도, 서울시 기부채납 등 모든 면에서 박정희 일가로서는 섭섭한 것이 많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대통령 일가가 겪은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박정희 기념관. 기대와 우려, 갈등의 세월을 거치며 10여년 만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