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먼 곳만 보네요~”
이명박의 한걸음 뒤에 있는 ‘박근혜의 꿈’, 52살 정치인의 ‘진심’은 뭘까?…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BBK’ 수사결과 지켜보며 최적의 경로 선택하며 고민 중 ‘관측’
박 전 대표 ‘의중’ 대선판도 새로운 변수…언제 ‘폭발’할까 관심
“이명박 돕겠다” 끝까지 언급하지 않아…답답한 이명박 캠프
창당 10주년 행사 불참해…“때를 기다리고 있다” 분석 제기
[매일일보닷컴] 일부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서조차 최근 “이명박과 BBK 사이에 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가 무조건 이명박을 감싸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이나 국민이 검찰의 BBK 수사에 대한 ‘빠른 결과 발표’를 기대하는 것처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최적의 경로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경선에서 승리한 뒤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요즘 같은 어려운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고 대선에서 마침내 승리하기 위해선 박 전 대표의 지원사격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범여권이 김경준씨를 ‘오매불망’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는 것처럼.
이런 까닭에 ‘힘을 가진 패자’로 꼽히는 박 전 대표의 ‘의중’이 무엇이냐는 20여일 남은 대선판도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어, 변수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 향후 대선지형에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 역시 점쳐지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선 출마, BBK 의혹 김경준씨 귀국, 범여권 대통합 등 ‘변수’란 ‘변수’는 11월 한 달 내에 모조리 터져 나온 상황에서, 12월 대선 막바지에는 박근혜의 ‘속내’가 무엇인지가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의 견해다.
극한 대립 마무리되는 줄 알았더니…
박 전 대표가 이 같은 입장을 밝힌 데는 당연 이유가 있었다. 이명박 후보는 앞서 11일 ‘당 화합책’ 차원에서 “정권 창출 이후에도 박 전 대표와 주요한 국정 현안을 협의하는 정치적 파트너로서, 소중한 동반자로서 함께 나아가겠다”며 ‘박근혜 띄우기’에 나섰고 다음 날인 12일에는 대구를 방문, 박 전 대표를 ‘정치적 동반자’로 재천명했다.여의도 정가에선 이를 계기로 지난 1년 넘게 펼쳐진 경선 과정에서 지속됐던 박근혜-이명박 양측의 ‘극한 충돌’은 마무리되고 이명박 후보를 ‘측면 지원’하는 등 정권 재창출을 위한 ‘화합 모드’로 두 진영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일엔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후보 공식선거기간 돌입(27일) 후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원 활동을 할 것”이라는 보도도 쏟아졌다.그러나 지난 21일에 일어난 일들로 비춰 봤을 때 이 모든 ‘긍정적’ 판단들은 어찌보면 ‘화합’을 위한 제스처였을 뿐, ‘화해’를 위한 제스처는 결코 아니었던 셈이 됐다.박 전 대표는 이날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창당 10주년 기념식에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불참, 행사를 반쪽자리 잔치로 축소시킨 장본인이 됐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날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야당 10년, 국민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결의를 다지는 중차대한 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당심이 깊기로 유명한 박 전 대표가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묘한 뉘앙스를 풍길 수밖에 없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27일 이후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원을 시작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선 측근들의 입을 통해 “현재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라고 강하게 부인했다.이와 관련 박 전 대표 측은 “괜한 억측은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이명박 후보와 박 전 대표 사이에 켜켜이 쌓여있는 앙금이 여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을 뿐더러, 실제 두 사람의 관계는 또다시 미묘해지는 분위기다.켜켜이 쌓여있는 앙금 여전한 듯 ‘관측’
이를 증명해주듯 이명박 후보는 같은 날 오후 KBS 초청토론회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불쾌한’ 속내를 솔직하게 내비쳐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해) ‘국정의 동반자’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면서 “국가의 중요사안을 논의하는 관계라고 했다”고 못을 박았다. 정확히 10일 만에, 권력을 나눌 것처럼 해석됐던 ‘정치적 파트너’에서 ‘상의 대상’으로 박 전 대표에 대한 입장을 바꾼 셈이다. 이런 까닭에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다.박 전 대표 측은 이에 대해 “이명박 측은 그동안 위기에 몰리면 ‘화합’을 내세워 ‘도와달라’고 하고 사정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도를 바꿔왔다”고 지적하며 이 후보의 ‘상의할 대상’ 발언에 불쾌하다는 반응이다.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박 전 대표는 늘 그래왔듯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 중이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서 언급한대로 박 전 대표 측은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이명박 후보를 도와주는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이 후보 측이 학수고대하는 “돕겠다”는 말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BBK 주가조작 사건에 의해 이명박 지지율과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선 ‘박근혜 카드’가 절실한 실정인데도, ‘그대 먼 곳만 보네요~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라는 발라드곡의 노랫말처럼 박 전 대표는 이명박 후보의 ‘한걸음 뒤’에 정확히 서있다. 이를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면 갈수록 ‘어렵고 복잡한’ 대선정국에서 박 전 대표는 ‘꽃놀이패’를 쥐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는 것이고, 정치공학적으로 표현하면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정치권 격언에 비춰 봤을 때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 측이 원하는 ‘액션’을 취하지 않는 등 그를 돕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이와관련 “박근혜는 독자적인 생존 가능성이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힘’이 있는 박근혜가 현재의 한나라당의 의도대로 이명박 후보의 우산 속으로 들어간 뒤 어떤 직함하나를 달랑 받아들고 굳이 고개를 조아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독자적으로 생존 가능성 뛰어난 정치인
박근혜는 늘 ‘드높은 지지율을 고수했던’ 이명박에 대해 불안해했던 것이 사실이다. 경선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장 뭔가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정치권 일각에선 ‘이명박 대안’으로 당내 ‘대기주자’인 박근혜를 ‘선택’해야 한다는 분위기마저 오래 전부터 형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검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박근혜는 올해 52살인 ‘젊은 정치인’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