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인상,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식품업계 진퇴양난

2011-10-01     류지수 기자
[매일일보] 식품업계의 시름이 깊다. 경기불황과 소비심리 하락,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급등 등으로 식품업계는 이미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가격인상을 해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특히 라면, 우유 등 대표적인 식품은 소비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다 정부의 눈치도 봐야 한다.

제분과 제당업계도 울상이다. 환율 급등으로 비싸진 원당과 원맥 같은 국제 곡물 도입 단가가 설탕과 밀가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면업계, '신라면 블랙' 사태…인상안은 남의 일?

라면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초 2∼7%의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최근 신선식품 및 밀가루 등의 국제원자재 값이 올라 실적이 악화됨에 따라 라면의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심의 '신라면 블랙' 사태 이후 가격인상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신라면 블랙'은 지난 6월 공정위에서 1억55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이후 '거품 가격' 논란에 휩싸였다.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고 이후 매출은 7월 25억원, 8월은 20억원으로 급감, 결국 생산이 중단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그동안 검토했던 가격 인상안을 전면 보류했다.

특히 라면업계의 1위인 농심의 영업환경 악화는 전체 라면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농심이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외국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도 가격인상이 우선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국내에서 매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우유업계 눈치만 "서울우유 가격 올려야…"

우유업계도 우유가격 인상을 두고 초조하다. 지난달 원유(原乳) 가격을 ℓ당138원 인상했다. 하지만 가격인상요인을 판매가에 적용하고 못하고 있다.

업계는 한시라도 빨리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업계 1위인 서울우유가 잠잠한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원유가 인상분을 제품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우유가격 인상 시기를 내년까지 연기할 것을 우유업계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올해 우유제품 원료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해 원유 인상에 따른 우유업계의 손실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현재 우유업계는 가격인상 요인을 반영하지 못하는 만큼 고스란히 손실을 감당하고 있다.

이전 원유 인상 협상이 있었던 2008년에는 7월19일 협상하고 보름만에 가격을 인상했다. 반면 이번 원유 인상 협상 뒤 한달 이상 가격을 동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업계 1위인 서울우유는 현재 하루에 3억원씩, 한달에 80억~90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남양유업도 하루에 약 1억5000만원의 손실을 보고 매일유업도 1억원 안팎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유업계는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에 달했다는 목소리다.

업계 한 관계자는 "팔면 팔수록 손해가 늘어나는 상황이니 가격 인상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가뜩이나 우유 영업이익이 저조한데, 이대로 손해 보면서 파는 것이 2~3달이면 1년 우유 장사는 헛하는 셈이된다"고 불평했다.

때문에 서울우유 내부적으로는 추석 이후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새웠었지만 이마저도 내달 중순으로 밀렸다.

업계에서는 내달 우유 ℓ당 약 500원의 가격인상안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원당값 '고공행진'에 제당업계 '울상'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대 제당업체들 역시 정부의 강력한 물가 대책으로 허덕인다.

설탕의 원료인 국제 원당 가격이 급등했지만 정부의 물가 대책으로 이를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설탕의 수입관세마저 대폭 인하될 예정이어서 제당업계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당 3사는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설탕사업 부문 누적적자가 1600억~1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약 700억원의 적자에 이어 올 상반기에만 이미 600억원 정도의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초 파운드당 10~11센트에 거래되던 국제 원당 가격이 세계적인 이상기후와 투기세력 개입 등의 영향으로 올 5월 중순부터 급등해 현재 28~29센트 선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국제 원당 가격은 지난 2년 동안 약 250% 급등했지만 설탕의 국내 소비자가(출고가 기준)는 같은 기간 약 41% 오르는 데 그쳤다. 지금의 추세라면 올 하반기에도 제당사업 부문 적자는 약 300억~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설탕산업은 CJ제일제당이 50%, 삼양사가 30%, 대한제당이 20%를 점유하고 있다.

설탕 3사는 올상반기 매출액증가에도 불구 매출원가 등이 함께 늘어나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크게 줄었다.

특히 CJ제일제당의 상반기 매출원가는 지난해 총 매출원가의 84%에 달하는 수준이며 설탕의 비중이 큰 대한제당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무려 46%나 줄어들었다.

장기적인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가 설탕제조사 3곳의 과점적 이윤을 들어 지난 7일 입법예고한 기본관세 인하 정책에 따라 설탕의 수입관세율을 35%에서 5%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탕은 자국의 과잉 생산물을 덤핑처리하고 국내로 재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국이 관세를 높인 품목(EU 85%, 일본 70%, 미국 51%). 우리나라만 이례적으로 관세를 낮춰 저렴한 수입설탕이 유입될 경우 국내 제당업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한편 하반기에는 밀가루 값이 다시 한 번 오를 전망이다.

한국제분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희상 동아원 회장은 지난 6월 "국제 곡물가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어 정부와 협의를 통해 올해 안에 추가 인상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은 "올 상반기 17% 정도 올렸어야 했지만 여건상 한 자릿수만 인상했다"며 "3분기 실적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제분업체들의 밀가루 값은 지난 2008년 이후 3년 만에 출고가 인상됐으며, 동아원은 8.6%,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은 9% 안팎의 인상을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