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백척간두' 한국경제, 양보가 답이다
2019-11-25 이근형 기자
[매일일보 이근형 기자] 한국경제가 백척간두(百尺竿頭)다. 자칫 헛발을 내디디면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다.겉으로 보이는 지표는 아직은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버팀목 수출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 들어 지난 3분기까지 총 수출은 4503억3000만달러로 역대 최고다. 종전 최대였던 지난해 동기보다 4.7%나 증가했다. 반도체와 기계, 석유화학이 여전히 잘 나간다. 기세가 다소 꺾인 듯하지만 매번 초고속 성장을 할 수는 없다.그러나 속을 보면 다르다. 반도체와 석유화학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력산업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자동차와 철강, 선박, 무선통신기기 모두 수출이 급감했다. 40% 가까이 수출이 늘어난 반도체가 가져온 착시효과다. 시황에 따라 편차가 큰 반도체와 석유화학이 주춤하게 되면 수출마저 꼬꾸라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현 상황을 위기로 보는 이유다.반도체 착시 효과는 기업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반도체 대박행진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기업실적은 마이너스다. 두 회사를 뺀 코스피 상장사 532곳의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9.94%나 줄었다.문제는 한국 수출을 끌어올린 반도체 시장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서 당장 11월 들어 반도체 수출증가율이 2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의 견제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한국 반도체의 4분의1이 중국으로 갈뿐더러 경쟁자라는 점에서 우려된다.다른 경제지표는 최악이다. 가계부채는 1500조원을 넘어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실업자는 100만명에 육박한다. 실업률은 3.5%로 13년 만에 가장 높다. 청년 실업 문제가 중장년층으로까지 번졌다.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도 아래로만 향하고 있다. 3% 성장은 ‘그림의 떡’이 된 지 오래다. 정부는 내년 2.8%의 경제성장을 기대하지만 민간의 예상은 다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6%, 증권사들은 2.4~2.6%, 심지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3%까지 낮춰 보고 있다.한국 경제는 이미 힘을 잃었다. 반도체 호황이 무너지는 시간을 늦췄을 뿐이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이끌던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자동차와 조선, 중공업, 철강, 화학 등 대부분 산업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현대기아차의 실적 악화나 조선업의 위기는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근본 경쟁력이 떨어진다. 비싼 인건비 등 높은 원가 구조에서는 중국 등 신흥국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하지만, 귀족 노조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시간이 얼마 없다. 이미 지났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노사 모두 한 발 양보해 같이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탄력근로제를 둘러싼 갈등과 ‘광주형 일자리’의 좌초 위기 등을 보면 답답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독재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던 시기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한 듯하다. 한국의 노동계는 여전히 20세기에 살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한 말처럼 우리 모두가 개혁의 주체다. 자기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는 게 아니라 대화·타협·양보·고통 분담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조개와 물새가 다투면 어부가 횡재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대화와 양보를 통해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경쟁국들은 미래로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살아있을 때 가치가 있다.